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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허수 단위)는 남성의 성기와 같다."
이 문장, 어떤가요? 정신분석학자로 유명한 자크 라캉이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보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을 조합시킨 라캉을 욕하더군요. 수학적 개념도 제대로 이해 못 하면서 왜 깝치느냐고요. 심지어 어떤 분들은 라캉을 보고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부르기도 하더라고요. 자, 이번엔 다음 문장을 읽고 이 문장을 쓴 사람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판단해보도록 합시다. "현재는 무리수이다." 이 문장 역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을 조합해놓았군요. '현재'가 '무리수'라니, 이 얼마나 대단한 헛소리입니까? 분명 이런 문장을 만든 사람은 수학적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위의 글을 쓰신 분은 수학자[1]이시고, 위의 글이 등장하는 곳은 수학에 관한 교양서[2]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위의 글은 은유입니다. 앞뒤 맥락을 가져와서 읽어봅시다. 또한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데데킨트의 정의에 따르면 현재는 무리수이다. 현재는 분할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과거에도 속하지 않고 미래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순수 시간에 기초한 산술이 가능하다면 그런 산술에서는 무리수를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이고 그 대신에 유리수의 존재성을 밝히기 위해 온갖 논리를 동원하며 갖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토비아스 단치히, <과학의 언어, 수>, 221쪽) 약간 설명을 부연하자면 이건 '데데킨트 절단'이라 불리는 수학적 개념[3]을 설명한 후에, 그걸 기초로 필자가 덧붙인 글입니다. 혹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제가 이해한 바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하나의 점을 잡으면, 유리수체는 그 점보다 작거나 같은 유리수 모임 A와 그 점보다 큰 유리수 모임 B로 나눠지게 됩니다. 이렇게 점을 잡는 것이 '절단(Schnitt)'인데, 만약 이 점이 유리수라면 그 점은 A에 속하게 되고 무리수라면 그 점은 A에도 B에도 속하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만약 시간이 유리수체라면, 그리고 시간을 과거와 미래로 나눈다고 생각하면, '현재'라는 점은 유리수일까요, 무리수일까요? 네, 필자의 설명대로 과거에도 미래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수'가 됩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이건 뭔 헛소리야?"라고 생각하겠죠. 게다가 '수학자'가 쓴 '수학 교양서'에 나온 내용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라면, 아마 수학도 모르는 인간이 써놓은 헛소리라고 무지하게 욕을 했을 겁니다. (제가 저걸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가 쓴 책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면 라캉-이리가레이에 이은 새로운 동네북이 되지 않았을까 싶군요.) 헌데 이 글은 인터넷 상에서 돌림빵 당하지 않네요 -_- 왜 그럴까요? 라캉이 i에 대해 한 발언에 대해 분개하는 분들은 라캉을 얼마나 이해해보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문장의 앞뒤 문맥을 가져와서 읽어보셨는지요? (참고로 저는 안 읽어봤기에 닥치고 있습니다. -_-) 라캉이 그 부분을 은유로 썼다는 생각은 안 해보시는지요? 즉, 자신의 세계관 속에서 남성의 성기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잘 정립되어 있는 한 가지 개념을 가져왔다는 생각은 안 해보시는지요? 아, 허수 개념은 라캉이 쓴 그런 허접한 개념이 아니라고요? 그럼 제가 인용한 단치히의 글에서, 시간이 유리수체라는 건 어디 증명되어 있는 사실이랍디까? 본디 비유라는 것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닮아 있는 한 부분을 써먹기 위해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던가요? 저는 라캉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제가 안 읽어봤기 때문에 현재는 판단 보류 상태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사람이 한 어떤 발언에 대해 비판하려면 그 발언이 사용된 앞뒤 문맥을 살펴보고, 그 발언에 담겨 있는 의미를 다 파악한 후에 비판해야 옳은 것 아닙니까? 물론 라캉을 다 읽고 이해한 후에 비판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이 인터넷 상에서 i 이야기만 보고 라캉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지적 사기>만 읽거나 아예 그것조차 읽지 않고 비판하는 분들이 과반일 것 같네요. 한 문장만 보고 수학/과학도 잘 모르는 인문학자들이라고 싸잡아 욕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는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과연 건설적인 비판인지는 생각해봐야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 @ 여기다가 "나는 라캉을 읽었는데 그래도 병신이더라!"라는 쌩뚱맞은 답을 다는 분은 없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분명 라캉을 까는 사람들이 몽땅 라캉 안 읽어본 사람들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몰라 친절하게 써드리자면, 제 주장을 분쇄시키시기 위해선 인터넷 상에서 i 관련 라캉 까는 글을 전부 찾아서 그 필자 중 50% 이상이 라캉을 읽어보았음을 보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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