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오독?
내 이럴 줄 알았음.

내가 성경 해석에 대해 김규항 씨의 글을 반박했더니 어떤 분이 창조적 오독 운운하면서 나를 매도했다. 또 볼 사람도 아니고 그냥 무시하고 살아도 되겠지만, 혹시 내가 자기모순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까봐 약간의 변명을 붙이려 한다.

#1.
학적으로 엄밀한 글은 아니지만, 우선 이 글을 통해 '창조적 오독'이란 무엇인지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이 글에서는 오독을 '빈곤한 오독'과 '풍요로운 오독'으로 나누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 분류를 따른다면 김규항 씨의 글은 빈곤한 오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그러나 '작자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하고 언제나 '오독력'에 의지해서 책을 읽는 사람은,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도 늘 독선적인 결론만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독자로서의 가능성을 편협하게 하는 독서법이다."라고 했는데, 김규항 씨는 자신의 고정관념, 즉 예수를 사회혁명가로 보는 관점에 매몰되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이것은 그리 바람직한 해석법이 아니다. 원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파악하고 떠들어야 할 것 아닌가?

다른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해당 구절에 대한 김규항 씨의 해석은, 과학으로 치자면 양동봉이나 이재율 급의 해석이라는 것이다. 과학에는 잘 정립된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을 따라 연구를 해나가야 인정을 받을 수 있듯이, 성경 해석에도 잘 정립된 방법론이 있고, 그 방법론을 따라 해석을 해야 용인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연구와 같은 '창의적인' 연구도 과학적 방법론의 테두리 안에 있었던 걸 떠올려볼 때, 성경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도 기존 성경 해석학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규항 씨는 그걸 벗어났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해석이 되는 거고. 나를 비난한 분이 과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이것이 유효한 반박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여하간 그 역시 양보할 수 없는 '정립된 방법론'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2.
어떤 독자는 파이어아벤트의 인식론적 아나키즘에 감동받은 인간이 어떻게 저런 보수적인 글을 쓸 수 있느냐, 라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파이어아벤트에 관련해서 쓰다가 어느 글에선가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완전한 아나키즘은 추종할 수 없다. 나는 성경이 영감으로 이루어진 신의 계시라고 믿고 있고, 따라서 성경 해석은 내 입장에서 상당히 중요한 일이 된다. '신의 가르침'을 풀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성경의 필자와 그가 상정한 예상 독자들이 본문을 뭐라고 이해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런 내 입장에서 문맥과 전혀 동떨어진 해석을 하는 김규항 씨의 글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또한, 나의 반발이 정말 파이어아벤트의 프레임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파이어아벤트는 하나의 특정 담론(그의 글에서는 '정립된' 과학)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현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권력을 쥔 자들이 그 담론을 강요하는 상황은 더욱 옳지 않다. 그는 모든 담론들이 "링 위에서" 대등한 입장으로 치고 받고 할 때 건강한 학문이 자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내가 김규항 씨를 권력으로 찍어눌렀는가? 독자들에게 내 주장을 강요했는가? '성경 해석'이라는 링 위에서, 나는 김규항 씨와 대등한 입장에서 그의 글을 반박했을 뿐이다. 그게 잘못된 것일까?

#3.
혹시 김규항 씨의 해석 방법론이 어떻든 그 결과물만 좋으면 된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좋은지 안 좋은지 누가 평가하는가? 방법론을 제멋대로 내버려두면 결국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취하게 된다. 내가 원글에서 한국 개신교회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강해볼까 한다. 최근에 읽은 성경 해석학 책에서 많은 설교자들이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성경의 원의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거기서 예로 든 것 중의 하나가 요한삼서 1장 2절의 해석인데, 본문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개역개정, 요삼 1:2)

어떤 설교자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기독교인은 ① 영적인 성공 ② 세속적인 성공 ③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뭔가 안 느껴지는가? 그래, 이게 바로 '기복 신앙'의 근거다. 세속적인 성공과 건강을 열심히 구하라는 말이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 이 성경 구절의 필자와 독자는 전혀 그런 의미로 본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해석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애초에 무슨 교리를 설명하는 부분이 아니라 그냥 인삿말이잖아 -_- 이런 일은 설교자들이 본문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보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저런 해석이 옳은 것 같은가? 아니라면, 김규항 씨 역시 마찬가지로 옳지 않은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

#4.
마지막으로 그럼 내가 김규항 씨의 오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히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나는 김규항 씨의 해석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 역시 어떤 사람들에게는 깨달음을 줄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작업인) 성경의 원의를 밝혀내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의 원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김규항 씨를 반박했을 뿐이다. 이 글에서 논한 것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원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 배경에 깔고 있으므로,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글도 그저 뻘글 배설로 보이겠지. (그런데 원의를 따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텍스트가 왜 필요한가?)
by 로보스 | 2009/11/06 09:56 | |잡념|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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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긁적 at 2009/11/06 11:36
찌질이를 상대해주시다니.
자비로우신 분이시군요. d-_-b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11/06 11:45
긁적 형// ㅋㅋ 아니 뭐 제 글을 대충 읽은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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