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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와인버그에 대해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 와인버그는 과학 전쟁 당시 비열한 방법으로 과학학자 진영을 공격했고, 자신의 글 "Four Golden Lessons"에서 과학철학자들을 그저 과학자들을 방해하는 밥벌레로 묘사했다. (심지어 칼 포퍼까지도!) 이런 이미지들이 하나하나 모이면서 나는 와인버그가 그저 과학 빠돌이에 지나지 않는, 과학을 하는 머리는 좋을지 몰라도 세상 보는 눈은 영 없는 멍청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와인버그가 멍청이라는 판단은 철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와인버그는, 러셀처럼, 그냥 독불장군 스타일의 천재인 것 같다. 이 책은 와인버그가 미국에서 SSC 계획이 중단되는 걸 막기 위해 쓴 책이다. 하지만 비단 물리학 얘기만 줄창 늘어 놓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선 물리학 및 과학 전반의 이야기 뿐 아니라 종교 및 철학에 대한 본인의 생각까지 소개하고 있어 와인버그(및 그와 동류인 사람들)의 사상을 알기에는 적합한 책이다. 와인버그는 세상을 기술하는 과학 이론은 '유일하게' 결정되며, 그 이론은 환원불가능한 이론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과학 이론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내용의 <쿼크의 구성(Constructing Quarks)>이라는 책을 비판하면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길은 여럿 있을지 모르지만 정상은 유일하게 존재한다고 소리친다. 그에게 과학은 에베레스트와 같이 너무도 '자명한' 실재이다. 또한 그는 생물학은 화학으로, 화학은 물리학으로 환원된다면서, 다른 학문 체계의 존재를 끌어들이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최종 이론'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세포는 세포내 소기관들 없이 설명할 수 없고, 소기관들은 분자 없이 설명할 수 없고, 분자는 원자 없이, 원자는 양자 역학 없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쭉 따라가면 결국 입자 물리학이 최종 이론을 만들어 내는 분야가 되리라는 것이 와인버그의 결론이다. 몇 가지 반박을 해보자. 과학이 결국 '한 가지 형태'로 수렴한다는 것은 꽤나 강력한 믿음이다. 와인버그는 외계인들이 과학을 만들었다면, 그 용어나 원리 자체는 다를지 몰라도 계속 발전시키다 보면 결국 우리의 과학과 한 점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의욕이 넘친 와인버그는 여기서 생뚱맞게도 "일본에서도 인도에서도 우리와 동일한 과학 체계로 공부하고 있다. 각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동일한 체계를 쓰고 있다는 것만 봐도 과학의 수렴성을 알 수 있지 않은가?"와 같은 헛소리를 시전한다. (기억에 의존하여 쓰는 중이라 정확하지 않을지도.) 이건 굳이 반박할 가치조차 못 느끼겠는데, 아니 인도나 일본이나 다 서구 과학을 받아들였으니 당연히 동일한 체계를 쓰고 있지 뭔 소리냐 -_- 정말 수렴하는 걸 보이려면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자연을 설명하던 체계,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자연을 설명하던 체계가 과학과 이어지는 걸 보여야 한다. 하지만 한의학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환원주의 역시 그저 와인버그의 '믿음'에 불과하다. 이건 창발성 하나만 가지고도 반박할 수 있을 것 같다. 와인버그는 창발성이 결국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소리를 하는데, 그럼 님이 해보시든가요 -_- 나는 창발성의 핵심이 '네트워킹'에 있기 때문에 그 하부 구조를 파헤칠 필요가 없고, 따라서 환원주의의 도움도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뉴런망의 협동 과정을 연구하는데 뉴런 세포의 소기관과 분자와 원자를 다 알아야 할까? 내가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와인버그의 철학관(7장), 종교관(11장)이 소개된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와인버그가 멍청이라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그는 철학과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며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면서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철학이 과학의 발전에 저해 요소로 작용했다며 여러 가지 사례들을 파헤친다. 지금 언뜻 기억나는 것이 '실증주의'가 과학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부분인데, 와인버그는 "그 놈의 실증주의 때문에 원자론이 오랫동안 수용되지 않았다!"며 분노를 표출한다. 이런 식으로, 어떤 형태의 철학도 거부하는 것이 와인버그의 철학관이다. (이 부분에서 와인버그가 포퍼를 싫어한 이유도 알 수 있었는데, 포퍼의 반증주의를 따라가면 '최종 이론'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헌데 와인버그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정말 '철학' 없이 사는 게 가능한가? 와인버그는 자신의 '아무 철학 없이'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볼 때 와인버그는 거의 논리실증주의자들과 비슷한 철학적 위치에 놓여 있으며 상식적 실재론, 상식적 인식론의 신봉자다. 아무리 자기가 부인한들 자신의 신념 체계가 올라서 있는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종교에 대한 지적은 별반 특별할 것이 없었다. 와인버그는 주로 인격신의 존재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뭐 결론은 도킨스와 같다. 하지만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는 아마도 SSC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굽신거림이 아니었을까 싶네. 어찌 됐든 미국에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많으니까. 별로 신기한 생각은 없었지만, 그 많은 와인버그의 지적 중 꽤나 날카롭다고 생각하는 지적이 하나 있었다. 와인버그가 굴드님을 비판하면서 ㅠㅠ 하는 말이었다. "굴드는 과학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이 실재와 윤리로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종교가 실재에 기반을 조금도 두지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역시 기억에 의존한 기록.) 원래는 나도 굴드님처럼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예수의 부활 등 정통 기독교 교리의 기반 명제들이 성립하지 않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저런 부분에 있어서는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 <최초의 3분>을 굉장히 감명 깊게 읽은 1人으로서, 이 책은 와인버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구에 임하는지 알 수 있었던 좋은 사례였다. 번역도 꽤나 훌륭하고, 책 뒤에는 저자와 역자의 인터뷰를 수록해 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해놓았다. 독특한 것은 이 책의 주석 달기 방법인데, 이 책에서는 [1]과 같이 어깨에 주석을 다는 대신, 책 맨 뒤에 있는 미주 부분에서 주석이 적용될 책 속의 문장을 다시 인용한 후 그 뒤에 주석을 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건 '당연히' 내가 만든 예다 -_-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올리가...) 30쪽, ……근데 우린 열심히 안하잖아. 우린 안될꺼야, 아마. 권기욱, 타바코쥬스 보컬, 루비살롱레이블쑈 '반드시 크게 들을 것' 홍보 인터뷰 중. 솔직히 책을 읽다가 본문에 주석 표시가 많이 붙어 있으면 읽는 데 방해가 되는 건 사실이다. 흠 하지만 위와 같은 방법은 아예 주석에서 관심을 끊어버리는 부작용이 있을 것 같은데; 뭐 여튼, 이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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