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토드스, <생리학의 아버지 파블로프>, 바다출판사.

얼마 전 김우재 박사님이 쓰신 추천 국역 과학도서와 그 의미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책이 많아서 알라딘에 가서 리스트를 뽑아보려 했더니, 아뿔싸, 절판 내지는 품절된 책이 꽤 많았다. 그래도 몇 권의 책을 건질 수 있었고, 이 책 역시 그 운좋은 책 중 하나이다. 두께가 상당히 얇고 글씨도 큼직큼직한 것이 중고딩들이 읽어도 괜찮은 책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위대한 과학자 파블로프의 삶에 대한 책이다. 파블로프가 누군지는 몰라도 파블로프의 개는 다들 알지 않나? 문제는 그놈의 '개' 때문에 위대한 과학자 파블로프가 완전 파묻혔다는 것이다. 예컨대 영문 위키피디어에서는 파블로프의 삶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Nobel prize winning Russian physiologist noted for his classical conditioning experiments with dogs(노벨상을 수상한 러시아 생리학자로, 개를 가지고 한 고전적 조건화 실험으로 유명하다.)" 파블로프는 사실 '반사'에 그리 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파블로프의 뿌리는 생리학이었고, 파블로프는 이 생리학의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고전적 조건화야 워낙 유명하니 따로 부연하지 않겠지만, 이것이 심리학 학습 이론의 기초에 있다는 것은 지적하고 넘어가자. 특히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이 계보를 이어받아 연구를 계속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파블로프 자신도 행동주의 심리학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본디 소화계를 연구하던 파블로프는 소화계의 작동이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예컨대 감정이나 의지, 성격 등의 요소가 소화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생물체를 하나의 정교한 기계로 생각했던 파블로프는 각 반응에 대한 정량적인 '조건'을 찾고자 했고, 그것을 실현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개 실험인 것이다. 책에 보면 개의 종(種)에 따라 먹이에 따라 '초기 조건'을 다르게 주고 소화 능력을 보는 부분이 있는데, 이렇게 감정이나 의지를 직접 들여다보는 대신 주어진 자극과 그에 따른 반응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것이 바로 행동주의 심리학의 철학 아니겠는가? 보통 스키너를 행동주의 심리학의 아버지라 칭하는데, 그럼 파블로프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할아버지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

책 내용 요약은 이 정도에서 그치고, 서평(書)을 늘어놓아볼까. 우선 이 책의 저자는, 상당한 파블로프 빠돌이로 보인다. 파블로프에 대해 나쁜 평을 늘어놓는 곳이 '전혀' 없다. 동물 실험을 아무렇지도 않게 수행한 것도 최대한 포장해서 칭찬하고 있고,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 실험실 사람들을 들들 볶은 부분도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덮어버렸다. 심지어 스탈린 정권에 순복한 것까지 어떻게든 좋게 말해보려고 노력하는데, 읽으면서 참 씁쓸하더라. 본디 역사라는 것이 사가(史家)의 사관에 의해 이리저리 바뀔 수 있는 것이관대, 이런 관점으로 파블로프를 바라보면 공정하게 평가하기가 힘들잖아. 종종 보이는 오타 및 오역도 이 책의 흠이다. 너무 자명한 오타가 몇 군데 눈에 띈다. 이 얇은 책에서 이 정도도 못 잡아내다니, 출판사의 자질이 의심스러운걸?

그렇다 해도 추천 받을만한 책임은 분명하다. 파블로프,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삶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천재 생리학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니 말이다. 학생 독자들을 배려해서인지 책 중간중간 읽을거리를 심어놓았고 책 여백에 '어려운 단어'에 관한 주석들을 달아주는 섬세함까지 있다. 게다가 얇다! 시간 날 때 그냥 심심풀이로 슬슬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by 로보스 | 2008/09/10 16:09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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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키오쿠 at 2008/09/10 18:48
우와+_+ 로보스님 독서에 열중이시군요! 부러워라ㅠㅠ 우재오빠랑은 고전강독회를 같이 했었지요 ㅎㅎ 잘 지내시려나?; 저도 이제 서울 올라가면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ㅋㅋ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9/11 08:47
키오쿠님// 그러지않아도 김우재 박사님 블로그 가서 보다가 포스텍 다니셨다는 얘기 듣고 키오쿠님이 떠올랐습니다 :) 두 분이 아는 사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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