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 <미실>, 문이당.

이번 중추절에는 아주 실컷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아버지께서 집에 사두신 책. 가져온 책을 다 읽어버려서 이 책을 펼쳤다.

비슷한 시기에 읽은 <허삼관 매혈기>와는 달리, 이 책은 -- 국내 저자가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었다. 우선 어려운 한자어 단어들이 많이 나왔으며, 사람들의 말투 역시 옛날투였기 때문에 중간중간 탁탁 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신 문단과 글의 흐름은 매우 훌륭했다. 가독성이 좋지 않았기에 완전 빨려들어가서 읽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책 밖에 앉아서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미실은 신라 진흥제 시대의 미색이었다. 그녀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여자의 상, 순응적 여자의 모습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스스로의 뜻대로 천하를 조종하길 원한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여성해방의 시대에 맞게,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한 여인을 묘사한 책이라고. 하지만 나는 약간 다른 점을 보았다. 어쩌면, 현대 소설 일반에 해당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작가는 미실을 선녀로 묘사하지도 악녀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등장인물들의 관점에 따라 '교활하고 요망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지혜롭고 기민한 여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도리어 혼란스러웠다. 선의 편이냐, 악의 편이냐, 하나를 정해주면 정말 마음이 편할텐데 이리저리 숨가쁘게 왔다갔다하니 내 입장에서는 끝없는 혼란을 겪을 수 밖에. 하지만 이게 바로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다. 극악도, 극선도 아닌,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선과 악. 나에게는 정말 미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철천지원수가 될 수도 있고.

상대주의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문학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물들의 대사 뿐 아니라 서술자마저도 선과 악을 명확하게 가르지 않는 그런 문학. 즐거웠다. 괜히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아니겠지. 다만 등장인물의 수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뻔 했다는 거-
by 로보스 | 2006/10/08 21:34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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