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리젠후버, <중세사상사>, 열린책들.

요새 왠지 모르게 중세철학에 꽂혀서 -_- 중세철학 개론서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그 와중에 건진 책이다. 이 책에서는 중세철학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개략적으로 스케치하고 있다. 역사적인 맥락이라는 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그냥 교과서 같다는 소리다 -_-;; 이 책에서는 역사 순서대로 여러 사상들을 쭉 훑어나간다. 꽤 유명한 철학자들은 물론, 나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사람들까지 전부 다루고 있다. 각 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첫 절에서 '사회적 배경'을 꼭 다룬 후에 여러 사상들을 소개하기 때문에, 예전에 배운 세계사 지식과 연결지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시작은 2세기, 기독교 교부들이 활동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무슨 철학이 있었나 싶지만, 중세철학의 기반인 기독교 신학이 대충 그 틀을 잡은 시기이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기독교 신학의 성립'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각종 '교리'들이 탄생하게 된 논쟁들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기독교 신학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성'을 강조하는 흐름과 '신비'를 강조하는 흐름이다. 교회에 들어가서 열심히 포교하던 교부들은 전자에, 사막에 숨어서 수행하던 교부들은 후자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흐름은 아직까지도 교회 안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두 가지 흐름에 모두 주의를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교부들의 시대가 끝나고 중세철학이 시작된 것은 카롤링 르네상스 때부터이다. 이 때부터 인간들이 점점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점점 학문이 발전하면서 '초기 스콜라주의'가 대두된다. 중세철학이 꽃을 피운 것은 이슬람권의 철학을 받아들이면서인데, 그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전 유럽을 휩쓸게 된다. (아 이렇게 몇 줄로 전체를 요약해버리다니 -_-; 근데 더 자세히 쓰면 너무 복잡해져서...)

어차피 교과서적인 책이라 이 책에 소개된 사상을 일일이 소개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이고, 이 책에서 얻은 결론 몇 개만 남겨둔다. 첫번째, 중세 시대에 활동했던 철학자들의 초기 목표는 '성서 없이 신학을 증명하기'였다. 그들은 성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야만인들에게도 신의 존재라든지 구원의 필요성 등을 확증시켜주고자 했고, 그 결과 '이성만 가지고' 신학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이다. 이것이 '초기' 목표라고 쓴 이유는, 후기 스콜라주의 철학자들 중에는 이성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 신학을 부정하는 사람들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이중 진리론) 토마스 아퀴나스는 초기 목표에 충실한 사람이었음에도 이중 진리론을 주장한 사람처럼 오인받아 한 때 단죄되기도 했었다.

두번째 결론은, 이건 일반적인 역사학에서도 써먹는 원리일테지만, 역사는 절대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역사의 흐름이 '끊어져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위에서 역사를 요약할 때 카롤링 르네상스니 초기 스콜라주의니 하면서 시대를 구분하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저자는 이런 '구분'이 정말 칼로 무 자르듯 정확하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강조한다. 그래서 한 시대와 한 시대를 연결하는 시기를 기술할 때 그런 연속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그런 면에서 보면 내가 앞서 요약한 내용에 조금 위험한 표현도 있다. 카롤링 르네상스 이전에도 인간들은 이성을 가지고 생각했다. 다만 저기서 저런 표현을 쓴 것은, 많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합리성'에 조금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 책까지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아직 중세철학에 대해서는 전혀 감도 안 온다. 이 정도 읽은 걸로는 아무 것도 안 되는 모양이다. 좀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복학하면 박우석 교수님의 <중세철학>이나 들을까 -_-?;;
by 로보스 | 2009/05/16 17:08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lovos.egloos.com/tb/231927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世界はネオハピ! : 독서 리스트. at 2009/05/16 17:10

... 신이 존재한다면 왜?, 삼성출판사. (1/12) [감상문]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르네상스 철학 강의, 열린책들. 클라우스 리젠후버, 중세사상사, 열린책들. (5/6-5/8) [감상문] 리차드 E. 팔머,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문예출판사. 존 D. 카푸토, HOW TO READ 키르케고르, 웅진지식하우스. 과학 스티븐 핑커, 빈 서판, 사이언스북스. 김영식, ... more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즐겁게 살아야죠. :)
by 로보스
Calendar
메모장
카테고리
|소개|
|일기|
|감상|
|과학|
|잡념|
* 홈페이지 ('02-'03)
* 네이버 블로그 ('05-'06)
최근 등록된 덧글
낙동강 방어선 결사항전..
by _tmp at 00:31
안녕하세요 요즘 한가해..
by 김은수 at 00:22
난 이런 것만 보면 전국 ..
by 긁적 at 01/06
허허허허허허허.
by 긁적 at 01/06
부산의_위엄.jpg
by 소시민 at 01/06
허허허 좋군? ㅋㅋㅋ
by Yuki37 at 01/06
허허허... 완전히 눈밭..
by 매치어 at 01/06
barb님// 메일로 보내드..
by 로보스 at 01/06
앗 정말 감사합니다 이글..
by barb at 01/05
비밀글님// 아 도와드리고..
by 로보스 at 01/05
wolga님// 감사드립니다..
by 로보스 at 01/05
올해도 좋은 글 많이 쓰시..
by wolga at 01/04
귀염둥이님// 걱정해주시..
by 로보스 at 12/30
끝나지않은2000년의 전쟁-..
by 귀염둥이 at 12/29
moomo님// 안녕하세요..
by 로보스 at 12/28
독서리스트 책들은 어떻..
by moomo at 12/28
비밀글님// 네, 저도 번..
by 로보스 at 12/25
귀염둥이님// 말씀은 감..
by 로보스 at 12/25
이책은 이슬람과 유대인..
by 귀염둥이 at 12/25
ExtraD님// 어이구 Extr..
by 로보스 at 12/22
최근 등록된 트랙백
네이트온 사칭 - 메신저..
by ★ Stella et Fossilis
2007 - Gerhard Ertl
by 한글
Scheme으로 루저 인증..
by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루져 테스트 [asp.net]
by 緣
루저코드 - 파스칼 버전
by Divine Power
이글루 파인더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