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왼쪽으로, 좀 더 왼쪽으로>, 한겨레출판.

오랜만에 올리는 독후감이네. 동생 녀석이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왔다며 읽어보라고 던져줬다. 사실 박노자 씨 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잘 안 읽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운 단어를 많이 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뭐랄까, 문장 구조 자체가 쉽게 이해되는 구조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동생이 보라고 준 책이기도 해서 추석 내내, 그리고 그 이후로도 계속 붙들고 있었다.

읽으면서 '그렇구나-' 싶은 것은 많았는데, 읽고 나니 머릿속에 남은 건 거의 없다. 왜? 어차피 거의 다 인터넷상에서 이리저리 주워들은 적 있는 이야기들이고, 게다가 대개 내가 다 동의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너무 오른쪽에 와 있기 때문에 좀 더 왼쪽으로 가야 한다는 건 나 또한 동의하는 바이고, 전임 대통령들이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것에도 동의하고,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가 글러먹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럼 뭘 배운 거냐 -_- 머릿속에 기억도 안 남을 이야기를 읽느라 며칠을 보내다니 T_T

아 맞다, 한 가지 놀라웠던 건 필자가 낙태에 반대한다는 점이었다. 소위 '유럽 좌파'들은 '내 몸의 권리'를 주장하느라 낙태에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물론 필자가 이 부분을 지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비교적 단호하게 낙태에 반대하는 건 신선했다. 게다가 개신교가 낙태 반대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일갈하다니! (개신교 신자로서, 교회 안에서 낙태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인 걸 보고 자란 나에게는 이 말이 꽤나 충격이었다.) 이건 아마 필자가 생명 존중을 강조하는 불교 신자라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 그럼 이번엔 이 책을 나에게 권한 동생의 소감과 연결지어서 이야기를 해볼까. 동생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느꼈고 -_- 어서 이 나라를 떠나 캐나다나 북유럽에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단다 -_-;;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이 그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가질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나라의 "현시창"스러움을 너무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박노자 씨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진보가 아니라며 공격을 퍼붓는데, 사실 박노자 씨 입장에서 '진보'로 희망을 가질 만한 곳은 진보신당 뿐인 듯 하다. 그런데 과연 그 미약한 당에 의해 이 나라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이 나라는 그저 시궁창...

나는 소위 '좌파'들의 글을 잘 안 읽는 편인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이 책을 보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현실을 파악하고 지적하는 것은 잘 하지만, 대안이 없다는 것. 아니 좀 더 정확히 지적하자면 소시민 1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 뭔가 정체(政體)를 어떻게 어떻게 해보자는 둥,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어떻게 해보자는 둥, 거창한 이야기들은 많은데, 그럼 그걸 이루기 위해 도대체 나는 뭘 하면 된단 말인가? 그저 진보신당에 한 표 던지면 되나? 촛불집회 나가서 전경들한테 방패로 찍히면 되나? 만약 "국개론"이 사실이라면 현행 정치 체제 아래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휴, 답답하다. 정말 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우석훈 박사 말대로 바리케이트와 짱돌을 꺼내는 수 밖에 없는가? 요새 읽고 있는 <The Left 1848-2000 -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와 맞물려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by 로보스 | 2009/10/14 17:05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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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진 신, 김영사. 노암 촘스키, 촘스키, 사상의 향연, 시대의창. 스콧 버거슨, 대한민국 사용후기, 갤리온. 박노자, 왼쪽으로, 좀 더 왼쪽으로, 한겨레출판. (9/28-10/6) [감상문] * 최종 업데이트 : 2009. 10. 14. ... more

Commented at 2009/10/14 17:2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10/15 12:36
비밀글님// 이런 좋은 답글은 공개로 써주셔도 되는데 ㅋㅋ 근데 그것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국가 정책을 바꾸는 건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Commented by Bloodstone at 2009/10/14 19:06
저도 한참 '그래서 어쩌라고'를 고민해 보다가... '잘 모르면 떠들지 않는 게 차라리 잘 하는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_-;

뭐랄까, 낙태 같은 문제는 현실적으로는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심정적으로 귀여운 꼬맹이들을 생각하면 또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인간의 감정적인 판단과 현실적 문제들이 꼭 겹치지는 않는다는 게, 박노자 씨 같은 이상주의적 좌파들에게는 상당히 골치아픈 얘기겠죠. 철 지난 영웅주의 영화나 만화에나 나올 법한, '모두를 구한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에휴 하여간 현실은 시궁창...인지는 몰라도, 정말 답이 없게 복잡하긴 한 것 같아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10/15 12:37
Bloodstone님// 흠 뭐 박노자 씨는 대안을 '잘 모르는' 것 같지는 않고요, 다만 그 대안을 이루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거죠. 그렇다고 시궁창에서 하염없이 뒹굴고만 있는 것도 그렇지 않나요.
Commented by _tmp at 2009/10/14 19:11
박노자같이 나름 본좌급으로 추앙(?)받는 좌파 논객도 현실 좌파에 대해서는 별 아이디어를 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국 좌우 도식을 개판으로 만든 북조(...)의 문제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왜 원래 좌파는 내부 대립으로 망한다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10/15 12:38
_tmp선배님// 동의합니다. 좌파가 많이 강력하다는 유럽에서도 (그나마 조금 낫긴 하지만) 시궁창이 계속되는 걸 보면 본질적인 문제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Commented at 2009/10/15 16: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10/15 17:06
비밀글님// 아, 제 말은 저자가 아니라 독자 개인 이야기였습니다 ^^; 저도 그 분 책을 읽어봤지만, 제가 무엇을 해야할 지는 여전히 모르겠더라고요.
Commented at 2009/10/15 17: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10/15 17:10
비밀글님// 네. 저도 그 정도가 한계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정녕 더 좋은 길은 없는 걸까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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