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과학, 인문학 그리고 대학>, 생각의나무.

내가 짱 존경하는 김영식 선생님의 책. 이곳저곳에 발표하신 글을 모아서 만든 책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가벼운 에세이집인 줄 알았는데, 에세이 뿐 아니라 여러가지 깊이 있는 지식도 많이 들어 있었다. 선생님의 지식은 도대체 얼마나 깊은건지... 읽을수록 존경이 흘러나온다.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다.

이곳저곳에 발표하신 글을 모아서 만든 책이다 보니, 아무래도 각 글꼭지 간의 연계성이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목차를 보고 간단하게 감상을 정리하는 식으로 서평을 쓰련다.

1부_과학
자연과학의 방법
과학과 가치-과학은 가치중립적인가
과학의 발전과 서양 학문체계의 변천

2부_과학과 인문학
역사상의 과학과 철학의 관계
동서양 전통 학문 속에서의 ‘자연과학’과 ‘인문학’
문과-이과 구분의 문제점과 폐단

3부_대학
지식의 변화와 대학의 대응
대학에서의 과학의 바람직한 위치와 역할
인문대학 신입생들과 함께 생각해 보는 인문학
미국 대학의 발전과 연구대학체제의 형성


1부에서는 '과학'에 대해 소개한다. 김영식 선생님은 서울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시고 하버드에 가셔서 물리화학으로 Ph.D.를 받으신 분이다. 선생님이 박사학위과정 중에 발표하신 논문(J. Chem. Phys. 56, 3122)은 아직도 인용될 정도로 강력하며, 심지어 Kim-Gordon theory라는 이름까지 붙었을 정도이다. 이런 분이 쓰신 '과학'이니,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나대는 사람들(예컨대 이런 책?)이 쓰는 '과학'과는 다르겠지? 여기서는 자연과학의 방법론과 윤리학, 그리고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한다.

2부로 들어오면 이제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관계를 논한다. 김영식 선생님은 물리화학 Ph.D.를 받으신 후에 프린스턴으로 가셔서 역사학 Ph.D.를 받으셨기에,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관계를 논하기에 매우 적당한 위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각 절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여기서는 과학과 인문학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두 학문은 이미 오래 전에 '두 문화'로 갈라졌고, 이 현상은 문-이과 구분을 도입한 일본(<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도 언급되듯.)과 한국에서 더욱 극심하다. 하지만 과연 두 학문이 서로 으르렁대고 적대해야 하는가? 두 학문이 공조할 때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가치가, 두 학문의 대치로 인해 전부 사라져버린다는 느낌이다.

3부에서는 우리나라 20대의 70% 가까이[1]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는 대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것보다는 대학들에 '변신'을 주문하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지식의 성격이 크게 변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대학은 그 변화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에 매여 근대 과학의 태동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한 중세 대학들과 같다. 시대에 맞춰 '변신'했던 미국 대학들처럼, 우리의 대학들 역시 적절한 변신이 필요할 것이다.

읽는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넓은 지식과 깊은 생각이 너무도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과학, 인문학, 대학 중 하나에라도 관련되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과학학자가 쓴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분명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읽다가 인상 깊었던 구절을 하나 발췌해둔다. '자연주의적 윤리학'에 대한 간단한 반박. :)

(전략) 첫 번째 예는 '어떤 물질 A가 질병 B의 병원균에 대해 생물체가 저항하는 능력을 증가시킨다'는 과학적 지식이 '질병 B에 걸릴 위험성에 대비해 물질 A를 주사한다'는 결정을 해준다는 생각이다. 구체적 예로 뇌염에 걸릴 위험성이 있는 어린아이에게 뇌염백신 주사를 하는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이것은 과학적 지식으로부터 당연히 거의 자동적으로 얻게 되는 결론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같은 결정은 '질병 B에 걸리지 않도록 막는 일은 좋은 일이다'라는 가정을 깔고 있다. '물질 A를 주사한다'는 결정은 '물질 A가 질병 B의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을 증가시킨다'는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바로 '질병 B에 걸리지 않도록 막는 일은 좋은 일이다'라는 이 가정을 바탕으로 해서 내려진 것이다. 이 가정은 물론 당연한 것으로 누구나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과학적 지식은 아니다. 결국 '질병 B에 걸리지 않도록 물질 A를 주사한다'는 결정은 과학적 지식에 의한 결정이 아니고 인간의 가치판단에 따른 선택에 의한 것이다. (후략)
by 로보스 | 2008/09/02 17:07 | |감상| | 트랙백(1) | 핑백(2) | 덧글(7)
트랙백 주소 : http://lovos.egloos.com/tb/204383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kranzek's me.. at 2009/08/28 04:30

제목 : 크랑제크의 생각
[종교 전쟁:장대익][지적사기-소칼논쟁][과학은 얼마나:홍성욱][과학, 인문학 그리고 대학][도정일최재천의 대담][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우리 화학계의 선구자-안동혁박사님][나는 과학자이다-이태규박사님][대학교수 되는 법][Genious:파인만]...more

Linked at 世界はネオハピ! : 독서 리스트. at 2008/09/02 17:15

... 한국성폭력상담소, 섹슈얼리티 강의, 두번째, 동녘. 한스 피터 마르틴 외, 세계화의 덫, 영림카디널. 비평 김영식, 과학, 인문학 그리고 대학, 생각의나무. (08/24-08/25) [감상문]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 최종 업데이트 : 2008. 09. 02. ... more

Linked at 世界はネオハピ! : 김영식, .. at 2009/01/12 17:48

... 짱 존경하는 김영식 선생님의 책이다. 일전에 쓴 &lt;과학, 인문학 그리고 대학&gt; 발간 후 두 달 만에 다시 출간하신 책이라고. 이 책 역시 이곳저곳에 기고/발표하신 글들을 모아서 내신 책인데, &lt;과학, 인문학 그리고 대학&gt;에 비 ... more

Commented by 키오쿠 at 2008/09/02 17:15
우와, 재밌겠네요 >_< 이런 거 자꾸 소개해주시면 제 지갑은 더욱더 얇아집니다 ;ㅁ; 홍성욱 교수님이 쓰신 과학 에세이 책이랑 같이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9/02 17:18
키오쿠님// 재미있습니다 ^^ 보니까 김영식 선생님께서는 최근에 과학사 책을 하나 또 내신 것 같더라고요. 현재 군침을 흘리는 중이랍니다 흐흐. 홍성욱 선생님 책도 아직 안 읽은 상태로 책꽂이에 꽂혀 있는데 ㅠ 언제 다 읽나요;
Commented by 새벽안개 at 2008/09/02 20:29
백신개발에서 가치판단 보다 중요한 것.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임상실험을 거쳐, 판매 했을때 시장규모가 되겠는가 하는 판단일 것입니다.
Commented by 긁적 at 2008/09/02 21:01
아놔 진짜 나도 책 좀 읽어서 밀리지 않아야되는데 큰일이네 ㅠ.ㅠ...
너. 무. 바. 빠....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9/02 21:48
새벽안개님// 현실적으로는 새벽안개님 말씀이 옳습니다 ^^ 제가 이 글에서 추신으로 붙인 것은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메타윤리학'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다루는 이야기거든요.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주제라 붙인 건데 문맥 없이 갖다붙여서 책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군요 :)

긁적 형님// 형님은 이미 괴수라서... (_ _)
Commented by 이상혁 at 2009/01/19 01:33
저는 인문학자인 도정일씨와 과학도 최재전씨가 함께 쓴 '대담'이라는 책도 무척 재밌게 봤습니다. 두 분 지식의 깊이도 상당하더군요... ^^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1/19 08:44
이상혁님// 아, 그 책 저도 읽어봤어요! 제 지식이 지금보다도 얕았던 시절에 읽은 책이라 별로 기억에 남는 건 없네요 ; 어딘가에 독후감이 있을텐데...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즐겁게 살아야죠. :)
by 로보스
Calendar
메모장
카테고리
|소개|
|일기|
|감상|
|과학|
|잡념|
* 홈페이지 ('02-'03)
* 네이버 블로그 ('05-'06)
최근 등록된 덧글
검색하다 찾아와서 한참..
by omg at 04:31
비밀글// 뭐 이런 걸 비..
by 로보스 at 11/19
Bloodstone님// 명시되..
by 로보스 at 11/18
C++은 만져 본 적이 ..
by Bloodstone at 11/18
긁적 형// 저 같이 도덕적..
by 로보스 at 11/17
도덕교과서 즐겨읽는....
by 긁적 at 11/17
마법사의꿈님// 감사합니..
by 로보스 at 11/17
간단한 scheme 버젼 ..
by 마법사의꿈 at 11/17
lylm// 흐흐 전화한다더..
by 로보스 at 11/16
유키누나// 그건 너무 대..
by 로보스 at 11/16
Wookie님// 아 그렇군요 ..
by 로보스 at 11/16
음..난 루저니 위너니 보..
by Yuki37 at 11/14
좋으네 :) 아가씨가 계..
by lylm at 11/14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Wh..
by Wookie at 11/13
긁적 형// 아뇨 조원들...
by 로보스 at 11/13
긁적 형// 아... 뭐 그..
by 로보스 at 11/13
아가씨가 볼 책? ㅋㅋㅋ
by 긁적 at 11/13
그.. 그냥..;; 그런 코드..
by 긁적 at 11/13
긁적 형// ???
by 로보스 at 11/13
괜찮아. 컴파일 하지도,..
by 긁적 at 11/13
최근 등록된 트랙백
Scheme으로 루저 인증..
by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루져 테스트 [asp.net]
by 緣
루저코드 - 파스칼 버전
by Divine Power
루저코드 - C#
by 평범과 순수한 はるかぜ..
나 자랑하려고-
by Time to be brave,25
이글루 파인더
rss

skin by zodiac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