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프레드 세시저, <절대를 찾아서>, 우물이있는집.

몇몇 사람들이랑 함께 하고 있는 독서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돌려보고 있는 책이다. 표지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듯 '사막'에 관한 기행문으로, 여러 군데의 사막이 소개되지만 주로 아라비아 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엠티 쿼터(Empty Quarter)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이 쓰여진 시대는 1930-1940년대로, 아랍인들이 막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저자는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어려서부터 '기계화'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아마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역마살'이 끼어 있다고 할 만한 저자는, 특히 기계화/서구화되어 있지 않은 지역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에선 사막이 주로 나오지만 중간에 험준한 산을 스스로 찾아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기계 문명이 비유럽권의 전통적인 사회를 지배해 들어가는 것에 대해 굉장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 곳곳에서도 그러한 거부감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여러 도시들이 서구화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통탄해 하고, 스스로도 '서구화'를 거부하고 베두인들의 생활 습관을 따라한다.

난 이 책을 처음 잡으면서 '사막' 그 자체의 무서움을 배우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막상 다 읽고 나니 별로 그 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에서 특별히 어떤 것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로 이 책에서 등장하는 내용은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자에게 우호적인 사람이든 적대적인 사람이든, 어떤 사람들이 사막에 살고 있으며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무척 상세하게 나온다. 아마 이들에 대한 저자의 동경이 이런 식의 묘사를 이끌어낸 것 아닐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풍습 중 이들의 풍습과 비슷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막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강권해서 자신의 천막으로 데려오고, 설사 자기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최고로 융숭한 대접을 하는 풍습? 성서의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과 롯이 여호와의 사자들에게 그런 식의 대접을 베푸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그게 이들이 엄청나게 선한 사람들이어서 그렇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저 그들은 사막의 풍습에 충실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뭐 나쁜 일은 아니기는 하지만... '의인'일 정도는 아니라는 거지.)

이 책을 읽은 어느 분의 평가는 "뒤로 갈수록 나도 사막에 있는 것처럼 지치더라."였는데, 뭐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책을 다 읽기가 힘들긴 했다. 사실 사막이라는 게 워낙 단조로워서 계속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데, 그런 이야기를 몇백 페이지 동안 주구장창 읽고 있어야 하니 피곤해질 수 밖에. 나도 가볍게 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읽는 데 오래 걸려서 놀랐거든. 또 한 가지 문제는 등장 인물들이 하도 많아서 =_= 책 뒷부분으로 가면 마구 헷갈린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다들 아랍식 이름 ㅠ 나중에는 그냥 머리를 비우고 누가 누군지 신경 안 쓰기로 했다. 하긴 이건 외국 책을 읽으면 항상 나타나는 현상이라 뭐... 어쨌든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책 주인님, 빌려줘서 고마워요!
by 로보스 | 2009/06/03 16:58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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