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 빈 학파의 거두로 논리실증주의의 대표적 주자. 논리학/수학/물리학/철학을 두루 공부. 프레게와 더불어 박우석 교수님이 무척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 논리학 수업을 들을 때 처음으로 이름을 들어본 사람. 대충 소개하면 이 정도? (자세한 설명은 [위키피디아] 설명 참조.) 방금전까지 이 자가 쓴 '과학철학입문'이라는 책(황화미남 선배님께서 하사)을 읽었는데, 무언가 계속 속이 불편했다. 용어나 정의가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과학철학의 것이 아닌 것이다. 카르납은 포퍼나 쿤의 이론을 근거로 만들어진 현대과학철학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철학책들은 그냥 받아들이는 책들이 아니다. 나만의 비판이 없다면 '철학사 지식'을 얻을 뿐 철학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카르납의 주장은 익숙지 않은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결과 나만의 비판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겨우겨우 찾은 하나의 비판이 '결정론'에 대한 카르납의 생각이다. 카르납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이 자유 의지의 원천이 된다는 주장(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펜로즈가 있다)에 대해, 양자역학 역시 기본적으로는 결정론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면서 엉뚱하게도 결정론적인 세계에서도 자유 의지는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주로 구사한 논리가 '강요'와 '결정론'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1) 화미남님은 개고기를 드신다. 2) 연수 누님이 전국적으로 맛있다고 소문난 보신탕집을 찾았다고 '게시판'에 올렸다. 3) 로보스는 화미남님이 그 집을 갈 거라고 확신했다. 4) 그리고 며칠 후 화미남님은 그 집을 방문하여 맛있게 식사하셨다. 여기서 로보스의 확신이 화미남님을 그 집으로 보내는 '강요'였는가? 당연히 아니다. 로보스의 확신은 그저 가능성 높은 예측일 뿐이다. 과학 이론 역시 이런 식으로 자유 의지를 포함하는 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틀인 것이다. 이것이 카르납의 주장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든 한 가지 생각은, 카르납이 '자유 의지'라는 것을 이원론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카르납은 철저한 기계론자가 아니라 영혼 혹은 마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부분의 어조나 단어 선택을 통해 받은 내 인상이므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왜 '자유 의지'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야 하는가? 기계론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자유 의지'는 결국 생각의 하나고, 이 생각이란 것은 신경 세포들 간의 전기적/화학적 신호에 불과하다. 이 신호들은 철저하게 물리학적/화학적 법칙에 의해 지배되므로 결국 자유 의지 역시 물리학적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환원을 시켜놓고 보면, 자유 의지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펜로즈 같은 사람이 자유 의지의 근원을 불확정성에서 찾는 게 아닐까. 한 가지 상상을 해봤다. 카르납이 활동하던 20세기 초반에는 심지어 DNA 이중나선조차 안 알려져 있던 생물학의 건기였다. (이중나선 발견은 1953년이죠.) 이 책이 발행된 것이 1966년이니까, 역시 생화학이나 분자생물학은 크게 발전하지 못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이 시기의 카르납은 우리의 마음이 분자들의 운동만으로 설명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닐까. 그랬기에, 마음을 철저하게 기계론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이렇게 어정쩡한 레벨에서 분석을 마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신기한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럴싸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사실 포퍼와 쿤을 먼저 공부한 나는, 카르납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르납 역시 포퍼나 쿤과 같이 과학에 대한 상당히 깊은 통찰력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어느 문단에서는 카르납이 포퍼의 시대를 뛰어넘어 쿤과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글들을 보면서, 결국 과학철학이라는 것은 얼마나 '그럴싸한' 말로 많은 이들을 설득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지배적인 과학철학들은 다만 지지자가 많을 뿐이라는 이야기. 그러기에 막 뒤져서 약점을 찾아내고 그걸 공격하고 또 방어하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는 것 같다. 정말로 쿤이 '상대주의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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