나는 세계 신화는커녕 우리 신화도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무지한 인간이다. 알고 있는 건 기껏해야 교과서에 나오는 신화 정도? 그러다보니 신화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 좀 배워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그 첫번째 도전이 대학교 2학년 때 도전했던 조셉 캠벨의 <네가 바로 그것이다>였다. 그러나 첫 도전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신화가 아니라 신화학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신화를 읽고 싶었던 나는,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몇 달 전, 알라딘에서 검색을 해보다 이 책을 찾게 되었다. 실제로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던 내용이란다. 왠지 제목도 마음에 들고 출판사도 미덥다고 생각했다. 한 달 전쯤 이 책을 완독했다. 이 책은 내가 원했듯이 서른 가지 우리신화 이야기를 다룬다. 잘 알려진 단군 신화부터 처음 들어본 제주도 신화까지. 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다. 필자는 무엇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필자는 이 책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다양한 신화학 용어들을 등장시킨다. 하지만 그 중 설명이 상세하게 되어있는 용어는 거의 없었다. 한겨레 독자들은 다 그렇게 유식해서 나 같이 무식한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걸까? 게다가 신화 이야기는 옆으로 밀려나고 대부분이 필자의 생각으로 채워져있다. "이것이 ***라면 ~이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이게 제일 싫었다. 그렇다고 필자의 생각이 명쾌하게 전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느끼기에는 엄청난 논리적 비약과 추측이 난무했다. 예를 들면, 책 142쪽에서 145쪽에 걸쳐 주몽신화의 '난생' 신화가 어디에서 왔는지 논하는 부분을 보자. (참고로, 일부러 찾은 거 아니다. 지금 막 펼쳤더니 우연히 나온 페이지다. 책의 특정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논리적 비약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이 말을 덧붙인다.) 필자는 서국의 왕 언(偃)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서언왕 탄생신화의 난생 화소가 흥미로운 것은 서국의 위치와 서언왕의 핏줄 때문이다. 서국은 일반적인 난생신화 분포권에서는 상당히 떨어진 중국 산둥 지역에 있었고, 서언왕은 동이족이지만 난생 화소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서언왕 신화의 난생에도 학계의 의문부호가 찍혀 있다. 그런데 고구려도 동이에 속하고 난생 분포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렇다면 두 신화에는 뭔가 통하는 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서언왕 신화가 주몽신화의 난생을 푸는 긴요한 고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략) 에둘러 여기까지 오니 좀체 풀릴 것 같지 않던 난생의 매듭이 조금은 풀리는 것도 같다. 주몽신화의 난생 화소는 하백 집단이 가지고 온 것이고, 그들 역시 서국을 세웠던 종족처럼 난생신화를 지녔던 장강 일대의 남방계 문화를 수용했으리라는 것이다." 엄밀성을 기하는 책도 아니면서 '난생 화소' 따위의 어려운 단어를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이) 쓰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보다 이 구절의 문제는 전혀 엄밀하지 않은 논리성에 있다. 필자는 여기서 서언왕 신화와 주몽신화의 유비성 하나에만 의존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언어학으로 빗대자면, 수메르어와 한국어가 문법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으므로 동일한 어계라고 주장하는 것, 혹은 드라비다어와 한국어에 비슷한 어휘가 많으므로 드라비다어가 한국어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이게 과연 논리적인 글인가? 글쎄, 내가 자연과학을 공부해서 이런 것에 더 엄격한 걸까? 읽는 내내 필자의 '잘난 척'과 '비논리'는 나를 끝없이 피곤하게 만들었다. 대전에서 서울 오는 기차 안에서 이 책을 다 읽었는데, 결국은 '이왕 잡은 거 끝은 봐야지'라는 억지심산으로 끝까지 읽은 것 같다. 뭐, 나 같이 삐딱하게 볼 사람 아니라면야 나름 재미있는 책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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