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에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받은 책. 기아 문제 전문가인 저자가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을 빌어 현재 지구의 기아 문제를 설명하는 책으로, 알라딘에서 '청소년 인문/사회'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져있다.

지구에서 생산되고 있는 식량은 이미 전 인구를 먹이고도 남을 정도의 양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지구 한편에서는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는가? 이 책에서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며 크게 두 가지의 원인을 제시한다. 첫번째 원인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빈곤국가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이다. 과거에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심겨진 단일 경작 시스템, 그리고 지도층의 부패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많은 빈곤국가들이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외부의 원조는 잠깐 몇몇 주민들의 기아를 해결해줄지는 몰라도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원인은 맬서스의 자연도태 사상,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간 신자유주의에 있다. 기아에 대한 입장 중에는,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자유 경쟁'에서 패배한 자들이고 따라서 '자연도태'되어도 상관없다는 입장이 있다. 이게 너무 과격한가? 소프트코어 버전으로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아져서 식량을 통해 그 수가 조절되고 있다 ㄷㄷㄷ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지구님 앞에서 닥버할 뿐..."도 있다. 전부 기아라곤 겪어보지도 않은 자들이 떠드는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손'사마가 짱임 ㄳㄳ 쟤들이야 굶어죽든 말든, 우리는 각 국가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음!"라는 입장은 어떤가? 이게 신자유주의의 입장인데, 이 책에서는 특히 곡물 시장에 만연해있는 신자유주의를 비난한다. 현대 국가들은 자국에서 식량이 남아도는 형편일지라도 차라리 불태울지언정 절대로 빈곤국가에 나눠주지 않는다. 시장에 풀리는 곡물량을 조절해야 자신들이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시장'에 맡기면 이렇게 된다. 어느 나라에서는 곡물이 남아돌아 불태우고, 어느 나라에서는 곡물이 부족해 사람들이 굶어죽어간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손이 '무조건' 옳은 걸까? (주경복 교수가 쓴 신자유주의 비판이 이 책의 부록으로 들어있다. 일독의 가치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원인들을 제시하면서 한편으로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기아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구호 캠프에서 한정된 구호품을 배분하기 위해 사람들을 '거르는' 작업을 하는 광경을 묘사할 때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 아이는 살아날 가능성이 적으니 구호품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니... 한정된 물자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하는 '선택'이라지만, 이 얼마나 안타까운 풍경인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정치가들이 반대 세력의 음모에 휘말려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었다. 젊은 개혁가가 겨우 계획을 수립하고 조금 추진해가나 했더니 바로 반대 세력에 의해 암살당한다. 그라쿠스 형제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이런 끔찍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 해야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에게 얼마씩 송금하고 양심의 가책을 덮어버리는 것?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근본적인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뭘 해야 할까. 당분간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by 로보스 | 2009/01/12 13:43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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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교사모임 대안사회분과, 우리 사회를 움직인 판결, 휴머니스트. 김욱, 교양으로 읽는 법 이야기, 인물과사상사.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갈라파고스. (1/8) [감상문] 비평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노암 촘스키, 촘스키, 사상의 향연, 시대의창. * 최종 업데이트 : 2009. 1. 12. ... more

Commented by 제갈교 at 2009/01/12 20:59
기아가 발생하는 그 나라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은데, 그랬으면 이미 기아 발생국이 거의 없었을려나요...-_-;;;

그 나라의 사람이 아닌 외국인 개개인으로서는 그 나라 정치에 개입할 수 없고... capcold님의 블로그에서 본 부패세력에 반대한 "인권·개혁"을 표방하는 그 나라의 세력에게 후원하는 방법도 있다는데 현재 학생인 喬兒같은 사람들에게는... -_-;;;

기아에 대한 책이나 방송을 보면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울컥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또 슬퍼져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1/13 09:00
제갈교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단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어요 :)
Commented by DK紅炎卿 at 2009/01/21 06:34
"얼마간씩 송금하고 양심을 가책을 덮어버리는 것"은 문제지만, 그 것조차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떠드는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그거라도 하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1/21 09:26
홍염// 그건 그렇지. 뭐 그들 보라고 쓴 말은 아니니까 --;
Commented by ^-^ at 2009/01/29 11:23
지글러의 신간<탐욕의 시대>도 번역되어있어요. 같이 읽어보시면 좋을 듯^^ 저는 이 책을 우석훈씨의 추천으로 읽고서 뭔가는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는데....맥 잡기가 생각보다 어렵네요. 다짐하다가 중간중간 하도 맥이 빠져서....구조적인 문제가 큰 것 같은데....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1/30 08:45
^-^님//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 무엇을 해야할지는 계속해서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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