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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H. 카의 유명한 저작 <역사란 무엇인가>가 나온지 40년, 오늘날의 역사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각 분야의 역사학자들이 모인 심포지엄의 결과를 정리한 책이다. 작년 가을에 키오쿠님이 재밌게 읽고 계시길래 나도 질렀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_- 실로 오랜만에 'not 역사 but 역사학' 책을 읽는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의 주제는 카를 까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역사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데 있다. 그래서 원제는 What is history now?인데, 번역하면서 제목을 상당히 과격하게 바꾼 느낌이다. 제목만 보고 책을 골랐다면 낭패... (사실 내가 좀 그랬는데 ☞☜) 카를 비판하는 내용은 별로 안 나온다. 물론 <역사란 무엇인가> 40주년을 기념한 책이기 때문에 곳곳에서 카의 생각과 현재의 역사학을 비교하지만, "굿바이!"를 외칠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책에선 카와 현재의 역사가들이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을 몇 군데 지적하는데, 내가 볼 때 크게 두 가지의 차이가 있다. 먼저 역사학의 '사명'을 생각해보자. 카는 역사학에서 주장하는 바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 과거의 사료는 기본적으로 불완전하기에 현재의 역사가가 '해석'을 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어떤 사관을 택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떤 해석을 취해야 하는가? 카는 결국 현재의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해석을 취해야 한다고 믿었다. 과거 역사를 '인과적'으로 해석하여 어떤 조건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지 찾아내고, 이걸 기반으로 현재의 우리가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 선택할 때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현재의 역사학은 여기서 살짝 벗어났다. (물론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많은 사학자들은 과거의 사건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카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가? 이들은 '인과적' 관계로 엮인 역사보다 '문학적' 이야기로 구성된 역사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젠 사료의 문학성이 새롭게 대두되는 시대인 것이다. 두번째는 역사학의 대상이다. 카는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역사는 '주류의 역사' 즉 정치사라고 믿었고, 그 외의 다른 하찮은 인간들이 벌이는 역사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와 함께 정치사의 압도적인 위치는 무너지고 만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융성한 학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분야사들이 새로이 부각되었는데, 문화사와 젠더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는 사실 첫번째 차이와도 무관하지 않은데, 정치사로부터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과거의 다양한 인간들'이 벌인 여러가지 사건들의 문학적 의미를 뽑아내는 것으로 사학자들의 관심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여러 저자들이 저마다 하나씩 분야사를 맡아 각 분야사의 현황을 설명하고, 이것이 앞의 이야기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본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각 글에서 굉장히 세부적인 예를 제시하는데 이것이 주로 영국사에 집중되어 있어서 영국사에 무지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저자 편차가 있어서 어떤 글은 비교적 쉽게 읽혔지만. 결론적으로 흥미롭게 읽었지만 100 % 이해하진 못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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