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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디서 소개 받았더라? 김우재 박사님 블로그에서 본 것도 같은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네. 여하간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핑커의 뒤를 잇는 3세대 과학 저술가!'라는 엄청난 광고를 때리며 압박스러운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다. 그런 주제에 내용이 별로였다면 완전 쓰레기였겠지만 -_- 내용은 꽤 괜찮다. 출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이 무거운 책을 들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읽느라 고생했지만, 그만큼의 보람은 있었달까. 이 책에서는 진화의 강력한 추동력으로 성선택(sexual selection)을 제시한다. 물론 일반적인 개념에서는 자연선택 안에 성선택이 포함되지만, 저자는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특별히 구분하여 사용한다. 특정 환경 속에서 개체 자체의 사멸을 초래하는 선택은 자연선택, 개체 자체는 잘 살아가도 짝짓기에 실패해서 유전자가 전달되지 못하는 선택은 성선택으로 말이다. 그럼 도대체 왜 성선택이 필요한가? 가끔 보면 불필요하게 화려한 형질들이 있다. 예를 들어 수컷 공작의 깃털을 보라. 분명 생존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때로는 해를 끼치기도 하는 형질들인데, 왜 이런 형질들이 정교하게 발전했을까? 저자는 이런 '간단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인류 진화의 미스터리를 성선택으로 해결하려 한다. 저자는 우선 성선택을 설명하는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첫번째는 '고삐 풀린 성선택' 이론이다. (영어로 뭔지는 모르겠네.) 간단히 얘기하자면 성선택이 양성 피드백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는 얘긴데, 암컷이 특정 대립 형질에 대해 '약간'의 편향적 선호를 갖는다면 몇 대 지나지 않아 그쪽 형질이 강하게 발현되는 쪽으로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로서, 대략 노란색의 피부를 갖는 동물 A가 있다고 하고, 이 동물의 특정 집단에서 암컷들이 우연히 녹색을 띠는 아이들을 더 선호했다고 치자. 그럼 샛노란색과 황록색 중 황록색이 선호된다. 선택받지 못한 샛노란색은 전혀 유전자를 남기지 못한다고 가정하면, 황록색인 수컷들만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대에 전달하게 된다. 그럼 다음 세대는 전반적으로 황록색을 띨 것이다. 그럼 그 중에서 또 좀 더 녹색인 애들이 선호될 것이고, 이 과정이 조낸 반복되면 이 개체군의 수컷들은 마침내 시퍼런 녹색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 이론은 짧은 시간 동안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모로 유용하다. 두번째는 '적응도 지표' 이론이다. 이건 성선택이 '랜덤'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설명하는 이론이다. 암컷이 수컷을 고를 때, 정말 랜덤한 취향으로 골라도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까? 이 이론에 따르면 암컷은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를 기준으로 성적 선호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로서 '몸집'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몸집이 큰 수컷과 작은 수컷이 있다. 암컷은 큰 것을 좋아할 수도, 작은 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런데 몸집이 큰 수컷이 더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고 가정하면, 큰 것을 좋아한 암컷이 더 많은 자손을 얻을 것이다. (수컷이 더 오래 사니까!) 그럼 그 자손들에게는 큰 것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뿌려질 것이고,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그 집단의 암컷들은 대개 몸집이 큰 수컷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암컷의 성적 취향이 '적응이 잘 된 수컷'을 좋아하는 쪽으로 발전한다는 설명을 할 수 있다. 세번째는 '과시적 소비' 이론이다. 항상 암컷들이 '적응이 잘 된 수컷'을 상징하는 지표만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공작의 꼬리 깃털만 봐도 그게 적응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이걸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바로 이 '과시적 소비' 이론이다. 여기서 암컷의 성적 취향은 기업의 광고를 보는 '합리적' 소비자에 대한 고전 경제학의 입장과 비슷하다. 암컷은 수많은 수컷들을 앞에 두고 있다. 암컷은 이 중에서 가장 능력이 좋은 수컷을 택하고 싶어한다. 어떻게 하면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간단하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을 시켜서 그 일을 가장 완벽하게 해내는 수컷을 택하면 된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을 해낸다는 것은 그만큼 여분의 에너지와 능력이 있다는 말이니까. 예를 들어 수컷 공작을 보자면 꼬리 깃털의 눈동자 무늬를 좀 더 정교하고 좀 더 화려하게 만드는 수컷이 다른 수컷들에 비해 여분의 에너지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결과 암컷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당연히 공작이 뭔가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선택하는 건 아니다! 그 합리적인 암컷의 취향은 몇 대가 지나면서 자연이 '선택'해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이론을 가지고 저자는 우선 동물들의 행동과 형태를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확장한다. 처음에는 인간의 신체 구조, 특히 '성적인' 기관들에 이 이론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보고, 이어 인간의 정신 세계에 이 이론들을 적용한다. 저자는 인간의 지성 자체가 성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는 형질이라고 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지성이 사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진화된 것이 아니라, 성적으로 매력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지성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이론에 전부 들어맞고, 따라서 저자의 추정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저자는 여기서 예술, 도덕, 언어, 창의성까지 모두 성선택 과정을 거쳐 발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의 논리는 상당히 그럴싸하다. 그 두꺼운 책에 자신의 논리를 지지하는 근거들을 꽉꽉 채웠으니 오죽하겠나. 그런데 한 가지 커다란 단점이 있다. "이 논리는 반증될 수 없다!" 반증가능성이 과학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포퍼의 입장을 따르자면, 이 책에서 주장하는 이론은 과학이 아닌 셈이다. 왜 반증될 수 없을까? 저자는 반례가 될 법한 모든 사례를 저 세 가지 이론의 틀에 집어넣는다. 한 가지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다른 이론을 제시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또 다른 이론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특히 인간의 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만약 세 가지 이론에 모두 어긋나는 예가 있다면 "원래는 이러면 안 되는데, 인류 사회에 관습으로 전해내려와서 이렇게 된 거다."라는 식으로 빠져나간다. 아니 -_- 그럼 그 관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설명해야지!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불편했던 게, 저자가 계속해서 생물학 환원주의를 세뇌시킨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문학자들은 날더러 생물학 환원주의라고 비난하는데, 난 그냥 생물학에서 말하는 '사실'들을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써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 말이 "난 술을 먹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 운전은 안 했다."라는 말과 다를 게 뭔가. 저자는 자신의 이론에 맞지 않는 설명 체계를 가지고 있는 학문들을 가차없이 비난하는데, 철학, 종교, 예술 등을 지나 심지어 과학 빠돌이 촘스키의 언어학까지도 까댄다. 언어학은 '문법 구조'라는 쓸데없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그럴 시간에 언어가 성선택 과정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연구하란다. 읽으면서 너무 재수가 없더라 -_- 아니 남들이 자기 학문에서 뭘 연구하든 지가 뭔 상관이래? 저자는 성선택 이론이 그 위대한 '통섭'의 첫 단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감격하지만, 아마 인문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이 보기엔 그저 재수없는 생물학 제국주의자로 보이지 않을까? (통섭에 대해서는 나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저자나 윌슨, 최재천 교수 등이 주장하는 형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진화 이론들은 참 매력적이다. 우리의 삶을 상당히 합리적으로, 그것도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다루는' 진화 이론들은 우연성에 기대는 부분이 많고, 대개 반증이 불가능하다. 과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이론이 반증될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화 이론가들이 어떤 사실을 설명하는데 성공했다고 해서 그 이론이 '진리'라고 믿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이론은 그저 과거에 대한 설명 방법 중 하나일 뿐이고, 다른 형태의 진화 이론이 나와서 그 이론을 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쨌든 우리가 직접 본 게 아닌 다음에야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우리는 그저 남겨져 있는 증거들을 근거로 합리적인 설명을 추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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