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자다브, <신도 버린 사람들>, 김영사.

우리는 흔히 인도의 카스트 제도로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라는 네 계급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다른 계급 사람들이 만지기만 해도 부정해진다는 '불가촉천민'인 달리트들이다. 공식적으로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1950년 폐지되었지만, 요즘도 전통적인 생활을 고수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카스트 제도가 공공연히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지역에서 달리트들은 아직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1]. 이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들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부모가 20세기 초 카스트 제도에 반발해서 어떻게 싸웠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읽으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걸 글로 쓰려니까 좀 힘들다. 그 수많은 상념과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냥 내가 이 책에서 얻을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보련다.

우선 지독히도 끔찍하고 공고한 '계급'의 족쇄를 거부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달리트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안 될거라 이야기하는 데도 옳은 것을 향해 뛰어들어가는 모습, 참으로 감동적이다. 내가 그 시대 달리트로 태어났다면 이들처럼 해방을 위해 뛰어들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왠지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해버릴 것 같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대단해보인다.

여기에 지식적인 측면으로 인도의 현대사를 약간이나마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마하트마 간디가 '그저 옳은' 사람만은 아니었다는 점? 달리트의 관점으로 볼 때는, 간디는 그저 '저들의 지도자'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달리트의 권익을 찾아달라는 요구에 대해, "일단 영국으로부터 해방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답변만 했기 때문이다. 간디와 달리트들의 관점 차이는 간단히 말해 '민족 해방이 우선이냐 계급 해방이 우선이냐'라는 해묵은 떡밥으로, 인도 인민들이 전부 간디를 지지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동도 받았고, 지식도 얻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소득은, 달리트와 기득권층의 충돌은 결국 '전통'과 '인권'의 충돌이었다는 깨달음이다. 사실 모든 달리트들이 해방 운동에 참여했던 것은 아니다. 책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듯이, 많은 수의 달리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고 전통을 따랐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협박이 무서웠고, 자신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힌두교에서 제시하는 '원시적인' 계급제를 당당히 거부하지 못한 이들이 열등해 보이는가? 사실, 이 문제는 뒤집어 보면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역시 '전통'이 '인권'을 억누르는 경우를 많이 보지 않는가? 그저 이들의 '전통'이 우리와 다르기에 잘못된 점이 명확히 보일 뿐이다. "여자는 땅이요, 남자는 하늘이야!" "학생은 시키는대로 교육받기만 하면 되는 거야!" "노동자 나부랭이가 어딜 감히!" 이런 말들이, "신들이 달리트를 저주하셨어!"와 다를 게 무엇인가? 우리가 얼마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길래 감히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은 뒤 우리의 감상이 "아 위대한 사람들이구나!"라든지 "와 이런 일이 있었구나!"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그 시대에 했듯이, 우리 또한 우리 시대에서 '인권'을 말살시키려는 '전통'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이 시사하는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 아 글 안 써져 ㅠ
by 로보스 | 2008/11/28 16:55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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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WizardKing at 2008/11/28 20:01
헉! 불가촉천민이라 함은 수드라가 아니었던가?!하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민족 해방에서 나오는 감흥이라는 게 그렇게 되기가 쉽지요. 우리 나라도 병합조약이나 광복을 거치고도 단순히 이 통치자를 저 통치자가 대신한 걸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잖아요.

그나저나 간디를 파시스트적인 인물로 보는 사람도 있던데. (...) 사실 저런 복잡한 상황(서로 다른 계급, 민족, 인종, 종교, 이념 등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옳은 걸까를 늘 생각해야 제2, 제3의 간디가 좀더 긍정적인 인물로 드러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우리 나라 사람들이 현대사 가지고 싸우는 양상을 보면 좀 괴롭군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12/01 09:07
위자드킹// 그렇지. 싸워도 좀 가치 있는 관점을 가지고 싸웠으면 좋겠어 T_T
Commented by 김진이 at 2009/06/06 21:20
이거 정말 님이 쓴거예요?
완전공감 하고 진짜 잘쓰신것같애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6/08 09:34
김진이님//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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