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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의 마음과 읽은 후의 마음을 비교해보면 간단히 네 가지 분류가 가능하다. ① 기대가 컸는데 책이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경우, ② 기대가 작았는데 예상 외로 책이 좋은 경우, ③ 기대는 컸는데 책은 기대 이하인 경우, ④ 기대도 없었고 책도 별로인 경우. 굴드님의 책이나 홍성욱 선생님의 책은 보통 1번에 해당하고, 가끔씩 완전 흥분해서 독후감을 쓰는 책들은 2번에 해당한다. 이 책,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불행히도 3번에 해당하는 것 같다. 최재천 교수는 글 잘 쓰는 과학자로 유명하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그의 '문학적 형상화 능력'을 보여준 책이란다[1]. 과학자지만 과학만 바라보지 않고 인문학과도 대화를 하고자 했고, 그 결과물을 <대담>이라는 책으로 엮어낸 적도 있다. 이런 배경지식을 안고 책을 잡았으니 내 기대가 얼마나 컸겠는가! 하지만 불행히도 이 책은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저자의 글 쓰는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든다. 물론 저자의 글 솜씨는 인정한다. (나보다야 낫겠지 -_-) 저자는 동물 세상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고, 어떤 정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문제는 그것들을 잘 '꿰지' 못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한 문단과 그 다음 문단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대신 어거지로 끼워맞춰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일전에 고종석 씨의 책을 비판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2]를 했는데, 아는 걸 최대한 쏟아내려다 보니 비슷하지 않은 주제들을 무리해서 엮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일례를 들어, <이보다 더 잔인할 수는 없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글(104-108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은 인간이다. 우린 맹수들의 행동을 보면서 끔찍해하지만, 우리 자신이 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 그런데 인간 외에도 대량학살을 자행하는 동물들이 있다. 이런 동물들의 공통점은 고도화된 사회구조다. 대량학살은 사회구조의 발전에 따르는 필요악인 듯 싶다. 중학교 때 고려장이라는 잔인한 풍습을 배운 적이 있는데, ⓐ역사적으로는 사실무근이란다. 이 고려장이 왜 잔인하냐면 오랜 시간에 걸쳐 정신과 육체를 잠식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잔인한 일을 하는 곤충으로 말벌이 있다. 말벌은 곤충을 잡은 후 마취시켜 그 속에 알을 낳아 새끼가 그 곤충을 서서히 파먹으며 자라게 한다. ⓑ외국인들이 정말 못 먹는 한국음식으로 번데기와 산낙지가 있다. 말벌 어미의 자식 사랑은 대단하지만 희생되는 곤충 입장에선 끔찍할 뿐이다. 우선 이 글은 크게 두 개의 주제를 한 글 안에 엮어쓰려다 보니 산만하게 되었다. 첫째 주제는 '대량학살을 저지르는 종(species)'이요, 둘째 주제는 '말벌이 자식을 키우는 법'인데, 둘 사이의 상관성은 찾기 힘들다. 그저 '고려장'이라는 약한 고리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초반에 '잔인한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초점이 어딘지 불분명하다. 인간이 잔인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은데, 다른 동물들 얘기는 왜 끌여들이며, 게다가 그 잔인성은 사회구조의 발전에 따르는 필요악이라니? 또한 ⓐ, ⓑ와 같은 생뚱맞은 구절들이 들어와있는 것도 의문이다. 필자는 무언가 떠오른 게 있어서 넣은 말들이겠지만, 앞뒤 문맥과 크게 상관도 없고 주제와도 별 상관 없는 말들을 굳이 여기 삽입해야 하나 싶다. 이 글만 보면 저자가 '글 잘 쓰는' 교수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생각해보니, 내가 '글 잘 읽는'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건 내 독후감이니까 저자를 욕하자! -_-) 다음으로,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저자는 분명 서문에서 '자연주의적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언론매체에 담았던 것들이라 제 글들은 종종 시사성을 띱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동물들도 그런데 우리도 이래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이른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되도록 범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때로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겠습니다. 어떨 때는 정말 우리가 동물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하략, 8쪽) 하지만 본문에서는 자연주의적 오류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아무리 봐도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기에는 힘든 모습이다. 이건 상당히 독특한 현상인데, 서구 과학자들이 쓴 책(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더라도 -- 예를 들어 굴드)에서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거의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유독 이 책에서만 자연주의적 오류가 도드라지게 나타날까? 처음에는 저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문에서 거짓말을 했든지, 아니면 '자연주의적 오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해한 척 거짓말을 했든지. 그런데 글을 읽어가면서, 저자의 호흡을 따라가면서, 저자가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찾아냈다. 열정을 지니고 있는 과학자들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에 대한 열정과 '설명'에 대한 열정이다. 전자가 강한 사람은 자연 그 자체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서 사는 사람들이고, 후자가 강한 사람들은 난삽해 보이는 자연의 모습이 간단한 법칙으로 쉽게 설명된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근대과학의 강점은 '설명'에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설명'의 매력에 빠져서 과학을 탐구하곤 한다. (HIV가 살아가는 방법[3]과 어떤 독버섯이 생물을 죽이는 원리[4]가 central dogma[5] 하나로 설명된다니 놀랍지 않은가!) 헌데 이 책의 저자는 이런 타입의 과학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저자는 '자연'의 매력에 빠져서 과학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에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도 많고 자연의 모습에서 교훈을 찾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니 모든 미스테리가 풀렸다. 순간, 어쩌면, 저자는 시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 변명. 저 두 가지 구분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 잘리듯 탁탁 잘리면 얼마나 좋을까.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어느 과학자에게나 저 두 가지 요인이 적절히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비율로, 이 책의 저자는 '자연'에 대한 열정이 '설명'에 대한 열정보다 훨씬 강한 것이고, 내가 봐온 다른 과학자들은 '설명'에 대한 열정이 더 강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동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는다. 독자께선 내가 단순한 설명을 위해 과격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을 용서해주길 바란다.) 그렇기에, '자연'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참 좋은 책일 것이라 생각한다. 글을 읽어가면, 저자가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자연을 한 아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을 알고 싶은 사람들의 기대에는 조금 못 미치지 않나 싶다. 이렇게 쓰면 조금 민망하지만, 나는 '자연'보다는 '과학'에 훨씬 관심이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실망스러웠던 책이다. 모르겠다. 그저 내가 느낀 점을 정리해서 이렇게 올리니, 이 독후감이 누군가의 독서 계획에 한 줄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위대한 석학을 '비판'하는 글을 쓰려니까 정말 힘이 든다. 저자가 와서 읽어도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조리있는 글을 쓰겠다는 결심 때문에, 이 글을 붙들고 있었던 것만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서 임시저장을 누르고. 휴. 이젠 지쳐서 그냥 내보내련다. 내 능력의 한계인 것 같다. 누군가는 내 진의를 알아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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