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제이 굴드,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세종서적.

하앍 굴드님 ㅠㅠ 진짜 굴드님 책은 보면 볼수록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이 책은 <판다의 엄지>처럼 에세이를 모아 만든 책인데, 아 진짜 글 하나하나가 주옥 같다 ㅠㅠ 에세이집이다보니 통일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글 하나하나의 완결성이 워낙 뛰어나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책 제목의 연원이 된 글이 가장 먼저 실려있는데,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메모 중에 산 꼭대기에 존재하는 '조개 화석'을 언급한 메모가 있는데, 이 메모에서 레오나르도는 당시에 화석의 존재를 설명하는 두 가지 방식을 모두 통렬히 반박한다. 첫째는 '노아의 홍수' 등으로 인해 화석이 산 속에도 존재하게 된다는 설명이었고, 둘째는 암석 안에 포함되어 있는 형성력(plastic forces)이 암석을 자연스럽게 생명체의 모양을 닮게 만들었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전근대적인' 설명을 파쇄했으니 레오나르도는 근대과학을 내다본 천재인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레오나르도를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간 천재 과학자로 여기기-_-도 하지만 굴드님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굴드님은 '레오나르도의 눈'으로 레오나르도의 메모를 해석한다. 레오나르도가 19세기 지질학을 알았을 리가 없을 터, 저런 메모를 남긴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역사학의 방법론에 익숙한 굴드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쿤이 과학사를 해석할 때 강조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당시의 눈으로 당시의 사료를 해석하기!) 굴드님은 이곳저곳 파편으로 남아있는 레오나르도의 메모를 모아 레오나르도가 지구의 구조를 인간 신체의 구조에 대응시키려 했음을 설명한다. 레오나르도는 유비(analogy)를 통해 인체 안의 물질들이 순환하듯 지구의 물질들도 순환한다고 생각했다. (잠깐, 여기서 19세기 과학의 향취가 느껴진다 해서 레오나르도를 개천재로 몰지 말 것!)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이론에 따르면 각 물질은 '제자리'가 있어서 그 자리에 도달하면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들 중 특히 흙을 순환시키는 메커니즘을 찾기 위해 레오나르도가 도입한 것이 바로 조개 화석이었다. 아 너무 길어져서 대충 요약하자면 -_- 지구 내부에 큰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 속에서 흙덩어리들이 '떨어지면서' 반대편의 산을 솟아오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바로 산꼭대기에서 발견되는 조개 화석이다!

으아 ㅠㅠ 이 무슨 한 편의 장대한 역사학 논문이란 말인가! (물론 내가 역사학 논문을 실제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여기서 굴드님이 주장하시는 바를 학술적으로 정리하기만 하면 한 편의 논문이 되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이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사료들로부터 사실들을 모아 한 편의 깔끔한 설명을 찾아내는 글들이 잔뜩 수록되어 있다. 굴드님은 이렇게 '1차 사료'를 찾아서 결론을 얻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신다.

저자들이 학문적 문헌들에 스스로 자신을 닫아걸고서 단지 보고 묻는데 의존할 때 그들은 사상가라기보다는 도관(導管)이나 체가 될 뿐이다. (어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1차 사료를 안 찾아보고 이미 연구된 사료만 참조해서 쓴다면 그저 전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 - 로보스) 반면 같은 싸움에 개입한 선임자들의 위대한 저작을 연구할 때 인류 역사 및 우리의 지적 전통의 풍부한 다양성과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 여러분은 자신, 그리고 자신의 조직력을 이 역사에 투입하게 된다. 여러분은 단지 '기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행위자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리고 그때에야 비로소, 여러분은 대변자가 아니라 독창적인 공헌자, 심지어 발견자가 된다.

기꺼이 이런 연구를 하고, 그 솜씨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에게 1차 사료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실제 발견이라는 노다지가 주요 대학과 시 도서관처럼 쉽게 접근 가능한 장소에 있다는 원칙보다 더 민주적인 것이 있을 수 있을까?
(18쪽)

아흑 진짜 짱이다! 어쩜 이렇게 멋진 말씀을 ㅠㅠ 역사에 관심은 갖고 있지만 사료를 들여다보는 것에는 겁을 내고 있는 1人으로서, 이 말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이를 몸소 실천한 굴드님,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런 굴드님을 내 인생의 롤 모델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과학자이면서도 사학자 못지 않은 열정을 가지고 역사를 파헤치는 그런 사람, 그저 남이 한 말이나 주워서 찌질거리며 떠드는 대신 주체적인 해석을 제시하는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근데 굴드님도 인정하시지만 이건 사실 너무 어렵다능 ㅠㅠ)

어쨌든 결론은 굴드님 완소 하앍♡
by 로보스 | 2009/04/15 22:24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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