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D. 카푸토, <HOW TO READ 키르케고르>, 웅진지식하우스.

키르케고르(그러고보니 예전엔 '키에르케고르'라고 썼던 것 같은데...)에 대해선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실존주의를 겉핥기로 공부하면서 그 '아버지'가 키르케고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바르트와 본회퍼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들에게 키르케고르가 큰 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보았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나 신정통주의나 다 흥미로운 녀석들인데, 그게 키르케고르라는 한 사람으로 수렴되다니 관심을 안 가질 수 있겠는가 +_+

이 책에선 키르케고르의 주요 저작들을 인용하며 키르케고르의 사상들을 살펴본다. 특히 저작들을 시간 순서대로 늘어놓아 키르케고르의 사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발전하는지 살펴볼 수 있게 해두었다. 자, 목차를 보자.

1. 나에게 진리인 진리 : 《기록과 일지》
2. 심미주의 :《이것이냐 저것이냐》
3. 윤리적 실존 : 자유, 결단, 선택
4. 신앙의 기사 : 《공포와 전율》
5. 진리는 주체성이다 : 《결론으로서의 비학문적 후서》
6. 익명성 : 인격을 갖지 않은 자
7. 현대 : 《두 시대》
8. 사랑 : 《사랑의 역사》
9. 자기 : 《죽음에 이르는 병》
10. 염세 : 슬픔과 혐오에 대한 찬양


우선 이 책은 키르케고르의 '진리관'을 살펴본다. 과연 진리는 무엇인가? 실존주의의 아버지답게, 키르케고르는 그간 철학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객관적 진리'를 부정하고 '주관적 진리'를 주장한다. "내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내가 알아야 할 바를 명확히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지만, (...) 요는 나에게 진리인 진리를 찾는 것, 내가 그것을 위해 기꺼이 살고 또 죽을 수 있는 그런 이념을 찾는 것이다." (19쪽, 강조는 책에 따름) 그런 이념이 무엇인가? 키르케고르에게는 그리스도교가 바로 그런 이념이었다.

이어 2장에서 4장에 걸쳐 키르케고르가 주장한 '실존의 세 단계 운동'을 다룬다. 가장 낮은 단계는 심미적 실존이요, 그 다음은 윤리적 실존이고, 마지막 단계는 신앙적 실존이다. 심미적 실존 단계에서 사람은 자신의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매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환상을 누리며 살아간다. 반면 윤리적 실존 단계의 사람은 윤리학을 따르며 살아가며, 반대로 매 순간이 '반복'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키르케고르는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고백한 것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한다.

이 단계들을 뛰어넘으면 신앙적 실존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 단계를 설명하기 위해 예시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아브라함의 고사이다. (창세기 22장)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 그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윤리학의 명제이다. 하지만 신의 명령이 떨어지자 아브라함은 그 명제를 위반함으로 신앙을 확증한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자식을 포기한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신이 자식을 죽이는 걸 못 본 척 할 리가 없다는 데서 기인했다. 키르케고르는 동일한 상황에서 '자식이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고민을 하는 자는 진짜 절망에 빠진 자라고 보았다. 신앙은 그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어 진리관, 익명성, 현대 등에 관한 키르케고르의 사상이 소개되나, 여기선 모두 뛰어넘어 9장에서 나오는 '절망'의 개념을 살펴보자. 앞서 이야기한 절망의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절망은 영혼을 망가뜨리는 '질병' -- 죽음에 이르는 병 -- 으로 묘사되는데, 이 질병은 영혼의 균형 상태가 깨지기 때문에 일어나게 된다. 그 균형은 왜 깨지는가? 창조자인 신과의 관계가 올바로 정립되지 않았기에 깨진다. 즉, 신을 부정하고 자기 홀로 살려고 하는 순간 인간은 절망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절망'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단어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 오해 없길.)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염세'였다. 키르케고르는 앞서 이야기한 '신앙적 실존'의 관점에서 진정한 신앙인은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부인하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이 모든 것을 빼앗아가고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신이 사랑이라는 것(요일 4:16)을 신뢰하는 '올바른' 신앙을 보이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키르케고르가 결혼 그 자체가 악이라고 규정한 부분이었다. 키르케고르는 타락(창세기 3장)한 이후의 성 생활은 욕망에 의한 것이므로 죄악이라고 말한다. "성적 욕망에 의한 종족의 번식은, 그 자체가 죄의 결과로서, 일종의 '범죄'이다." (187쪽) 키르케고르는 결혼식을 집전하는 목사들이 예수를 충분히 따르고 있지 않다며 신랄하게 공격한다.

책에서도 비판하고 있지만, 성경이 결혼 자체를 부인하고 있지 않다.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는 결혼식에 참석했고(요한복음 2장), 결혼을 신의 창조물로 인정하는 가르침을 설파하였다(막 10:6-9). 키르케고르는 신앙인이 죄를 짓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아닐까? 물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성경 곳곳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때(로마서 7장 등) 완벽한 인간이 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선 키르케고르가 너무 극단까지 나아간 것이 아닌가 싶다.

어찌 됐든, 다 읽고 나니 키르케고르가 천재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후대의 사상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들이 전부 키르케고르에서 기인한 것 아니던가. 흥미롭고, 유익했다. 특히 이 책은 키르케고르의 사상을 잘 조직화해서 보여주고 있고, 다른 사상가들과의 관계를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기에 만족스러웠다. 물론 지면 관계상 그 사상을 깊이까지 다루지는 못했지만, 나 같은 늅늅이에게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나중에 좀 더 깊이 공부해보고 싶다.
by 로보스 | 2009/08/26 13:20 | |감상|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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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할을 수행한 사람으로 나온다. 특히 이 책 &lt;그리스도를 본받아&gt;가 교회에 제법 영향을 미쳤다기에 호기심이 동했다. 그러던 차에,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키르케고르를 읽는 중에 키르케고르가 이 책을 그렇게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 책의 사상이 키르케고르에게 깊은 감화를 줬다나?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책을 사려 ... more

Commented by newisdom at 2009/08/31 16:29
정모가 쓴 염세에서 극단으로 나아갔다고 느낀 부분은
키에르케고르의 출생배경이 많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8/31 16:37
newisdom 누나// 출생배경 및 성장배경이 투영되어 있겠지요. :) 이 책에서도 그런 식으로 설명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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