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만, <현대 신학 이야기>, 살림.

우리나라 보수 교회에는 현대 신학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되어 있다. 보수 복음주의 신학과 조금이라도 다른 관점을 제시하려고 하면 이단으로 몰아버린다.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핍박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일전에 침신 다니는 친구가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학교에 있다며 무슨 괴물을 본 양 떠들어대더라.) 심지어 신정통주의 신학까지도 자유주의로 몰아서(?) 다같이 이단이라고 한다 -_- 무교회주의해방신학에 대한 거부감도 유명하지. 하지만 신학이라는 것이 애초에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인간의 학문'임을 생각하면 굳이 현대 신학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그저 그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할 뿐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나 여기선 이 정도로 줄인다.)

나 역시 보수 교회에서 자란지라 현대 신학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최근 모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현대 신학을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은 살림지식총서의 한 권으로, 제목에서 풍겨지는 포스와는 달리 정말 얇고 가벼운 책이다. 비록 현대 신학의 모든 지평을 다루지는 못하지만, 짧은 시간에 양질의 지식을 제공받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 책은 현대 신학의 흐름을 크게 20세기 초반과 20세기 후반으로 나눠 설명한다. 20세기 초반은 거물급 신학자들이 활동하던 시대로, 저자는 카를 바르트, 파울 틸리히, 디트리히 본회퍼 세 사람을 그 시대의 대표적인 신학자로 다루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을 겪었다는 점과, 또한 독일 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이들은 전쟁을 겪으면서 신학의 대상과 목적에 대해 새로 생각해보게 되었고, 기존의 지식을 박차고 새로운 신학 체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랬다 해도 그 '새로운 신학' 속에 이전의 지식이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겠지.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울렸던 것은 카를 바르트의 말, "Deus dixit."이었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인데, 바르트 신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말이다. 바르트는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인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신학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바르트가 인간의 이성을 중요시했던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알 수가 있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이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독(基督)'이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의 중국어 음차로, '기독교'라는 말은 결국 '그리스도교'라는 말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따라서 우리의 성경 해석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석할 때에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보자. 구약의 여호와 개념으로만 이해하자면 하나님은 저 위 하늘에 계시거나 성전에 계신다. 혹은 무소부재하여 이 땅 전체에 편재해 계신다. 이 모습은 그저 무서운 심판자로서의 신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이 출동하면 어떨까? 예! 수! 님! -o-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함께 하는 자'의 모습이다. 그는 지상에 있는 동안 제자들과 함께 했을 뿐 아니라 세상을 떠나면서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라고 말해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을 선포했다. 이와 같은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구약의 하나님에 대해서도 '함께 하는 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창 28:15, 수 1:5 등 참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키로 삼아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본질 아닐까?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인다. 이 문단은 바르트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바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생각한 바를 정리해둔 문단이다. 바르트 신학은 이 앞 문단에서 끝난다.)

책의 뒷부분, 20세기 후반의 신학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특출난 신학자들을 지목하는 대신 전세계적으로 새로 일어난 신학 사조들을 다룬다. 저자는 20세기 후반을 신학의 백가쟁명 시대로 보고 있고, 이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그 중 해방 신학과 과정 신학, 그리고 생태계 신학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해방 신학과 생태계 신학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면 과정 신학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다. 어쨌든 참신했다. 우리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도 새로웠고, 성경의 명령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 적용하는 방법도 신선했다. 아직 지식이 짧은지라 이 신학들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그들이 흔히들 하는 생각처럼 '위험한 신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고 나니, 나도 좀 더 '신학'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기초적인 질문들일 것이다. 의미도 모르면서 남들이 하는 말을 주워섬기는 그리스도인보다는 주체적이고 실존적인 경험에서 우러나는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by 로보스 | 2009/04/27 15:57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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