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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저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기던 차에 친구가 권해준 책이다. 읽고 난 지금 보니 교양서라기보다는 '개론서'에 가까운 형태네. 여성학 혹은 페미니즘에 관한 여러 주제들을 각각의 글타래로 만들어 엮어 놓았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페미니즘의 도전>과 비교해볼 때, 아무래도 개론서다보니 훨씬 딱딱하고 비유기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면 읽어볼만 하지만, 글쎄, 여성학에 대해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좋은 책일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쓴 학자들이 그리 논리적이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컨대 책 어디선가에서 -_- 이런 주장이 나온다. "1인당 GNP가 2만 달러를 넘는 나라들에서는 성 평등권이 잘 보장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2만 달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 평등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건 뭥미... 일단 2만 달러 달성이 그렇게 위대한 목표인지도 잘 모르겠고, '상관성'과 '인과성'을 제대로 착각하고 계시잖아. 이렇게 사소하게 까일 만한 부분이 종종 있었다. 또, 젠더와 영화에 관한 글타래에서는 프로이트와 그 후예들이 자주 인용되는데, 물론 흥미롭긴 했지만, 과학에 익숙한 내 눈에는 너무 '끼워맞추기' 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 책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것 하나. "남성의" 사회에 반기를 들고 "여성의" 사회를 주장하는 내용이 종종 나오는데, 사회에서 주입한 성적 모델, 즉 '젠더'에 따른 차이를 거부하는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의 과학"이니 "여성의 윤리"니 하는 걸 들고 나오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들이 그렇게 주구장창 붙들고 있는 "개체의 차이가 집체의 차이보다 크다"는 명제는 어디에 팔아먹은건가? 그럼 '공감'과 '돌봄'을 장착하지 않은 여성은 여성이 아니란 말인가? 내 친구 중에도 당장 여자이면서 공감보다는 분석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_- 이런 식으로 여성 전체 집단을 일반화시키는 건 언제나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네들 말마따나, 개체의 차이가 집체의 차이보다 크니까. 계속 까기만 하고, 그럼 책에서 도대체 뭘 얻었느냐고? 성 평등이라는 게 정말 멀고도 험한 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각 사람이 생각하는 '성 평등'의 수준이 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흔히 여성주의자들은 섹스(sex)와 젠더(gender)를 구분해서 사용하는데, "섹스에 따른 차이는 인정하면서 젠더에 따른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게 그네들의 주장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차이와 차별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병역을 어떤 형태로도 담당하지 않는다. 이건 섹스에 따른 '보호'인가 젠더에 따른 '역차별'인가? 내가 알고 있기로도, 이 문제에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그렇다는 것은 이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이 책 안에도 다양한 입장들이 소개되고 있고, 그것이 하나로 잘 통일되어 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모든 문제를 '여성 대 남성'으로 도식화시키려는 주장도 있는 반면, '소수자'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려는 주장도 있다. 난 <페미니즘의 도전> 때문인지 후자가 옳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권리를 따지려다 장애인이나 소수 인종의 권리를 무시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감정적인 대처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오천년 동안 여자가 박해받고 살았으니 너네도 좀 당해봐라 ㄲㄲ" 류의 태도는 정말 초딩스러운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여성과 남성이 공존해나갈 길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참된 페미니즘의 길 아닐까? (너무 뻔한 결론인가 -,.- 하지만 앞서 말한 2만 달러 운운 등을 보면 한숨만 나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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