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슈이치, 마루야마 마사오,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

곳곳에서 추천받은 책 ^^ 아마 YH 선배님의 독후감에서 처음 접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 이후로도 책 많이 읽으시는 분들이 곳곳에서 추천해주셔서 이렇게 손에 잡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우리 학교 권장도서 100선에 들어있군!)

이 책은 가토 슈이치와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두 노학자(老學者)의 대담을 수록한 책이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주제는 일본의 근대를 불러일으킨 '번역 붐'에 대한 것이었지만, 종종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기도 했다. 책으로 만들어질 것을 그리 의식하지 않은 듯 대화가 상당히 편안하게 진행된다. :)

그런데 문제는... 내가 너무 무식하다는 것이었다 orz 주제가 주제이다보니 19세기 말의 일본사가 많이 언급되는데 도무지 아는 게 있어야지... 거기에 주자학과 세계사까지 등장하면서 정신줄이 서서히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_-; 그래서 전부 이해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모르는 부분은 설렁설렁 읽으면서 건너뛰었다. 뭐 주제만 알아들으면 되지.

결국 일본은 번역에 대한 '준비'가 갖춰져 있었고, 번역이 시작될 무렵 온 나라가 하나 되어(!) 번역에 매달렸다(일본 정부에서 번역을 맡긴 서적 중에 심지어 '자유주의' 서적까지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 국방부라면 있을 수 없는 일 :P)는 이야기다. 그래서 현재와 같이 한참 앞선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음, 국민들은 좀 시궁창인 것 같지만, 학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에 비해 한참 앞서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노벨상 수 뭐 이런 걸 떠나서, 그냥 학문 수준이 높다는 느낌.

관심 있었던 '자연과학 서적의 번역'은 매우 간단하게만 다뤄져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주로 법학이나 정치학, 사회학 도서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 어쨌든 보면서 느낀 것이, 일본은 근대화를 이룩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서적을 자국어로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강력한 토대가 되어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는 거?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대목이었다. 박상익 교수의 <번역은 반역인가>와 연계시켜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 싶다.
by 로보스 | 2008/09/01 11:54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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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의 시대, 한길사. 에릭 홉스봄, 자본의 시대, 한길사. 에릭 홉스봄, 제국의 시대, 한길사. 가토 슈이치, 마루야마 마사오, 번역과 일본의 근대, 이산. (08/25-08/27) [감상문] 님 웨일즈, 김산, 아리랑, 동녘. 제프 일리, The Left 1848-2000, 뿌리와이파리. 김희영, 이야기 중국사, 청아출판사. 주경철, 대항해시대, 서울대학교출판부. ... more

Commented by wolga at 2008/09/01 13:03
일본은 자국어로 된 대학 교과서를 갖추고 있다죠. 세계에서 번역본이 가장 빨리 나오는 나라라고 하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Commented by 키오쿠 at 2008/09/01 13:24
저도 이 책 읽고 감명받았다죠^^ (어서 리뷰 써야 하는데..) 제가 가장 감명받은 부분은, '외국어에 대한 인식'과 '번역어에 대한 치열한 고찰'이었습니다. 우리가 늘 일본 번역에 대해 욕하고(특히 각종 전문용어들이 그렇죠) 무시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였기에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뜻이 통하고 사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http://kioku.springnote.com/pages/1522770 여기엔 제가 마음에 드는 문구들을 적어 놓았습니다. 로보스님이 인상깊게 느낀 구절이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요 ^_^
Commented by 페스츄리 at 2008/10/03 21:57
저는 특히 민법이라는 개념과 문민이라는 개념을 정립해가는 과정을 보고서 일본의 서양학습사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알거 같더군요.^^
Commented by WizardKing at 2008/09/01 13:46
wolga님 말씀대로, 일본 서적 시장의 번역 능력이란 (...) 엄청나다고 들었습니다. -_- 우리 나라는 언제쯤이면 황금가지가 완역될지.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9/01 14:50
wolga님// 정말 부럽습니다. 국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원서를 고집하는 우리나라 교수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답답하네요.

키오쿠님// 그렇죠. 우리나라에서 누가 그렇게 고민하겠습니까 T_T 단어 하나의 의미를 고민하기는커녕 비문이 난무하는 번역을 만들어내는 나라인데요. 저는 전체적으로 다 인상깊었... (퍽퍽)

WizardKing님// 자연과학 분야의 고전들조차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게 많더군요. 휴우.
Commented by 페스츄리 at 2008/10/03 21:56
저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의 이 책을 읽어보고 감격했죠. 전 이 책을 다 읽고 제 친구에게 줘버렸습니다. 내용자체는 아주 간단하죠. 일본은 "번역주의"를 채택했다. 그 기원은 에도시대의 적소래와 난학도에게서 유래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유럽사유와 기술의 번역은 명치시대에 시작되었다. 그 명치시대에 모리 아리노리나 이등박문같은 원어주의와 바바 다쯔이로 대변되는 "번역주의"가 대립했고 당시 일본의 사정상 "번역주의"를 채택했는데 그런 번역주의는 유럽의 사상과 학문을 일본어(특히 한자어)로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좀더 치밀한 유럽사상사의 심층적 이해를 얻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것이 지금의 일본의 번역문화가 가져온 큰 이익이다. 즉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대로 하자면 "일신이생"(일본의 봉건제와 유럽의 근대적 정치체제)를 동시에 살았던 명치시대의 지식인들과 정부는 이런 번역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유럽을 깊이 있게 이해했다. 이것이 일본의 힘이다라는 거죠.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정치사상사연구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또는 "일본의 사상"같은 책들도 참 주옥같은 성찰을 담고 있는 일본 정치학의 고전의 반열에 올라간 책들이 아닌가합니다. 물론 가라타니 고진같은 일본의 신세대 학자들은 마루야마의 근대주의를 비판하지만, 그들이 근대의 초극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마루야마 마사오(환산진남)의 입장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마루야마는 여전히 기염을 토할 학자가 아닌가합니다. 물론 제 입장에서는 진부합니다.^^
Commented by 페스츄리 at 2008/10/03 21:59
실제로 중간자이론의 창시자인 "유카와 히데키"가 1946년인가..경도대학 물리학부에서 일본어로 실제로 중간자이론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학자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자, 독일어로 번역해서 볼프강 파울리에게 보냈고 독일잡지에 실려서 아주 유명해졌다는 것을 보면 일본도 "원서주의"나 "사대주의"에서 아주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10/06 08:47
페스츄리님// 제가 일본근대사를 많이 몰라서 '간단한 내용'임에도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 페스츄리님의 설명을 들으니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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