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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철학의 본좌 토마스 아퀴나스 님이 저술하신 책! 앞선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우리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시는 박우석 교수님께서 (지금은 닫으신) 홈페이지에서 하신 추천을 보고 즉각 구입한 책이다. 하지만 고대/중세 철학에 무지한 나에게는 그리 쉬운 책이 아니었고, 어쩌면 본문 자체보다 앞에 달려있는 해제에서 더 도움을 받은 듯 하다. 그래서 이 글도 책에 대한 감상보다는 새로 배운 점을 정리하는 수준의 글이 될 것 같다. 우선 중세인들이 '지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자. 중세 후기에 들어오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유럽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거의 성서와 삐까뜨는 권위를 갖게 된다. (교회의 권력이 무시무시했던 '암흑 시대'인데도 이중진리론 등의 주장이 '감히' 나올 수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역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힘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따라서 성서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인 '지성'에 대해서 논의할 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 '지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앞선 글에서 등장했던 '수동지성'과 '능동지성'이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들을 분명히 분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저작을 분석한 중세 주석가들은 대개 이 분류에 동의하는 듯 하다. '수동지성'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을 받아들여 분석하는 1차적이고 원시적인 지성이다. 내가 내 앞에 놓인 노란 레몬을 보면서 '신 맛이 날 것 같다'라는 판단을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동지성은 원래 백짓장과 같이 아무것도 안 '쓰여'있지만,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것들을 통해 그 위에 여러가지 판단들을 차곡차곡 쌓게 된다. 한편 '능동지성'은 좀 더 고퀄리티의 지성으로, 사물 자체의 '본질'에 대해 판단하는 지성이다. 앞선 글에서 나온 예를 빌리자면, 명박이, 만수 등 개별적인 인간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수동지성이지만 '인간'의 일반적인 속성, 그 본질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능동지성이다. 여기서 칸트의 선천적 종합 판단을 떠올리면 막장인가효? @_@ 왠지 두 개념이 어느 정도 흡사해보인다. 어쨌든 우리의 경험에 근거하지 않고도 사물을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사실 놀라운 능력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중세 신학자들 중에는 이 능동지성이 바로 신(神)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 이 '지성'은 '영혼'과 무슨 관계에 있는가? 이것이 아베로에스(Averroes)를 따르는 철학자들이 제기한 의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영혼'이 신체의 완성(perfectio)이라고 정의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영혼은 어떤 형태로든 신체 기관들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영혼이 '시감각'을 얻기 위해 시각 기관을 사용하는 것을 예로 들을 수 있겠다. 문제는, '지성'은 어떠한 신체 기관과도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얘기하는 지성은 수동지성과 능동지성을 모두 포함하나, 앞으로의 논의에서는 주로 수동지성에 초점을 맞춘다. 능동지성보다는 수동지성의 문제가 더 컸기 때문이다.) 아베로에스는 이로부터 신체와 무관한 '지성'은 신체의 완성인 '영혼'에서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 주장을 가리켜 지성분리성이라 부른다. 자, 여기서 아베로에스는 한 발짝 더 나간다. 만약 지성이 개별적인 인간에게 각각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성이 여러 개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아니한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지성은 사실 단 하나다! 이것이 바로 지성단일성이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지성을 갖고 있다면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아베로에스는 이중 주체론을 들고 나온다. 분명 지성은 단일하지만, 우리가 각자 갖는 감각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이로부터 생기는 심상이 다르고, 심상과 지성이 결합할 때 각기 다른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는 이 책에서 이러한 해석을 단호히 배격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은 아퀴나스가 아니다. 아퀴나스는 그가 활동했던 지역의 이름이기 때문에 '토마스'로 부르는 것이 맞을 듯.) 토마스의 논리는 이렇다. 지성은 영혼과 분리되지 않고 각 개인 속에 내재한다. 그렇다면 영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와 모순 아닌가? 아니다. 지성은 영혼의 '능력'으로, 영혼은 신체에 제한될지라도 지성은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토마스는 영혼의 계층 구조를 도입하는데, 식물들의 영혼은 '생장 능력'만 가지고 있는 반면 동물들의 영혼은 '생장 능력'과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여기에 더하여 '지성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우월하기 때문에 신체를 초월하는 능력까지도 가질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토마스가 펼친 논변이 '신학적'이지 않고 '철학적'이라는 것이다. 토마스는 신학자이자 철학자였고, 파리 대학 신학부 교수였다. 인간 영혼의 불멸과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심판을 믿는 기독교 교리상, 지성이 단일하다고 해버리면 신학적인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그는 원하면 라틴-아베로에스주의자들을 이단으로 몰아서 죽여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 방법 대신 그들의 논리 속에 뛰어들어 그들의 방법을 가지고 토론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가치있다고 한다. 토마스가 쓴 <신학 대전> 등의 책은 다분히 '신학적'인 논변이 많이 섞여나오는 반면, 이 책은 순수하게 철학적이기 때문에 철학자 토마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나?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창조과학회 인간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토마스와 비슷한 마음으로 일에 임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냥 "과학은 ㅄ이니 다 꺼지셈 무조건 성경이 옳음 ㄳㄳ" 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걸 과학적으로 어떻게든 설명해보겠다고 과학의 논리와 방법론을 가져와서 과학자들에게 대항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중진리론을 인정하지 않는 다음에야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지나가야 하는 것은 맞고, 그런 면에서 이들의 시도는 -- 토마스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듯 -- 가치가 있다고 할 만 하다. 문제는, 토마스는 철학자들의 논리와 방법론을 완벽히 이해하고 싸웠지만 이 인간들은 과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헛소리만 하고 있다는 데 있지만 말이다. (아니 도대체 열역학 제 2법칙 논증은 왜 아직까지도 붙들고 있는 건데? -_-) 예전에 과기역을 들을 때, 임종태 교수님이 특히 중세 과학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흔히들 '암흑 시대'로만 알고 있는 중세, 사실 그 시대에도 많은 지성들이 활동했고 많은 업적들을 남겼다. 근대 학문들의 세례를 받은 우리는 더이상 그 시대의 생산물을 배우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완전히 가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중세 지성인들의 치열한 논쟁을 엿볼 수 있었고, 중세 철학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박우석 교수님이 기뻐하시려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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