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의 진화
수요일에는 하버드의 Martin Nowak이 하는 세미나 <협동의 진화(Evolution of Cooperation)>를 들었다. 새로운 연구 결과보다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들을 정리하는 내용이 주된 세미나라, 정리해 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 글로 남긴다. 예전에 읽었던 <죄수의 딜레마>도 떠오르고...

현대 과학에 따르면, 지구는 약 45억년 전에 생겨났다. 그리고 첫 생명체의 흔적은 약 35억년 전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진핵생물이 등장한 것은 18억년 전이고, 다세포 생물이 등장한 것은 6억년 전이다. 이 다세포 생물 자체가 단세포 생물들의 "협동"이 이뤄낸 결과이기도 하지만, 다세포 생물이 등장한 이후로 다양한 차원의 "협동"이 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협동은 왜 등장했는가? 현대 진화론에 따르면 협동 자체가 어떤 "선택 우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협동을 기술하는 가장 간단한 모형은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가정한 후, 도움을 주는 사람은 손해 c를 보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이익 b를 얻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적응도(fitness)는 c와 b의 함수로 나타나게 된다. 좋은 예가 "죄수의 딜레마"이다. 내용은 워낙 유명하니 굳이 설명을 다시 하지는 않겠고, 다음과 같은 보수 행렬(payoff matrix)을 생각해보자. (여기서 b > c > 0)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상대가 협동하는 경우에도 나는 배신하는 것이 더 이득이고(b - c < b), 상대가 배신하는 경우에도 나는 배신하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에(-c < 0) 항상 배신할 것이다. 그런데 둘 다 합리적인 플레이어라면 결국 내시 균형에 이르게되어 가장 좋은 경우인 b - c를 택하지 못하게 된다. 이걸 보수가 아니라 적응도로 놓고 본다면 자연 선택 역시 결국은 내시 균형에 이른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이는 '협동'이라는 것이 진화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그럴까? 그래서 과학자들이 협동의 진화상 이점이 무엇일지 밝혀내기 위해 제안한 다섯 가지 메커니즘이 있는데, 각각 직접 호혜(direct reciprocity), 간접 호혜(indirect reciprocity), 공간 선택(spatial selection), 집단 선택(group selection), 친족 선택(kin selection)이라 불린다. 하나씩 살펴보자.

직접 호혜는 "니가 나를 도와준다면, 나도 너를 도와주겠다."로 요약된다. 만약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한 번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여러 번 한다고 생각해보자. 구전 정리에 따르면 이 경우 무조건 배신하는 것 외에도 합리적인 전략이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Robert Axelrod는 무한 번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가정하고 컨테스트를 열었다. 이 때 최후 승자로 뽑힌 알고리즘은 '팃포탯(tit-for-tat)' 전략이라고 알려진 알고리즘으로, "(1) 도와주는 걸로 시작 (2) 상대가 나를 도우면 나도 다음 판에서 상대를 도움 (3) 상대가 나를 배신하면 나도 다음 판에서 상대를 배신함"이라는 간단한 전략으로 돌아간다. 이 간단한 전략이 반복되는 경쟁 속에서 큰 이점을 준다는 것이다.

허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두 마리의 팃포탯 기계가 서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하고 있다면 결국 서로 돕고, 돕고, 도우면서 큰 이득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잡음"이 있다면 어떨까? 잡음의 예로 이런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도와준다고 도와줬는데 커뮤니케이션 상의 문제로 상대가 그걸 도움이 아니라 배신이라고 여긴다면? 그럼 상대는 나를 배신할 것이고, 나는 상대를 또 배신할 것이고, 이게 반복되어 양측 다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국제 정치에서 이런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좋은 전략이 '자비로운 팃포탯' 전략으로, 이는 팃포탯 전략에서 3번 조건을 다음과 같이 완화한 전략이다. "상대가 나를 배신하면 다음 판에서 나는 (1 - c/b)의 확률로 상대를 배신한다." 이 경우 배신-배신의 수렁에 빠지더라도 언제든 다시 나올 확률이 있기 때문에 다시 이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이로부터 Nowak은 '용서' 개념이 자연스레 진화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양한 전략을 쓰는 기계들을 어떤 집단 안에 몰아넣고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계속 진행시키면서 '진화'를 시킨다면 어떨까? 이것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항상 배신"하는 놈들이 우위를 점한다. 왜? 상대가 어떤 전략을 취하든 이익을 쏙쏙 빼먹을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항상 배신하는 놈들이 다수가 되면, 이제 팃포탯이 점점 그 수를 늘려나가기 시작한다. 항상 배신 vs. 팃포탯에서는 팃포탯이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배신끼리 붙는 경우와 팃포탯끼리 붙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렇게 팃포탯이 다수를 점하면, 이번엔 자비로운 팃포탯 기계들이 점차 세를 불려나간다. 팃포탯이 많아지면 앞서 말한 "잡음"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집단의 규모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유전자 부동이라는 과정을 거쳐 "항상 협동"하는 놈들이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집단에서는 다시 "항상 배신"하는 놈들이 가장 이익을 얻게 되어 다시 이놈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즉, 어떤 균형 상태에 도달하지 않고 주기적인 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Nowak은 이것이 인류 역사에서도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는 패턴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간접 호혜는 "내가 너를 도와준다면, 누군가 나를 도와주겠지."로 요약되는 메커니즘이다. 이 메커니즘은 "평판(reputation)"을 통해 작동한다. 내가 남을 도와주는 만큼 "평판"을 얻고, 이 평판이 높아질수록 남들에게 도움을 받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남들을 잘 돕는 사람을 더 돕고 싶어한다고 한다. "평판"은 내가 남을 돕는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이 메커니즘이 올바로 동작하기 위해서는 "관찰력"과 "소문"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남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돕는지 관찰하고 그걸 그 광경을 못 본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Nowak은 이것이 따라서 사회적 지능과 인간 언어의 진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이 간접 호혜가 요새 많이 연구되고 있는 것 같았다.)

David Haig은 이 두 가지 호혜 메커니즘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직접 호혜를 위해서는 얼굴이 필요하다. 간접 호혜를 위해서는 이름이 필요하다. (For direct reciprocity you need a face. For indirect reciprocity you need a name.)"

다음 메커니즘은 공간 선택이다. 공간 선택은 자연 선택이 특정한 집단 구조(population structure)를 통해 작동한다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몇 가지 예가 있는데, 한 가지는 이런 거다. 2차원 격자 위에 "항상 협동"하는 놈들과 "항상 배신"하는 놈들을 매 격자마다 배치하고 적응도에 따라 특정 개체가 소멸되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하도록 조건을 잡은 후 죄수의 딜레마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흥미롭게도 "항상 협동"끼리 한쪽에 모이고 "항상 배신"끼리 다른쪽에 모인다고 한다. 이를 들으면서 떠올랐던 것은 통계역학의 이징 모형에서 나타나는 자발적 자기화(spontaneous magnetization)와 '도메인' 개념이었다. 결국 이징 모형은 상호작용을 도입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형이고, 이 공간 선택 시뮬레이션 역시 잘 다루면 이징 모형으로 해석적 해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직업병

또 다른 예는 수학적 그래프 이론을 이용한 예로, 이번에는 기계와 기계를 연결하는 링크(link)들이 격자처럼 규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위상 구조를 가질 수 있다. (격자는 특정 그래프로 묘사가 가능하니까) 당연히 이게 좀 더 일반적인 모형이 되고, 이 모형으로 사회 네트워크(social network)를 잘 묘사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진화적 집합 이론(evolutionary set theory)이 소개되었는데, 이 이론에서는 사람들을 여러 집합에 속하게 한 후, (한 사람이 여러 집단에 속할 수도 있다) 각 사람이 자기가 속한 집단과는 좀 더 강하게 상호작용한다고 본다. 여기서 상호작용이란 집단의 다수가 취한 전략을 따라가는 경향을 이야기한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 인간의 행동에는 가장 잘 맞는 모형인 것 같다. 심리학 실험에 따르면 대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걸 따라간다고 하니까.

다음으로 집단 선택이 소개되었는데, 이 이론은 협동을 설명하기 위해 찰스 다윈이 언급했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이론이다. 이를 시험해보기 위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 여러 개의 집단을 만들고, 각 집단에 일정한 수의 구성원을 집어넣는다. 각구성원은 임의의 "전략"을 취한다. 그리고 집단 내에서 구성원끼리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반복한다. 그리고 적응도에 따라서 구성원이 죽기도 하고 스스로를 복제하기도 한다. 만약 구성원 수가 어떤 기준보다 적어지면 그 집단은 소멸해버리고, 구성원 수가 또다른 어떤 기준보다 커지면 그 집단은 둘로 나뉜다. 이 시뮬레이션을 쫙 돌려보면 협동을 하는 집단이 살아남는 결과를 얻는다고 한다. 집단과 집단 사이의 경쟁은 도입하지 않았음에 주목하자. 즉 집단 내의 경쟁만으로도 한 집단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친족 선택이 다루어졌다. 이 개념은, 내 기억에 따르면 도킨스가 자신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언급하고,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는데, 간단히 말해 유전자가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과 같은 유전자가 심겨져 있을 확률이 높은 개체들을 우선적으로 돕는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을 돕는 것은, 자식이 내 유전자를 갖고 있을 확률이 100%이기 때문이고, 형제가 형제를 돕는 것은, 형제가 내 유전자를 갖고 있을 확률이 50%이기 때문인 것이다. 생물학의 현대 진화 이론을 종합하는데 큰 기여를 한 홀데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내 형제 두 명이나 내 사촌 여덟 명을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수 있다."[1] 이는 해밀턴의 규칙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협동에서 해밀턴의 규칙이 성립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를 대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론들이 등장했다. 그 중 하나가 포괄적 적응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이다. 일반적으로 적응도는 한 개체가 얼마나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는가로 측정된다. 포괄적 적응도 이론에서는 한 개체가 낳을 수 있는 자손의 수와 이 개체가 협동을 통해 생명을 유지시키게 하는 다른 개체의 수를 합쳐서 ("포괄적") 적응도를 계산한다. 예를 들어 물에 세 명의 아이가 빠진 상황을 생각해보자. 사람 A의 수영 실력으로는 한 명도 구하지 못하고, B의 수영 실력으로는 단 한 명 구할 수 있다. 그런데 둘이 협동하면 셋을 다 구할 수 있다고 할 때, 포괄적 적응도는 A에게 +1.5, B에게 +1.5를 더해주는 것이다. 이 이론의 장점은 적응도가 이제 가산적(additive)이라는 것이고,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이게 정말 큰 장점이라고 한다. 이 이론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Nature 466 (2010), 1057–1062을 참조하자.

이 세미나를 들으면서, 진화에 대한 수학적 접근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깊은 수학이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진화론과 생물학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론가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몇 가지 주제는 내가 아이디어를 내서 연구에 참여해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이렇게 세미나를 주워듣다 보면 나도 언젠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by 로보스 | 2013/02/23 00:17 | |과학|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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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구전정리 at 2013/02/23 13:48
포크(?) 정리는 적절한 할인율하에서 무한반복게임의 균형 집합이 굉장히 크다는 내용입니다. 계속 배신하는 것도 균형이 되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13/02/24 10:44
구전정리님// 오 그렇군요. 역시 주워들은 것만으로 쓰니 밑천이 금방 드러나네요. 수정하겠습니다 :)
Commented by 零丁洋 at 2013/02/24 10:01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이라 정말 재미있군요. 그런데 궁금한 것은 세포들도 사람 처럼 이기적인 선택을 할까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13/02/24 10:45
零丁洋님// 단세포생물들이 군집을 이루는 걸 보면 협동도 하는 것 같죠?
Commented by 김은수 at 2013/03/29 21:49
오 안녕하세요ㅎㅎ저 기억 하실런지

진화 관련 글 읽으러 왔다가 흥미로운 글을 찾았네요..

레포트 주제가 공중보건학이 자연도태에 역행한다는 주장에대한 의견쓰기거든요...ㅎㅎ

너무 오랜만에 연락드리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ㅋㅋㅋ 페이스북 보시면 잘 지내시는거 같네요 ㅎㅎㅎ

안녕히 계세요ㅋㅋ
Commented by 로보스 at 2013/04/13 00:02
은수// 오랜만이구나 :) 은수도 잘 지내지?
Commented by 김은수 at 2013/04/28 15:45
저야 뭐 ㅋㅋ 10년후에 선생님 이름 신문에서 볼수 있을거 같은데 ㅋㅋㅋ
서울과고 동기한테 물으니 선생님 알더라구요 ㅋㅋ 바위에서 유명하다고
Commented by 로보스 at 2013/04/29 13:50
은수// 어이쿠 ( - -); 허세 부리다 망하는 수가 있지... 은수도 잘 지내렴 ㅎㅎ
Commented at 2015/09/27 04: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15/10/13 23:19
비밀글님// 방문 감사합니다. 어디로 퍼갔는지 알려주시면 더 좋았을텐데요 ^^
Commented by kipid at 2015/09/28 23:16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협동이 진화적으로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지도 연구가 되고 있었군요(?). 신기한/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네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15/10/13 23:19
kipid님// 세상에는 재미있는 연구가 참 많지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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