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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코엑스 반디앤루니스를 갔다가 눈에 띄어서 구입한 책. 시에 그다지 취미는 없지만, 가끔 가슴을 울려오는 시를 보면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작년에 수능이 끝난 직후 수능 문제를 구해서 풀어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언어 영역에 실렸던 시 한 편이 가슴을 쿵쿵 치는 바람에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이어령 선생의 시집이다. 머리말에 너무도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옮겨 놓는다. 산문의 언어는 딱정벌레의 등처럼 딱딱합니다. 그것으로 연약하고 부드러운 시의 육질을 보호해 줍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산문의 껍질 속에 숨어 있던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늘 생명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급소를 훤히 보여줍니다. 시의 언어는 누가 찌르지 않아도, 상처 없이도 피를 흘립니다. (4쪽) 아아, 이것이 시의 본질일진저! 줄글은 내용을 이해하며 줄거리를 따라가야 가슴을 울릴 수 있지만, 시는 단 한 소절의 표현만으로 가슴을 쪼개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아닐까? 이 시집을 읽으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시인들은 실존의 속살을 그리도 잘 뽑아서 보여주는 것일까. 특히나 읽으면서 많이 울컥했던 시들은 '사랑'에 관한 시들이었다. 유행가 가사에 흘러 감기는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도 없는 내리사랑. 그래, 신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이다. 받으려면 주어야 하는 세상의 논리 속에 갇혀 살면서, 이렇게 만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유약하다고 비난해도 좋다. 나는 내 힘만으로 걸어갈 수 없기에 사랑으로 힘을 얻는 못난 인간이니까. 아까 S대 사과대에 다니는 후배 하나와 이야기를 잠시 나눴는데, 철학자 아도르노는 예술을 정말 중요하게 보았다고 한다. 평소에는 이성의 무게에 눌려있던 감정이, 아둥바둥 이성을 밀어내고 이성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 판단에 참여할 수 있는 순간이 예술작품에 감동을 느끼는 순간이기 때문이란다. 내가 시집을 읽으면서 눈가를 적시는 순간이, 바로 이 차갑고 냉정하기만 한 과학도 속에 갇혀 있던 감정이 그 힘을 분출한 순간이었던 것은 아닐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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