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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구나 -_-;; 근데 이젠 불똥이 양자역학으로까지 튀었다. 철학이니 상대성 이론이니 하는 분야는 내가 깊이 아는 분야들이 아니라서 닥치고 관전하고 있었는데, 양자역학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한 마디 해야겠다.
양자역학에서 하나의 계의 상태는 파동함수로 기술된다. 우리가 이 계의 상태를 측정하면, 파동함수가 붕괴해서 확률적으로 고유함수 중에 하나가 된다. 그때야 비로소 위치나 운동량과 같은 물리량들이 고유함수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노정태님이 말하는 "모든 사물은 '어딘가'에 있다. '어딘가'에 있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사물이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양자역학과 맞지 않는다. 위치를 측정하지 않은 전자는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어와 칸트>) 이 문단은 아이추판다님의 시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이추판다님은 '어딘가'라는 것을 말 그대로 3차원 공간(혹은 4차원 시공간) 상의 위치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모든 사물은 '어딘가'에 있다."라는 명제는 틀린 명제가 된다. 위치 연산자에 대한 고유함수를 그 상태함수로 갖지 않는 입자는 명확하게 정의된 위치를 갖지 못하니까. (부연하자면, 위치 연산자에 대한 고유함수는 델타함수인데, 델타함수를 상태함수로 갖는 입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입자는 '어딘가'에 있지 않은 셈이다.) 그럼 노정태님이 틀린 것일까? 노정태님의 원글을 보자.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떤 사물을 어떤 식으로건 경험할 때, 그것으로부터 공간 개념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사물은 '어딘가'에 있다. '어딘가'에 있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사물이란 있을 수 없다. 칸트가 의미한 '선험적 공간'은 바로 이런 개념이다. (<근대 철학과 경험 개념>) 내가 이해하기로 노정태님의 시각은 사물이 "이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이다. 실재하는 사물이라면 관념적 세계가 아니라 바로 이 세계 안에 존재한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어딘가'라는 표현을 써서 어딘지는 모르지만 여하간 이 세계 안에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의 위치 개념과 노정태님의 관점은 양립할 수 없는가? 난 충분히 양립한다고 생각한다. 양자역학이 특정 실재 입자가 이 세상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아이추판다님의 글에 달린 답글로 ddd님과 아이추판다님이 논하셨지만, 나는 입자의 상태함수가 존재할 수 있는 힐베르트 공간을 '칸트 공간'의 확장으로 보는 것에 아무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벡터로 표현할 수 있는 양은 전부 '어딘가'에 있는 게 된다고? 그거랑은 조금 다른 얘기인 듯 싶다. 임의로 잡은 힐베르트 공간 안의 벡터는 '실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전자는 '실재'하니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양자역학의 원리가 칸트 철학을 깨부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아이추판다님이 인용하신 크립스의 글은 '측정'에 관한 이야긴데, 앞서 이야기한 위치 공간에 대한 이야기와는 그리 연관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크립스는 '측정'이라는 개념이 칸트와 보어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논하고 있고, 보어의 '측정'은 그 자체가 실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칸트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이야기가 칸트의 '공간' 개념이 양자역학의 원리에 의해 깨진다는 명제의 근거로 쓰일 수 있을까? 내가 볼 때, 두 분이 생각하는 '칸트 공간' 개념의 핵심이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가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 같다. 아이추판다님은 칸트 공간이 물리학적 3차원 공간과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계시고, 그 근거로 19세기에 칸트 철학자들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자들이 싸운 사건을 계속 들고 나오신다. 반면 노정태님은 칸트 공간이 실재들이 존재할 수 있는 어떤 '프레임'이라는 점에 주목하신다. 분명 칸트가 물리학적 3차원 공간에서 영감을 얻었고, 자신은 물리학적 3차원 공간이 칸트 공간과 동일하다고 믿고 죽었지만, 그의 철학을 이해할 때는 칸트 공간이 반드시 물리학적 3차원 공간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물리학에서 새롭게 밝혀낸 '공간의 성질'들을 칸트 철학으로 끌고 오면 칸트 공간 개념이 '폐기'되는 대신 '확장'된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일테고. 아무리 새로운 근거를 가지고 나온들, 두 분의 관점이 완전히 다른데 한 쪽이 다른 쪽에 승복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_- @ 따로 트랙백은 안 보내나, 두 분 다 이글루스를 쓰시기 때문에 핑백이 날아갈 듯. 괜히 싸움판에 끼어드는 건 아닌가 몰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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