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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갈릴레오를 존경했었다. 특히 그 엄청난 종교 권력 앞에서 굴하지 않고 쿨하게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니, 이건 너무 멋지잖아! 그러다가 대학 들어와서 과기역을 수강하면서, 갈릴레오에 대한 이 환상은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상세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사실 갈릴레오가 상당히 "정치적"이었고 심지어 "비열"하기까지 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나 피사의 사탑 실험 등이 다 개뻥이라는 걸 배운 것도 그 때고. 이렇게 형성된 갈릴레오관(!)은 이 책을 읽기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파이어아벤트의 책[1]에서도 갈릴레오의 방법론은 '과학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확신은 점점 강력해져 갔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 솔직히 혼란스럽다. 이 책은 갈릴레오에 대해 "너무도 우호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책이 허접하면 그냥 내 원래 생각을 고수할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다! 이 책의 저자는 예전에 감명 깊게 읽은 <해상시계>의 (공동)저자인 데이바 소벨로, 항상 엄청난 고증을 거쳐 책을 꼼꼼하게 써낸다. 이 책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510쪽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_-에 촘촘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쌓아두었다. 당연히 피사의 사탑 실험이나 "그래도 지구는 돈다." 등의 '틀린' 사실은 틀렸다고 순순히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여러 자료를 사용해 갈릴레오의 이미지를 '진리를 탐구하는 의지의 노학자'로 구성하고 있다. 갈릴레오...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 라고 쉽사리 인정해버리면 로보스가 아니지! 흠. 일단 이 책을 잘 살펴보면 갈릴레오에게 상당히 불리한 사료들도 전부 갈릴레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메디치 가에 굽신거리면서 입신양명을 꾀한 것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써놓았고, 로마에 압송되어 조사를 받을 때 보인 비굴한 태도도 갈릴레오가 독실한 가톨릭 교도여서 교회와 싸울 수 없어서 그랬다- 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사실 사료라는 건 특정 대화나 행동은 보여줄지 몰라도 그 사람의 속마음을 보여주지는 않고, 또 사료가 1분 1초를 전부 기록하는 게 아니다보니 사건이 단속적으로 기록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부분은 그저 짐작으로 쓸 수 밖에 없는데, 작자의 사관이 어떠냐에 따라 이것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막을 수 없을 듯. 아마 이 책도 그런 한계를 안고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갖고 있던 갈릴레오의 상 역시 왜곡되어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갈릴레오를 저기 여의도 큰 집에서 싸움박질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급의 '정치인'으로 분류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확실히 갈릴레오는 '과학자'라는 것을 재확인했고, 그 인격 역시 (뉴 모 씨처럼) 파탄에 이르지는 않았음을 알았다. 특히 갈릴레오의 인간 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기에, 이 책에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세밀히 묘사한 것을 보면서 꽤나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나의 생각은 그렇다. 내가 과기역 시간에 배운 것이나 파이어아벤트의 책에 실린 내용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분명 '비과학적' 방법을 써서 자신의 주장을 확산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그 '주장'의 근거를 찾아낸 과정은 현대의 눈으로 봐도 제법 과학적이었고, 당시의 수준을 생각해볼 때 무척 창의적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가 '비과학적' 방법을 사용한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고, 어쩌면 그것이 하나의 사상이 퍼져 나가는 '당연한' 메커니즘일 수도 있으니까.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는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으면서도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종의 '구도자'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없기에 짐작할 수 밖에 없지만, 아마 자신의 신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 사이에서 하나를 딱 선택하는 대신 계속해서 갈등하며 고민했을 것 같다. 서평을 쓰면서 책 이야기는 거의 안 했네.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이 책은 상당히 두껍다. 하지만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적어서 그리 빡세지는 않다. 나만 해도 출퇴근 시간만 이용해서 사흘 만에 다 읽었는걸. 또 데이바 소벨답게 꼼꼼한 사료 인용과 실감나는 묘사가 돋보인다. 다만 <해상시계> 읽을 때도 느꼈던 건데, 이 책 또한 그냥 펼치기만 하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다. 조금 질긴 부분도 있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눈에 잘 안 들어와서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두 권이 모두 이런 걸 보니 역자의 잘못보다는 저자의 잘못이 아닐까 싶다. 아, 번역은 전반적으로 괜찮은데 조금 이상한 게 있다. 책 초반에는 God을 전부 '하나님'으로 번역하다가 끝에 가면 '하느님'으로 번역한다. (내가 기독교인이라서 이런 쪽에 조금 민감한 것 같다 -_-;) 갈릴레오와 그의 주변인들은 전부 가톨릭 교도였으니 그냥 일관되게 '하느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총평을 내리자면, 갈릴레오에 대한 전기로 훌륭한 책이다. 내 기억에 이 책이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추천한 과학사 책 중 하나였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위인전은 이런 책으로 읽어야지. 앞서 이야기했듯 저자의 사관이 편향되어 있다는 게 좀 아쉽다만, 완전히 객관적인 책이란 건 어차피 존재할 수 없으니까. 음 그러고보니 조금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바로 절판되었다는 점이다 ;;; 하지만 구할 수 있다면 구해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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