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과학.
나는 왜 기독교인인가.에 덧붙여, "그럼 성경과 과학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 들어와 쓴 글입니다.

--

흑 졸지에 대형 떡밥을 던진 셈이 되어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살짝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라, 새로운 주제에 대한 제 입장을 정리해보고자 이 글을 시작합니다.

예, 새로운 주제라는 건 '성경과 과학'입니다. 사실 제 원글은 이 주제에 대해 거의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묘사하는 세계와 과학에서 묘사하는 세계가 분명히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제가 불필요하게 카우프만을 인용하면서 오해를 산 것 같은데, 저는 성경의 설명과 과학의 설명이 대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둘이 양립불가능하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과학과 성경의 말씀이 충돌한다면, 나는 과학을 따를 것이다. 나는 과학자니까.'

훌륭한 말씀입니다. 저 역시 과학과 성경의 말씀이 충돌한다면 과학을 따를 것입니다. 심지어 제가 과학자가 아니더라도요.

...잉? 갑자기 뭔 소리냐!

저는 성경의 목적이 세상을 묘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목적은 (너무나 자명하게도!) 세상을 묘사하는 데 있지 않습니까? 세상을 묘사하기 위해 만든 도구와 그렇지 않은 도구가 있으면 당연히 목적에 맞는 도구를 써야죠.

성경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저는 성경의 목적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를 알려주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고 하셨을 때 (마태복음 5:39) 그것은 세상을 묘사하는 말씀이 아니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보이는 '묘사'들은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예컨대 창세기 1, 2장의 창조 이야기 같은 경우 말입니다. 저는 이 녀석들을 이해할 때 시대적 맥락과 글이 쓰여진 목적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문헌학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창세기가 쓰여진 시기는, 수많은 학설이 있지만, 어쨌든 기원전입니다. 그 시대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긴 했는데, 우선 그 자세한 기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니 그것부터 배우고 지나가자."라고 쓸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많은 목회자들이 간과하는 게 이것입니다. 당시 글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 말이죠.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이었나, 하여간 창조 기사 관련된 짧은 소설이 하나 있었는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포일은 자제하겠습니다만, 여튼 진짜로 그랬는지도 모르는 일이죠. :P

시대적 맥락 검토는 이 정도에서 그치고, '글이 쓰여진 목적'을 살펴봅시다. 이 부분에 있어선 제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지라, 신학을 전공하신 저희 대학부 목사님의 견해를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가 쓰여질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소위 '자연신'과 겁나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토착신인 바알신의 경우 '태양'을 의인화해서 만든 신이었고, 이런 식으로 동물이나 천체를 신격화해서 숭배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었던 것이죠. 모세는 창세기를 통해 동물이나 천체가 모두 '피조'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오직 창조주는 하나 뿐이라는 교훈을 주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 '삶의 지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기독교인들이 시편에 묘사된 세계를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시인의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한때는 시편조차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서 천동설을 죽자고 붙들고 있는 삽질을 뜨기도 했습니다만;;;)

그럼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경이 '인간들'에 의해 쓰여졌다면, 그거야말로 기독교가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아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수주의 개신교에서는 축자영감설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성경을 그렇게 해석하는 데에 반대합니다. 아니, 2천년 넘는 세월 동안 수없이 베껴지고 수없이 번역됐는데 성경이 어찌 100% 옳게 전승되었겠습니까? 지금 남아있는 사본들만 해도 서로 다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자승자박하는 느낌입니다 -_- 이걸로 기독교는 인간들의 종교가 되어버린 걸까요.

뒤에서부터 돌아가보겠습니다. 수많은 사본들이 남아있다고 했습니다만, 그 사본들이 100%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 그 내용은 동일하나 표현이 다르거나 일부 내용이 다를 뿐입니다. 문헌학의 방법론을 이용해 이 사본들을 연구하면 원본에 가까운 형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원본에 가까운 사본을 찾은 적이 있죠. 쿰란 사본이라고. 어느 동굴 속에서 쿰란 사본이 발견되었을 때, 그 전의 사본들만 가지고 복원한 결과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사본들만 갖고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큰 줄거리는 본디 줄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줄거리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백 보 양보해, 모세가 쓴 창세기를 그대로 우리가 본다 쳐도, 그건 인간 모세가 쓴 거 아니냐고 지적할 수 있겠죠. 게다가 <다빈치 코드>에서처럼 니케아 공의회(사실은 카르타고 공의회가 맞지만)까지 들고 나와 성경의 '정경화'에 대해 따지고 들면...

예 맞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이 부분이 무신론자들의 공격에 제일 취약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그저 '믿는' 수 밖에 없거든요. 성경의 가르침이 신이 내려준 영감(靈感)에서 나왔고, 이를 통해서 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 줍니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쉬운성경)

인용해놓고 보니, 바울 사도조차도 성경이 '사실 명제들의 합'이라는 소리는 안 하는군요. 바울 사도 역시 성경의 목적은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 주는" 데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네요.

과학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를 일러주지 않습니다. 메타윤리학에서 자연주의가 캐발린 일에 대해서 종종 언급합니다만, 과학은 세상이 어떠어떠한 모습인지 설명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를 알기 위해선 과학 외의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저에게 그것은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기독교 신앙을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어쩌면, 진리라는 것은 '세상이 이러이러하다'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한다'를 말해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by 로보스 | 2008/09/17 11:06 | |잡념|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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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키오쿠 at 2008/09/17 19:42
성경이 쓰여졌을 때의 맥락을 살피기 좋은 책으로 <함께 읽는 구/신약 성서> (한국기독교 연구소), 들꽃향린교회의 김경호 목사가 교회 성도들과 함께 쓴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9/18 09:20
키오쿠님// 고맙습니다 (_ _)
Commented by DK紅炎卿 at 2008/09/20 03:25
딴 얘기지만, 성경 원문에 가장 가까운(그러니까 직역한) 해석으로 로보스님이 접근하기 쉬운 성경으로 NSAB (New Standard American Bible)이 있습니다. 찾아보시면 도움이 될지도요.
Commented by H군 at 2008/09/20 20:31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나온 '성경의 형성사'(박창환 저)을 추천 드립니다.
제목 그대로 신,구약의 형성에 대해 잘 써진 책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9/20 23:22
홍염 군, H군님// 두 분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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