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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초록불님의 소개글 덕분에 알게 된 책. '개떡' 같이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들에 대한 통렬하고 신랄한 비판이 가득하다. 나도 의도치 않게(?) 3년째 프로그래머 놀이를 하고 있기에 이 책의 비판을 귀담아 들어야할 것 같다. (물론 내가 하는 쪽은 UI에 크게 신경쓸 필요 없는 분야이긴 하다만... 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진짜 재밌다. 저자 자신이 프로그래머이면서도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는 프로그래밍을 한 치의 자비도 없이 마구 까대기 때문이다. 저자는 프로그래머들에게 외친다. "사용자는 니가 아니다!" 프로그래머들은 흔히 '자유도'를 높이고 싶어한다. '이 부분에 좀 더 자유를 주고, 저 부분에 좀 더 깊이를 두면 더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사용자들은 그런 점에 도리어 혼란을 느낀다. '아니 젠장 실행 한 번 하려는데 뭐 이리 선택하라는 게 많아?' 프로그래머들 딴에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하다가 망친 케이스다. 한편 프로그래머의 무지 때문에 벌어지는 혼란도 있다. 프로그래머들은 실제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직관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소프트웨어가 작동해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못 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동작 원리를 전혀 모르는 사용자들이 '비직관적인' 상황에 맞닥뜨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가 그저 찔찔이 사용자에 불과하던 시절, 윈도우즈 메시지 중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메시지는 [중단(A)] [재시도(R)] [무시(I)] 버튼이 나오는 메시지였다. 재시도는 그 작업을 또 해보라는 것 같은데 나머지 두 개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프로그래밍을 2년 이상 해보니까 이제 대충 뭔 얘긴지 알 것도 같은데, 일반 사용자들한테는 너무 어렵다고! 줄기차게 프로그래머들을 욕하던 저자는, 보안 관련 장에 들어서면서 약간 누그러진 모습을 보인다. 보안을 철저하게 만들려면 그만큼 프로그램이 불편해지는 것은 사실이고, 두 개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이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리 보안을 철저하게 만들어도 사용자가 ID와 비밀번호를 포스트잇에 적어서 컴퓨터 옆에 붙여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사무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종종 일어난다 ㄱ-) 이렇게 관대해진 저자도 보안에 대해 감이 전혀 없는 멍청한 프로그래머들은 가차 없이 욕한다. 비밀번호를 **** 대신 다 보이게 표시한다든지, 아이디나 비밀번호에 쓸데없는 제약조건을 걸어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든지 하는 놈들 말이다. 얘들은 욕 먹어도 싸지.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프로그램 보안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보안 쪽 일을 전혀 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제법 솔깃했다. 무조건 겹겹이 보안 장치를 해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일반 사용자들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서 보안을 해두어야 한다는 (좀 당연한) 얘기였다. 저자는 아이디와 비밀번호 문제에 대해 아이디는 유일해야 하지만 비밀일 필요는 없고 비밀번호는 비밀이어야 하지만 유일할 필요는 없다고 간단하게 정리하는데, 그 와중에 아이디를 개인의 이메일 주소로 하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한다. 저자의 주장대로면 아이디는 공개되어도 무방한 것인데, 이메일은 아무에게나 공개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므로 조금 꺼림칙스럽다. 이메일 역시 개인정보의 하나고, 특히 요즘 같이 스팸 메일이 범람하는 시대에 '유효한' 이메일 주소는 악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유일성만이 문제라면 주민등록번호/SSN, 핸드폰 번호, 집 주소 등을 아이디로 써도 되는 것 아닌가?) 여기까지 저자가 이 책의 제목 <소프트웨어, 누가 이렇게 개떡같이 만든 거야>에서 "개떡같이"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개떡 같지 않은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설명해 왔다면 이후로는 "누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컴퓨터 괴짜(geek)의 삶을 묘사하는 장이 두 장, 우리의 주적 -_- 마이크로소프트의 행태를 묘사하는 장이 한 장 있다. 난 이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는데 ㅋㅋ 그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포크-안티포크 소멸에 대한 헛소리였다. 레스토랑에 가보면 테이블에 식기가 쭈르륵 놓여있지 않은가? 하루는 저자가 친구랑 레스토랑에 갔는데 테이블에 포크가 없었댄다. 그들은 이웃 테이블에서 포크를 뽀려왔고, 이윽고 이웃 테이블에 다른 사람들이 도착해서 포크가 없는 걸 발견하고 또 다른 테이블에서 포크를 슬쩍해 왔단다. 저자와 그의 친구는 이런 식으로 '포크가 없는 공간'이 테이블에서 테이블로 이동하는 걸 '안티포크(anti-fork)의 이동'이라고 명명하고 그 현상을 추적했단다 -_-;; 아놔... (근데 이건 양공 holes 으로 기술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반입자는 나름 실재하는 녀석이니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도 참 대책 없네 -ㅠ-)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사용자들에게 당당히 의견을 제시하라는 주문을 한다. 프로그래머들은 멍청하니까 사용자들이 불편한 점을 직접 알려주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멍청한 소프트웨어를 보면서 욕만 했지 정작 클레임 건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왠지 안 들어줄 거라는 강한 확신에 사로잡혀서... 이제부터는 좀 해볼까 -_-; 어쨌든, 책을 딱 덮는 순간 후련한 책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정말 재미있다. 그냥 심심풀이로 읽어봐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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