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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애(ㅋㅋ)하는 후배 jade1427님이 벤야민에 꽂혀있을 때 추천해준 책. 벤야민 책 중에선 비교적 쉬운 편이라 읽을만할 거라고 추천해줬는데 이 뭐 ㅎㄷㄷ... 역시 jade1427님은 좀 짱인듯 굽신굽신...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이 글에서 내가 이해한 바를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뭐 틀렸으면 jade1427님이 오셔서 까주시겠지 -3- 고전 예술은 '유일성'을 예술성의 중요한 척도로 생각해왔다. 회화를 생각해보자. 아무리 정교한 모작이라 해도 '원본'이 아니라면 그 예술성은 확 떨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예술성을 판단하는 '잣대'는 어디에서 왔는가? 주지하다시피 예술은 많은 경우 제의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제프리 밀러 같은 사람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ㅋㅋㅋ) 벤야민은 '고전적인 예술성'이 바로 이 제의의 흔적이라고 주장한다. 제의에 사용되는 예술작품은 특정 공간에 특정 사람들만 접근가능한 형태로 보관되었고, (제의를 집행하는 집단의 권위를 위해서겠지?) 이런 특성이 고전 예술작품의 '유일성'으로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아우라(Aura)라는 용어를 사용해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사실 난 이 책에서 '아우라'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찾지 못했는데, 대강 느껴지는 의미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아우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유일한' 고전 예술작품은 그 자체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갖고 있고, 모작의 경우에는 그 아우라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진품으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벤야민은 원작과 모작을 구분하는 고전 예술의 기준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랬다"는 것을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고전 예술은 이런 기준을 갖고 나름대로를 계속해서 발전시켜왔는데, 현대에 들어서면서 큰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기술복제'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자. 사진이나 영화에 대해 우리가 원작과 모작을 구분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2009년 7월 3일 21시 10분에 코엑스 메가박스 14관에서 상영된 <마더>만 원작이고 나머지는 다 모작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당연히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예술작품의 '유일성'을 논할 수 없게 된다. 아우라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럼 이제 예술은 더이상 '제의적 가치'로 평가될 수 없다. 바야흐로 새로운 잣대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벤야민은 그 잣대로 '정치적 잣대'를 제시한다. 사진이나 영화나 그 제작 과정에서 사람들은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 카메라의 역할이 독특하기 때문에 정치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내가 정확히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는데, 벤야민이 제시한 예를 들어 내가 이해한 바를 기술하겠다. 우선 카메라는 세상을 분절하여 재조합한다. 영화를 생각해보자. 어떤 영화감독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영화를 통으로 찍지 않는다. 영화는 '신'으로 분절되어 촬영되고, 각 신이 실제로 찍히는 순서나 신 사이의 시간 간격은 영화 내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 사진은 어떻게 된 것일까? 벤야민은 사진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에 주목한다. 현미경 사진, 내시경 사진을 생각해보라.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거리'를 두고 있던 대상의 내부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예술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간다. 벤야민은 예술의 수용자가 '촉각적 수용'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도 좀 어려운 소린데 ;ㅁ; 벤야민이 제시한 예는 '건물'이다. 건물 그 자체가 고전적인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거기에 사람이 거주할 때는 그런 관조의 가치보다 만지고 생활하면서 느껴지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소리인 듯 하다. 여기서 정치성이 딸려나오는 것 같은데, 우리는 더이상 예술 생산자들의 경험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서 직접 느끼고 대화하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읽은지 열흘도 지난데다가 제대로 이해하면서 읽었던 게 아니라 정리하기가 힘들다 T_T 알라딘에 올라온 서평들의 도움을 좀 받았다.) 마지막으로 벤야민은 예술이 정치화되어야 하지, 정치가 예술화되어선 안 된다는 묘한 말을 남긴다. 그러면서 정치가 예술화된 대표적인 예로 전쟁을 찬미하는 사람들을 제시한다. 굉장히 인상깊게 읽은 말인데, 그리 쉽게 이해되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을 내가 해석하기로는 이렇다. 현대 예술은 다른 이들에게 예술가의 '촉각적' 경험을 전달해줘서 세상을 바꿔야한다. 반대로 정치가들이 의도하는 바를 예술에 투영시켜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되면 그것은 비극일 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이라고 하면 당연히 유일성의 가치를 최고로 쳤고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들은 '진짜'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해왔기에, 벤야민의 이런 시도는 상당히 참신하게 다가왔다. 아우라 얘기를 하길래 아우라가 있어야 진짜 작품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이 책 덕분에 이제 소위 '예술 이론'을 하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여기 나오는 이야기 중 일부를 가지고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게 하나 있는데, 정리되면 포스팅하도록 하겠다. -- 집에 와서 책을 다시 읽어보고 추가. 22:07 위 글에서는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이 정치성을 획득하게 된 과정을 약간 오해한 듯 하다. 카메라의 역할이 독특하기 때문에 정치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독특한 역할을 강조한 것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이 이전 시대의 예술과 다른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전시적 가치'가 정치성과 연결된다고 보는 것이 나은 것 같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은 이전 시대의 예술에 비해 많은 자들에게 개방되어있고, 모든 이들에게 해석과 비평의 문을 열어놓았다. 우리는 미학 박사가 아니더라도 <괴물> 비평을 블로그에 포스팅할 수 있고, 인터넷에 올라온 여러 사진 작품들을 보면서 자신의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이전 시대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다. 그 시대에는 '제의적 가치'의 유령이 예술계를 덮고 있었기에, (제관 역할의) 일부 사람만 관람과 비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일부 비평가들이 지배하고 있는 예술계의 모습은, 벤야민이 비판하는 '이전 시대의 예술'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사회는 아직도 선택받은 제사장들만이 비평의 특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닐까? 이전에 광주 비엔날레에 갔던 적이 있는데, 관람객들이 어떤 난해한 작품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자 안내자가 '보이시는 대로, 느끼시는 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벤야민이 얘기하는 '예술의 정치화'가 이런 것? 아,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서 중단.) 해석과 비평 뿐이 아니다. 누구나 예술작품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벤야민은 20세기 초의 러시아 영화를 염두에 두고 필부필부가 영화에 나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워낭소리>나 <집으로...>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딱히 배우로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도 영화에 출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진의 경우는 그 현상이 더욱 도드라진다. 우리는 인도의 어느 길거리에서 카메라를 빤히 응시하고 있는 새카만 소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과연 그 소년이 모델로서 훈련을 받았을까? 이와 같이, 많은 이들이 '제의'의 공간을 침범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술의 정치화' 과정인 것이다. 해석자로든, 대상으로든. 심지어 -- 벤야민이 주장한 것은 아니지만 -- 생산자로도 말이다. 조금 더 내 생각을 부연하자면, 이렇게 '열린'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예술의 정치화'라고 믿은 것 아닐까 싶다. 우리는 한 영화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면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실습한다. 더이상 어떠한 권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벤야민은 영화나 사진 자체가 무언가를 한다기보다 영화나 사진을 통해서 권위를 탈피하는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것 아닐까? 아, 앞서 말한 '촉각적 수용'도 예술의 정치화와 필연적인 관련을 맺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촉각적 수용'은, 벤야민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의 전환기에 인간의 지각기관에 부과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수용방법이다. 이전 시대의 예술이 강요한 '관조적 수용'은 이와 같은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기에,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은 '촉각적 수용'을 십분 활용하여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벤야민의 주장이다. 한 번 헛소리를 써놓고 다시 책을 읽으니 정리가 잘 되는 느낌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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