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B. 캐럴, <이보디보,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다>, 지호.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는 '이보디보'라는 게 무슨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인줄 알았다. 막상 책을 펴보니 진화발생생물학(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의 애칭이라는군. 무슨 학문에 애칭이 있나 싶지만 -_-; 학문의 애칭 하니까 갑자기 우리의 분석화학 Analytical Chemistry 군이 Anal Chem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T_T

진화론의 역사를 살펴보면 '현대적 종합(Modern Synthesis)'이라는 커다란 사건[1]을 만나게 된다. 1930년대에서 4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 생물학의 여러 학문들이 극적으로 진화론을 통해 통합된 사건이다. 분자생물학에서 고생물학까지, 그간 별 교류가 없던 학문들이 하나로 통일되는 '원리'를 갖게 된다. 그런데 이 통합에 끼지 못한 학문이 있었으니, 발생학(embryology/developmental biology)이 바로 그 녀석이다.

이보디보, 즉 진화발생생물학은 이 발생학까지 진화의 그늘 아래 통합하려는 학문이다. 어떻게? 그걸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우리가 자연적으로 혹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변이체를 보게 되면 가끔 '기관 전체'가 추가되거나 변형되는 변이가 있다. 유명한 예로 초파리의 더듬이가 다리로 바뀌어버리는 예가 있고, 인간에서 나타나는 예라면 다지증이 있다. 이 모든 변이는 (당연히) '발생' 단계에서 생기는 문제고,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해보니 발생 과정이 '모듈' 구조를 기본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다.

'모듈' 구조란 무엇인가? 생물체의 배(embryo)를 만들 때, 하나하나의 세포를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만드는 대신 큰 덩어리를 잡고 그 덩어리를 점점 쪼개가면서 만든다는 것이다. 이 덩어리 하나하나를 모듈(module)이라고 부른다. (프로그래밍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익숙한 단어일 듯 -ㅅ-) 예를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인간의 배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손'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첫번째는 엄지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조물조물 다 완성하면 검지로 넘어가고, 또 다 완성하면 중지로, 약지로, 새끼로 하나씩 만드는 방법이다. 반면, 일단 손의 형태를 대충 잡아놓고, 다 잡으면 손바닥과 손가락 부위를 분리해서 표시해놓고, 이게 끝나면 손가락의 마디를 대충 표시해놓고, 다음으로 세부적인 특징을 잡아나가는 방법이 있다. 생물체는 바로 이 두번째 방법으로 발생한다. 모듈은 계층적 구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 모듈을 세보자면 '손'이라는 커다란 모듈, '손'을 이루는 '손바닥' 모듈과 '손가락' 모듈, '손가락' 모듈에 속하는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새끼' 모듈이 있을테고, 각 손가락 모듈 안에도 '첫번째 마디', '두번째 마디', '세번째 마디'가 있을 것이다. 대충 감이 오는가?

이렇게 모듈적으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마름선을 그릴 '초크'가 필요하다. (나 중학교 때 가정 올백이었다능 -_-v) 어느 부분에 어떤 모듈을 달지 결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초크 역할을 담당하는 유전자를 가리켜 '툴킷 유전자(toolkit gene)'라고 하는데, 처음 배가 발생할 때 어느 부분에 어느 모듈이 자라날지 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나비의 날개 무늬를 보자면, 정확히 특정 툴킷 유전자가 발현된 부위에만 특정 색이 생기는 것이 관찰되었다. (지금 책이 없어서 구체적인 유전자 이름 같은 건 모르겠다 -_-;) 이 '초크'를 어디에 그을지 결정하는 것이 '조절 유전자(regulatory gene)'인데, 얘들은 스스로 어떤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대신 다른 유전자를 켜고 끄는 역할을 한다. 즉 어느 위치에서 어떤 툴킷 유전자가 발현될지 결정하는 녀석들인 것이다.

그래, 좋다. 그런데 이게 진화에서 왜 중요한가? '변이형'을 만들어내는 주 과정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작동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서 표현형의 변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다 orz) 하지만 이보디보에 따르면, 그보다는 조절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서 표현형의 변이가 생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게 무슨 소린가? 쉽게 말해, 이미 만들어진 블럭들을 조금씩 고쳐서 변이형을 만드는 것보다 만들어진 블럭들을 끼워넣는 장소를 바꿔나가면서 변이형을 만드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물론 전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 뭔가 열심히 써봤는데 제대로 쓴 건지 모르겠다. 읽을 때는 진짜 재밌었는데 그 느낌이 제대로 안 써진 느낌 orz 여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즐거웠다. 새로운 개념들, 창의적인 생각들- 크 죽음이다 -_-)b 다 읽고 나니 발생생물학 듣고 싶은 생각이 막 들더라. 이거이거, 복학해서 발생 듣느라 캐발려버리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ㅁ;
by 로보스 | 2008/12/01 18:27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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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12/01 18:29
쓰고 보니 왜 이리 짧지! 엄청 오래 걸려서 쓴 건데 orz
Commented by 키오쿠 at 2008/12/01 21:31
휴학전 분자생물학을 들었던 기억으로는 생물학은 쥐쥐 ㅠㅠ 너무 존경스러워요. 그래도 진화론은 재미있다는 :$
Commented by AFHR at 2008/12/01 23:00
생물학이 초보자에게는 상당히 지겨운 학문이죠. 저도 처음 생물책 폈을 때 졸려 죽는 줄 알았답니다^^; 발생생물학은 "졸린" 단원 중 대표적인 부분인데요, 아무리 연구해도 연구할 게 계속 나오는 화수분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여전히 시험에 낸다면 졸립니다 ㅠㅠ
Commented at 2008/12/02 01: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12/02 08:48
키오쿠님// 네 재밌어요 :$ 저도 예전에 분생 청강하러 간 적이 있는데, 복학하면 제대로 들어볼 생각도 있답니다 ^^

AFHR님// 네. 고등학교 때 배우던 걸 생각해보면 발생이 그리 즐거웠던 것 같지는 않군요. 전공 과목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비밀글// 뭐... -_-; 중2병이려니 해야지.
Commented at 2008/12/02 16: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12/03 09:28
비밀글// 사실 올백은 쵸큼 과장이고 ㅋㅋㅋ 3학년 때만 ㅋㅋㅋ 가정 선생님이 이뻤거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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