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 신이 존재한다면 왜?>, 삼성출판사.

얼마 전 토마스 아퀴나스의 <지성단일성>을 읽고 중세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토마스의 대표작 <신학대전>을 좀 볼까 했는데, 이건 무슨 번역도 다 안 되어있... ㅎㄷㄷ 그래서 좀 쉬운 책을 골라 잡았다. '청소년 논술참고도서'로 분류되어 있는, 'Easy 고전'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책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를 간략하게 기술한 후, <신학대전> 중 제1권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 신학이 중세 초반을 지배했다면 중세 후반은 토마스의 스콜라 신학이 지배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의 영향을 다분히 받은 것에 비해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위키백과가 잘 정리해 놓았기에 길게 쓰지 않는다.

일전에 읽은 <지성단일성>이 토마스의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보였다면, <신학대전>은 신학자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중세 신학'이라고 하면 굉장히 고리타분하고 비합리적일 것 같은데, 막상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토마스는 몇 개의 대전제로부터 여러가지 명제들을 증명하는 연역법을 사용한다. (그가 의식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어떤 상황을 가정한 후 그 상황이 다른 명제들과 모순된다는 것을 보이는 귀류법도 사용한다. 특히 나의 주의를 끌었던 것은 토마스가 신과 우주의 관계를 비교하는 부분이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토마스는 가능한 몇 개의 경우를 가정한 후 각 경우에 대해 모순이 있는지 알아본다. 토마스가 제시한 경우는 "신은 우주 안에 있다." "신은 우주와 동일하다." "신은 우주의 영(spirit)이다." "신은 우주 밖에 있다." 이렇게 네 개였는데, 토마스는 이 모든 경우가 다 모순을 일으킴을 보인다. 그리고 이로써 "신은 어디에 있다고 한정지을 수 없다.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라는 결론을 얻는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 있어 토마스가 철저하게 '이성'을 가지고 사고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개신교회를 다니는 나에겐 꽤 놀라운 사실이었는데, 비록 정식으로 신학을 배운 적은 없지만 이리저리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_- 현대 복음주의 개신교 신학은 어떤 명제든 그 근거를 항상 성경에서 찾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은 무소부재하다."라는 명제는 예레미야 23장 24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와 같은 성구로부터 증명한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런 식으로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치를 따져서 명제를 증명하는 것이다. (유명한 '신 존재 증명'도 이 책에 나온다. 역시 성경 인용보다는 이성을 가지고 열심히 따져서 증명한다.) 현대 가톨릭 신학도 이런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동일한 '신'에 접근하는 방법이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혹시나 해서 부연하자면, 복음주의 개신교 신학이 근거를 성경에서 찾는 것이 더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이 두 가지 접근법이 그저 '다를' 뿐, 우열 관계를 형성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스콜라 신학 식의 접근은 언뜻 들으면 좋아보이지만, 신앙에 필요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쓸데없는 논쟁을 벌일 위험이 있다. 실제로 스콜라 신학자들은 "바늘 위에는 천사가 몇 명까지 올라갈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놓고 열심히 치고 받았다고 한다. (위키피디어를 읽어보니 의혹이 있긴 하네 -_-) 사실 이런 질문이 종교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개신교 신학에서 '이성'을 '성경'의 아래에 놓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신앙생활에 불필요한 명제들로 논쟁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다보니 쉽고 재미있긴 했는데, 너무 얕다는 느낌을 받았다 orz 다음번에는 좀 더 어려운 책으로 도전해봐야겠다 :$
by 로보스 | 2009/01/15 17:13 | |감상| | 트랙백 | 핑백(2)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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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 철학적 명제들, 서광사. 박정호 외, 현대 철학의 흐름, 동녘. (12/29-1/7) [감상문] 김상현,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 신이 존재한다면 왜?, 삼성출판사. (1/12) [감상문] 과학 스티븐 핑커, 빈 서판, 사이언스북스. 김영식, 과학, 역사 그리고 과학사, 생각의나무. (1/9-1/12) [감상문] 고인석, 과학의 지형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 more

Linked at 世界はネオハピ! : K. 플라.. at 2009/03/02 17:56

... [2]</a>)을 읽고 중세 철학에 관심이 생겨서 중세 철학 개론서를 찾던 중에 이 책을 발견하였다. 순수하게 '개론서'라고 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많은 배경지식을 요하는 책은 아닌지라 출퇴근 길에 설렁설렁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중세 철학을 '대결' 구도로 풀어가고 있다. 목차를 한 번 볼까? 1. 동로마의 인용과 설정 - 카롤링거 왕조의 새 출발 2. 차별화 : 라틴 서유럽과 동로마의 대결 3. 예정인가, ... more

Commented by 노정태 at 2009/01/15 17:19
순수하게 이성의 힘만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안셀무스의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으로 거슬러 올라가죠. 관심이 있다면 아카넷에서 나온 번역서를 구입하셔서, 프로슬로기온의 1-5장을 읽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흔히 말하는 '존재론적 신존재증명'의 원형이자 정수가 담겨있어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1/15 17:41
노정태님// 좋은 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D 읽어야 할 책이 하나 더 늘었네요 ^^
Commented by WizardKing at 2009/01/18 18:33
안셀무스. 아, 반쯤 읽다가 쓰러진 그 책 (...)
Commented by 이상혁 at 2009/01/19 01:11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1/19 08:41
WizardKing// 앗 위자드킹이 반쯤 읽다 쓰러졌다면 나는 서문만으로도 떡실신하겠는걸 ;;;

이상혁님// 독후감을 공유해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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