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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진장 무거운 책은 들고 다니지 않고 집에 두면서 조금씩 읽어나가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그런 책들은 아무래도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고, 다 읽고 나면 앞에 읽은 내용은 까먹어 버리기 때문에 독후감 쓰기가 난감하다. 이 책 역시 무진장 무겁고 두꺼운 책이라 밖에 들고 다니는 대신 집에서 오랫동안 읽은 책이라서 어떻게 독후감을 시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책이다. 난 내가 좋아했던 동명의 게임 -_- 덕분에 이 시대에 대해 좀 안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이 책을 읽어보고 나니 내가 알고 있던 건 완전 빙산의 일각, 수박의 겉껍질에 붙어있는 먼지 입자 하나만도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라는 것이 정치사의 관점에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닐진대,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정치사 뿐, 그것도 그 중에서도 1 ng 정도에 해당하는 지식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정치사는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을 차지한다. 총 아홉 개의 장 중에서 두 장이다. 여기서는 유럽 문명이 어떻게 세계 문명과 접촉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서술한다. 말은 쉽지만, 사실 16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긴 기간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포르투갈이 세계로의 문을 열었고, 그 배턴은 네덜란드에게 넘어갔으며, 이후로 영국이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게 된다. 이 책에서 계속 강조되고 있는 것이, 설사 유럽 국가들이 다른 대륙으로 진출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다른 대륙 사람들이 그저 수동적으로 '발견당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화 원정 등의 예로부터 알 수 있듯, 유럽 외의 대륙에서도 바다로 진출하려는 모습을 여러 번 보였으며, 유럽이 진출한 이후에도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유럽과 다양한 상호작용을 벌여 여러가지 결과를 낳았다. 뭐 여기만 해도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았는데, 책에서는 이 다음부터 이 내용을 기반으로 이 시대 '사람살이'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이건 그냥 목차를 퍼오는 게 낫겠다. 제2부 폭력의 세계화 제3장 근대 해양 세계의 내면: 선박·선원·해적 제4장 근대적 폭력, 폭력적 근대: 군사혁명과 유럽의 팽창 제5장 화폐와 귀금속의 세계적 유통 제6장 노예무역: 근대 세계의 비극 제3부 세계화·지역화된 문화 제7장 환경과 인간 제8장 기독교의 충격: 사회의 위기와 의식의 위기 제9장 문화의 교류: 언어·음식·과학 기술 워낙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데다가 각 주제에 대해서도 꽤나 심도 있게 논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이 짧은 감상문에 이들을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을 꿰뚫는 일관된 관점이 있으니,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구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관점이다. 유럽인이 타 대륙에 진출했을 때, 유럽이 타 대륙에 미친 영향 못지 않게 타 대륙도 유럽에 영향을 미쳤고, 유럽 문명이 타 대륙에 들어왔을 때, 그것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상호작용을 거쳐서 정착되었다. 일례를 들어 (비교적 최근에 읽은 ㅋㅋ) 기독교를 보자. 우리는 흔히 유럽 문명이 강제적으로 원주민들에게 개종을 요구했고 원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훨씬 복잡하다. 기독교가 전파된 곳에서, 기독교에 대한 원주민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고 기독교를 전파하는 선교사들의 태도도 각양각색이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선교사부터 혼합주의적인 선교를 펼쳐서 별 무리 없이 기독교가 받아들여진 반면, 어느 지역에서는 근본주의적인 관점의 선교사와 잔인한 풍습을 가지고 있는 부족이 부딪쳐서 선교사가 수도 없이 죽어나갔다. (물론 '강제 개종'으로 원주민들을 무진장 죽인 경우도 있다.) 이를 읽으면서 유럽이 타 대륙에 전해준 것들을 원주민들이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소화'시켰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학술적으로도 탄탄하고 내용도 재미있다. 그 두께만 용납할 수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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