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수학 과목 개설의 필요성.
화학수학(mathematics for chemistry) 과목 개설의 필요성.

전 과대님께 부탁받아서 쓰는 글입니다.
교수님들을 설득하는 목적이라 존대말로 작성하였습니다.
쓰실 때는 적당히 편집해서 쓰셔도 좋고 이대로 보내셔도 좋을 듯 :)
이상한 점 있으면 지적 주세요.


교수님들 안녕하세요. 저는 XXX입니다. 과목 개설에 관한 건의 사항이 있어 이렇게 펜을 듭니다. 제법 긴 글입니다만,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셔서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화학수학(mathematics for chemistry; 가제)'이라는 과목이 따로 개설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학과에서 쓰는 수학이 물리학과에서 쓰는 수학을 크게 넘지 않으므로 물리학과 학생들이 듣는 수학 과목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막상 여러 과목들을 수강해 본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저는 저학년 때부터 물리화학에 관심이 많아 수학/물리학 영역의 과목도 일반적인 화학과생에 비해 많이 들었고 4학년을 마친 지금 화학과 학부 과목도 제법 많이 들었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감히 말씀을 올립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수강한 과목 명단이 필요하시다면 http://home.bawi.org/~hanos85/grade.htm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물리학과 학생들이 듣는 수학 과목에는 MAS109 선형대수학개론(舊 MA111), MAS201 응용미분방정식(舊 MA201), MAS202 응용해석학(舊 MA202), PH211 수리물리학 I, PH212 수리물리학 II 정도의 과목들이 있습니다. 이중 선형대수학개론과 응용미분방정식은 물리학과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고, 나머지는 선택 과목에 속해있습니다. 이외에도 학생들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수학과 관련 과목들을 더 수강하기도 합니다만, 일단 논의에서는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선형대수학개론과 응용미분방정식, 응용해석학의 세 과목은 타대학에서 '공업수학'으로 배우는 과목들에 해당합니다. 선형대수학에서는 행렬을 다루는 기본적인 방법들을 배우고, 응용미분방정식에서는 ODE를, 응용해석학에서는 PDE와 복소해석을 공부합니다. 수리물리학에서는 일반적인 수리물리를 배웁니다만, 제가 들었던 학기(05년 가을-06년 봄)에는 Stewart 교수님이 그 과목을 담당하시면서 약간 다른 관점에서 수업을 하셨습니다. 그 수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I에서는 벡터해석, 텐서수학(미분기하+위상수학 포함), 복소변수론에 대해 공부했고 II에서는 LaTeX, 힐베르트공간, 군론, 리 군론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이 중 물리화학을 전공할 학생에게 필요한 수학이 얼마나 될까요? 필요한 부분만 보자면 다섯 과목 모두에 약간씩 퍼져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리화학에 필요한 수학을 익히기 위해 이 다섯 과목을 전부 공부하는 건 시간낭비가 아닐까요? 특히 텐서수학이나 복소해석, 소립자물리에서나 사용되는 어려운 군론을 공부하는 것은 화학과 학생에게 그리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 과정에 가면 이런 것들을 사용해서 공부해야 할 시기가 찾아올지 모르겠습니다만, 학부에서 개설되는 대부분의 화학과 과목들을 들어본 저의 경험에서는 이런 수학들을 쓸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 과목들을 다 공부했다고 해서 물리화학에 나오는 모든 수학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먼저 이들 과목에는 벡터공간의 적용을 다루는 부분이 없습니다. 양자역학에서 bracket notation을 이용하여 basis를 자유롭게 다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ladder operation, spin space 등은 화학에서도 꽤나 중요합니다만, 화학과 학부 과목에서는 이를 깊이있게 다루기 힘듭니다. (물리학과에서는 양자역학 I, II에서 비교적 자세히 배웁니다.) 그리고 무기화학을 공부할 때 꼭 필요한, 분자 대칭성에 관한 군론을 다루는 과목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무기화학 I이나 분자분광학에서 군론의 적용을 배웁니다만 그 공식들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시험을 보기 위해 외울 뿐입니다. 게다가, 통계열역학이나 분자반응동력학에서 꽤나 중요하게 다뤄지는 분포의 개념을 다루는 과목도 없습니다. 굳이 찾으려면 수학과의 확률통계 과목 정도가 될텐데, 통계에 대한 화학자의 초점은 수학자의 초점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수학과에서는 partition function, ensemble 등을 다루지 않으니까요. 제가 지금 언급한 세 가지 분야들은 모두 화학과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속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담은 화학수학 과목 개설을 건의합니다.
1) ODE와 PDE : 물리화학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정도로만 다룬다. (ex. 슈뢰딩거 방정식, 반응속도론) 더 많은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MAS201이나 MAS202를 수강할 것을 권장.
2) 벡터공간 : 주로 bracket notation을 이용하여 추상적 선형대수를 다룬다. 실제로 spin space 등을 예제로 다루면서 학생들이 실제로 양자역학이 적용되는 벡터공간에 대한 감을 잡도록 한다.
3) 군론 : 분자의 대칭성을 묘사하는데 필요한 군론을 다룬다. Great orthogonality theorem 등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며, 그 외 direct sum이나 direct product에 대한 개념을 전달한다. Selection rule이나 SALC 등에 직접 적용해본다. (항목 2-3번의 내용은 Bernath의 분광학 책 3-4장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만 이 책에서는 설명이 너무 간략합니다.)
4) 통계학 : 분포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partition function까지, 화학에 필요한 통계학 지식을 다룬다. 수학적인 부분에 관심이 있다면 수학과 확률통계 과목을 권장.

저 역시 물리화학 공부에 있어 수학의 부족함을 느끼고 친구들과 함께 이 부분을 공부하기 위해 G. Turrell이 쓴 Mathematics for Chemistry and Physics라는 책을 갖고 스터디 그룹 활동을 했습니다만, 그 책에서조차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저희끼리 공부하다보니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알 수 없고, 그렇다고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바쁘신 교수님들께 죄송하지만,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셔서 학부생들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y 로보스 | 2007/02/24 18:26 | |과학| | 트랙백(2) | 핑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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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t 2007/02/26 10:07

제목 : 화학과 커리큘럼 관련 건의사항
1. 화학수학 과목 개설의 필요성. by lovos 2. 생화학 과목 증가에 대한 건의사항 by Yuki 교수님, 안녕하세요? 작년 과회장을 맡았던 04학번 박지영이라고 합니다. 학생들과 여러 이야기를 해보던 중 수업 커리큘럼에 관해 학생들이 의견을 내었고 이 중 몇 가지 의견을 정리하여 보내드립니다. 지난번 회의에서 나온 의견대로 4학년이 되는 학생들이 시간표를 짜면서 가장 막막해 했던 한 가지가 바로 수강할 수 있는 전공......more

Tracked from Chemical Log at 2009/01/14 21:24

제목 : 수학 싫은데..
수리등급을 어찌 올릴지.. 지금 1등급이였어도 그거 유지하기가 힘들다는데 거기도 못미치니 ㅠㅠ 수학이랑 물리 공식들 때문에 피 토할 지경.. 싫어 죽겠음 근데.. 대학가서도물리화학 이해하려면 수학이 아주 필수적이라고 하네영. 선형대수학이나 응용미적같은...대충 예상은 했지만... 휴.. (트랙백) 요새들어두뇌수준이 배우는 내용을 못따라...more

Linked at UUUUU : 어떻게 일본 과.. at 2010/05/23 01:15

... 주로 하던 당시의 화학은 불만이었다. 그는 왜 '수리물리'는 있는데 '수리 화학'은 없는가 하는 의문도 품었다고 한다. 이 문단은 이 글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화학수학 과목 개설의 필요성. + 일본 과학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과학밸리에 보냅니다. ... more

Commented by Yuki37 at 2007/02/24 22:23
와~친구들 ㅋㅋㅋ 책 제대로 끝내지도 않았지..ㅠ_ㅠ;
이렇게 잘쓰면 나머지 과목을 내가 어찌 써야하는 거삼 ㅠ_ㅠ;;
Commented by Asuka_불의넋 at 2008/03/03 21:23
잠깐 들렀다가 흥미로운 글이 많아서 계속 읽고 가네요.
일반화학 들을 때 저런 것 때문에 고생하다가... 결국 재수강중입니다 ㅜ
역시 물리/화학 류의 과목은 생물학과 달라서 수학이 많이 필요하더라구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3/03 23:53
Asuka님// Asuka님 덕분에 옛날 글을 오랜만에 읽었네요 ^^; 지금 보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일반화학은 보통 물리화학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수학이 더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 보통 교수님들이야 다 알겠거니 하고 수업을 하시지만, 별로 그렇지만도 않다는 거-! 하긴, 생물 하신다고 하니 유기화학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 유기나 고분자, 생화학은 수학이 별로 필요 없잖아요. 그런 화학도 있답니다 :D
Commented at 2009/10/08 09:3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10/08 09:58
비밀글님// 반갑습니다 ^^ 이 글은 2년 전에 올린 글이지만 아직도 현실화되지 않았답니다. (아마 교수님들 손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것 같더군요 -_-) 학교가 학생들의 필요에 맞춰 수업을 개설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할까요 =3
Commented by 하얀집아가씨 at 2010/01/24 01:23
저는 이제 학부2학년생이 되는데..
화학수학을 들을지말지로 굉장히 고민하고있어서요..
도움을얻고자 글을 읽었지만.. 여전히 고민되네요..
물리화학양자쪽에서 쓰인다던데 안배운다고 해서.. 물리화학을 배우는데
지장이 있을까요?ㅠㅠ
Commented by 로보스 at 2010/01/26 08:27
하얀집아가씨님// 안녕하세요 :) 이 글은 화학수학 과목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글이니 아가씨님의 고민에는 큰 도움이 안 되겠지요 ^^ 사실 학교마다 교수마다 화학수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달라질 수가 있어서, 아가씨님 학교의 화학수학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아가씨님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른채 무조건 수강하는 것이 좋다고는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제 메일 lovos 골뱅이 naver 닷 com으로 연락해주세요 :D
Commented at 2010/05/15 15:0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10/05/17 15:30
비밀글// 이런 글도 썼었지 ㅎ 특수함수들도 나름 중요하긴 한데, 나는 스 교수님한테 그렇지 않게 배운 것도 좋았다고 생각 :)
Commented by 최종하 at 2017/11/07 10:25
이 학생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학생이지금쯤 국내 대학 화학과의 교수가 되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현재 화학수학을 비롯하여 분자 대칭성과 군론을 강의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
Commented by 로보스 at 2018/02/09 06:29
최종하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지금 미국에서 포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장차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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