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풍요한 사회>, 한국경제신문.

아아 이 책 조낸 짱이다 ㅠ_ㅠ 진짜 똑똑한 사람의 책을 읽으면 읽으면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데, 이 책이 그랬다. 경제학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나인데도 말이다. 사실 이 책을 한경에서 출판했다는 걸 알고 '아 또 시장경제 찬가인가...' 하면서 저으기 실망했는데 완전 반전!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을 또 한 번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어느 저자에게 실례인 걸까 ^^;)

내가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중에 또 보고 기억날 수 있도록 책 내용을 좀 메모해 두련다. 이 책에서는 '빈곤한 사회'와 '풍요한 사회'를 나눈 후 (엄밀하게 나누지는 않는다) 고전 경제학은 사회를 '빈곤한 사회'인 것처럼 다루기 때문에 오늘날의 '풍요한 사회'에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가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고전 경제학의 역사를 훑어 오는데, 고전 경제학이 태동하던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빈곤했기 때문에 그 예측이 잘 맞을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한다. '빈곤한 사회'와 '풍요한 사회'의 차이점이 무엇이길래 그럴까? 소비자의 '욕구'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 해도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욕구는 감소하지 않는다. 즉, 가난한 사람을 식량 시장에 내보내면 그의 선택은 고전 경제학의 '합리적인 소비자'와 동일하게 된다. 자기가 최대한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다. 반면, 풍요한 사회에서는 소비자의 '욕구'가 인간의 기본 욕구와 (상대적으로) 무관하다. 대신, 욕구는 기업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산'된다. 그래, 소위 '광고'의 효과다. 이런 사회에선 지금 내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고 그 기능에 만족한다 할지라도 광고 때문에 새 핸드폰을 장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기억으론 맨큐 책에선 광고의 의미를 '과시 효과'로 설명하던데, 난 이 책의 설명이 더 맞는 것 같다. 감동했음 T_T 왠지 시뮬라크르도 떠오르고...)

좋다. 이제 두 사회가 다른 건 알았다. 이게 경제학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여기서 저자는 '생산'의 문제를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부의 생산'을 최고의 가치로 보고 있다. 국가 경쟁력을 비교하는 수치로는 항상 GNI나 GDP가 들먹거려지고, 정부의 성과를 평가하는 데에도 연간 경제 성장률이 얼마였느냐를 따진다. 하지만 필요해서 만들어진 생산품이 아니라 허공에 뿌려지는 생산품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질까? 국민소득이 10,000 달러인 나라와 40,000 달러인 나라에서 중산층의 행복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생산이 국가의 '발전'과 관련되어있다는 것은 최소한 풍요한 사회에서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또 다른 이야기가 등장. 사람은 으레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우리 사회의 청년들이 교사나 공무원에 지원하려는 이유도 다 '안전'하기 때문이고, 기업에서 아무데나 투자하지 않고 꼼꼼이 따져본 후 투자하는 것도 '안전'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후자의 안전에 굉장히 편향되어있다. 노동자가 자신의 몸을 생각해서 일을 쉬엄쉬엄 하면 욕을 들어야 하지만 기업이 안전을 위해서 노동자들을 쥐어짜면 칭송받는다. 이는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생산 지상주의 때문이다. 하지만 '풍요한 사회'라면 생산에 그렇게 몰두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저자는 생산과 안전보장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흔히 노동의 대가로 삶의 안전보장 역할을 하는 급여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빈곤한 사회에서나 먹히는 말이다. 거기선 정말 일하지 않는 자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줄 수 있는 '풍요한 사회'라면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특히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환경적인 문제로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사회에서 보장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노동 = 가치로 보는 마르크스주의 역시 이런 맥락에서 '고전 경제학'의 테두리에 넣는다.)

이런 맥락에서 공공재와 사유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느 쪽이든 재산이지만 사람들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길거리가 너저분한 것과 깨끗한 것, 어느 쪽이 나에게 '이득'이겠는가? 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과 엉망진창인 것, 어느 쪽이 나에게 '이득'이겠는가? 분명 전자다. 우리의 사유재 못지 않게 공공재도 소중하다. 하지만 역시 '빈곤한 사회'에서 만들어진, 무조건적인 사유재산 옹호 이데올로기 때문에 공공재를 잘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공공재 관리라는 것도 역시 죄수의 역설로 설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하면 좋지만 남들은 안 하고 나만 하면 나한테 손해가 오니까 결과적으로 아무도 안 하는 내시 평형에 도달하는.) 공공재도 사유재 못지 않게 '보호받아야' 하므로, 세금을 내서 공공재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소리. 비단 공공재 자체만의 이득 뿐 아니라, 공공재가 잘 관리되면 사유재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유능한 근로자를 만들어내는 교육 시스템이 그 대표적인 예.

이외에도 참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 글 한 편에 담으려니 역량이 딸린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결국 저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풍요한 사회는 빈곤한 사회와 다르기 때문에 고전 경제학이 빈곤한 사회를 잘 설명했다고 풍요한 사회에서도 잘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풍요한 사회에 맞는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행동 규범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가치로 가난한 사람들과 공공재에 대한 투자를 이야기하는 거고. 책이 마냥 쉬운 책은 아니어서 제대로 요약했는지 잘 모르겠다만,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책임에는 틀림이 없다. 세상에는 천재가 너무 많아...

@ 아참. 이 얘길 빼먹었다. 책에 단순한 타이핑 실수로 보이는 오타가 좀 많다. 단순한 타이핑 실수란 "나의 생각 → 낭,; 생각"과 같은 녀석들... 편집자들이 게을렀던 것 같다 -_-
by 로보스 | 2009/03/31 18:44 | |감상| | 트랙백 | 핑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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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못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가 이 세계를 덮고 있는 이유는? 잘 사는 놈들이 권력과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으니까! 책을 읽어가면서 &lt;풍요한 사회&gt;의 주장이 계속 오버랩되었다. 두 책 모두 문제점 인식에 있어서는 동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는 부익부 빈익빈의 세계가 될 뿐 ... more

Commented by 파도 at 2009/04/03 22:14
로보스님 저런 책 읽는데 시간 얼마나 걸리시나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4/04 23:14
파도님// 메모해둔 걸 보니 나흘 걸렸네요. :)
Commented by Wookie at 2009/05/05 10:19
이 책 진짜 강추지요!
저는 시장경제의 이해 기말고사 때문에 읽었는데 저 과목 들은걸 후회하다가 이 책을 읽게 해준 것 때문에 평가를 뒤집었답니다 ^^;;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5/05 22:11
Wookie님// 네, 저도 정말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평가를 뒤집을 만 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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