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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디서 봤는지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김우재 박사님 블로그에서 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네. (책이 김우재 박사님 스타일이기는 하다 ㄲㄲ) 리스트에는 한참 전에 올려놨는데 책이 절판돼서 못 구하는 동안 잊어버린 듯 -_-;; 뭐 여하튼, 이 책은 킹왕짱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 옹께서 직접 생물학에 대해 집필하신 책이다. 솔직히, 책 제목이 저 모양-_-이다보니 책을 처음 받을 땐 일반생물학 교과서를 요약해 놓은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우려를 첫 장에서부터 가볍게 불식시켜 주었다. 전혀 다른 구조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넓은 주제에서 좁은 주제로 나아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먼저 "과학을 지배하는 철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생물학을 지배하는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끌어내고, 이어 "그 철학이 반영된 생물학이란 어떤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룬다. 거칠게 구조를 요약하자면 전반부에는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후반부에는 '생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달까. 나는 도킨스와 와인버그에서 받은 인상 때문인지 "과학에 대해 글 쓰는" 과학자들은 과학만 잘 안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 전반부를 읽으면서 그러한 나의 생각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철학, 특히 생물철학에 대해 깊은 조예를 보여준다. 일례를 들어, 상식적 실재론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많은 과학자들과 달리, 저자는 다른 대안들을 검토한 후에 자신의 '신념'이 상식적 실재론임을 설파한다. (이것만 봐도 이미 ㅎㄷㄷ) 책 전반부에선 이런 식의 '신중한' 검토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물론 저자는 생물학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런 신념을 생략하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가끔 있긴 하지만, 그 정돈 다 이해할 수 있다.) 아참, 예전에 큐리아가 '근접 원인'과 '궁극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적[1]이 있는데, 이 책 전반부에서 그 내용이 심도 있게 다뤄진다! 자세한 설명을 보니 어느 정도 수긍가는 면이 있더라. 하지만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 후반부에선 생물학의 '구조'를 설명하고, 실례로 네 개의 분과 생물학을 제시한다. 분류학, 발생학, 진화학, 생태학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인간의 진화'라는 거대 떡밥을 마무리로 투척한다. 저 네 개의 분과를 선택한 이유로 저자는 자신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물론 저자가 동물학 전공이기는 하나 분자생물학-생화학이 다뤄지지 않은 점은 참 아쉽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서 분류학, 발생학, 진화학에 각각 "무엇?", "어떻게?", "왜?"라는 소제목을 붙여놓았다는 것이다. 이 소제목들을 보니 중학교 때 배운 생물이 연상되는데, 1학년 때는 주로 분류학에, 2학년 때는 생리학에, 3학년 때는 유전학과 진화학에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이거 설마 "무엇?" → "어떻게?" → "왜?"의 순서로 배운 건 아니겠지 ㄷㄷㄷ (우리의 교육부가 그런 도식을 가지고 교과서를 만들었을 리가!) 이 책은 생물학의 분과 학문들을 연결하는 고리로 '진화'를 제시하고 있다. 현대적 종합(modern synthesis) 이후로 진화가 생물학의 중심 개념이 되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예 진화를 중심으로 각 분과 학문들을 연결짓는 작업은 또 처음 본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응? 진화는 분과 학문의 하나로 다뤄진다며? 생각해보니 저자는 9장에서 진화를 다루기 훨씬 전에 이미 '근접 원인'과 '궁극 원인'을 설명하면서 진화 개념을 철학적 기반으로 깔아놓았다. 예컨대 동물의 특정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지적 설계자에 의해 그렇게 설계되었다." 이외의 설명을 도입하려면 궁극 원인, 즉 '진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을테니 :) 오랜만에 생물학과 철학 양쪽에 다 충실한 책을 만나서 참 기뻤다. 이렇게 철학에 조예가 깊은 과학저술가들이 많이 늘어나서 쉽고 재미있는 책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런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사람이 전세계적으로 봐도 얼마나 되겠냐만은 ㅋㅋㅋ 생물학에 관심 있는 분들께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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