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노벨 화학상 이야기 (1)
올해 노벨 화학상은 프랜시스 아널드(Frances Arnold), 조지 스미스(George Smith), 그리고 그레고리 윈터(Gregory Winter) 경에게 돌아갔습니다. 제 연구 분야인 단백질 과학에서 노벨상이 나온 김에 공부도 할 겸 이분들의 업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들을 참고합니다.

단백질은 기본적으로 작은 구슬(아미노산이라 부릅니다)들이 줄줄이 꿰어 있는 하나의 긴 끈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구슬의 종류는 다양하고, 다른 종류의 구슬끼리는 종류에 따라 서로 밀어내거나 당기거나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슬의 순서를 가리켜 '서열'이라고 합니다. 이 구슬끼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단백질은 특정한 구조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구조를 가지고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지요. 예를 들어 어떤 분자를 분해한다거나, 다른 분자에 특정한 원자 뭉치를 붙여준다거나 합니다.

구슬 간의 상호작용으로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그림 출처)

우리는 이 단백질의 기능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에 존재하는 단백질보다 더 빠르게 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서열입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접근법은, 모든 서열을 다 조사해서 최적의 기능을 만들어내는 서열을 찾는 것입니다. 문제는, 찾아야 할 서열의 개수가 너무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보통 기능하는 단백질이 100개 정도의 "구슬"을 가지고 있는데요, 각 구슬의 종류는 대개 20개로 봅니다. 그러면 가능한 서열의 수는 100의 20제곱(10020, 1 뒤에 0이 40개!)이라는 어마어마한 수가 됩니다. 실험 하나를 하는데 (말도 안 되게 짧게 잡아) 1초가 걸린다고 해도 1경×1경년이 넘게 걸립니다. (우주의 나이가 140억년이죠?)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전략으로, 서열과 기능의 관계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서열을 요렇게 바꾸면 기능이 저렇게 될 거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다면 최적의 기능을 만들어내는 서열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겠죠. 실제로 이 방법은 합리적 설계(rational design) 기법이라 하여 단백질 설계 동네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 방법은 구조의 특정 부분만 사용하여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들에게 좀 더 쉽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전체 단백질을 다 뜯어 고치는 대신 해당 부분만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더 나은 기능을 주는 서열을 찾으면 되니까요.

합리적 설계의 예시. 왼쪽 끝에 있는 "WT"가 원본 단백질이고, 조금씩 단백질을 고쳐나가면서 더 물에 잘 녹는 버전을 만들어 갑니다. y축은 수용도에 대응합니다. (그림 출처)


하지만 서열과 기능의 관계성은 그리 명백하지 않습니다. 머리 터지게 고민해서 서열을 이렇게 고치면 기능이 나아지겠구나 가설을 세우면, 막상 실험에서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똑똑한 과학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착안합니다. 바로 이번 노벨상의 주인공인 유도 진화(directed evolution)입니다. 여기서 '진화'라 함은 다양한 형질이 섞여 있는 집단에 특정 형질이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줘 점차 그 형질이 '선택'되게 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예로 농작물 개량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형질을 골라서 교배하고 교배하다 보면 결국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한계 안에서) 그 형질을 강하게 보이는 녀석들이 만들어지죠. (흥미로운 예로서 옥수수의 육종이 있습니다.)

농작물 개량의 기본적인 원리 (그림 출처)

이 개량 과정을 단백질에도 써먹자는 것이지요. 좋은 성능을 주는 서열을 어떻게 짤지 고민하는 대신, 다양한 서열들로 이루어진 단백질들을 만들고 그 중에서 더 나은 성능을 보이는 단백질을 갖는 녀석들이 '선택'되게 실험을 만들면 고민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 아이디어 자체는 이미 1984년에, 1967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만프레트 아이겐(Manfred Eigen)에 의해 제시되었습니다[1]. 이외에도 몇 편의 80년대 논문에서 유도 진화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다루기는 했습니다만, 실험으로 보이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아널드 교수님은 90년대 초에 서브틸리신(subtilisin)이라는 단백질을 가지고 이 아이디어를 실험했습니다[2]. 서브틸리신은 물 속에서 카세인(casein)이라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물 대신 디메틸포름아마이드(DMF)라는 용매에 녹이면 그 성능이 급격히 저하됩니다. 아널드 교수님은 DMF에서도 카세인을 잘 분해하는 서브틸리신 변이체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실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다양한 서브틸리신 변이체를 준비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각 변이체의 유전 정보를 준비합니다.)
2) 각 변이체를 박테리아에 집어 넣어 발현시킵니다.
3) 서로 다른 변이체를 가지고 있는 박테리아들을 카세인으로 만든 배양 젤 위에서 키웁니다.
4) 카세인을 잘 분해하는 변이체를 가지고 있는 박테리아는 젤을 분해해 버립니다. 이건 눈으로 보입니다.
5) 젤을 잘 분해한 박테리아들을 모아 그 변이체 유전 정보를 분석합니다.
6) 이 유전 정보를 기반으로 다시 한 번 여러 변이체들을 만듭니다. 2번으로 돌아갑니다.

1번과 6번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변이체의 다양성입니다. 이를 위해 아널드 교수님은 당시 가능했던 모든 기술을 총동원합니다. 먼저, 알려진 변이체들을 여러 개 구해서 시작했고요, 유전 정보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삑사리를 많이 내는 장치(error-prone PCR)를 써서 의도적으로 변이를 많이 도입합니다. 그 결과, 이 사이클을 네 번 돌린 후 얻은 최고 성능의 변이체는 원래 단백질에 비해 256배 좋은 활성을 보였습니다.

자, 그런데 여전히 변이체의 "다양성"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다음 단계로 2013년 작고하신 빌럼 스테머르(Willem Stemmer) 선생님의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그는 역시 큰 생명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많은 생명체들이 유성생식을 합니다. 즉, 부모가 각각 유전자의 절반씩을 제공하여 자식의 유전자를 만들죠. 이는 유전자의 다양성을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스테머르 선생님은 1994년 이 아이디어를 단백질 설계에 적용합니다. 즉, 단백질 변이체를 만들 때, 아널드 교수님이 사용한 방법에 더하여 서로 다른 변이체들이 이 조각 저 조각을 제공하여 새로운 변이체를 조합하는 단계를 도입한 것입니다. (DNA 섞기(DNA shuffling)라고 부릅니다.) 이 방법은 다른 방법들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다양한 변이체를 생성해냈고, 그 이후 유도 진화 연구의 붐을 불러옵니다.

개략적으로 변이체는 이렇게 "재조합"할 수 있습니다 (그림 출처)

이번 노벨화학상의 1/2는 아널드 교수님께 돌아갔습니다. 스테머르 선생님은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업적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받지 못하셨죠. 그리고 상의 나머지 1/2을 두 명의 과학자가 나눠서 받습니다. 그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하겠습니다 :)
by 로보스 | 2018/10/04 06:56 | |과학|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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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개성있는 젠투펭귄 at 2018/12/18 20:02
안녕하세요! 겨울방학맞아서 실험실에 막 들어간 지나가는 화학과 학부생입니다.
자주자주 인사드릴께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19/01/30 04:58
개성있는 젠투펭귄님// (주인도 잘 안 찾아오는) 다 죽어가는 블로그를 방문해주시고 답글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실험실 생활 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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