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박권일, <88만원 세대>, 레디앙.

그 유명한 책! 아쉽게도 국방부 선정 '이 시대의 양서 리스트'에는 들지 못했지만 ^^ 못지 않게 영향력 있는 책이다. 심지어 보수 쪽 인사들도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니 말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전에 어느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88만원 세대'라는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인용하시더라. 내가 주로 접하는 설교가 보수주의 목사님들의 설교임을 감안할 때, 이 용어가 이념을 막론하고 보편화되었다는 뜻이겠지. 여튼 이 유명한 책을 이제서야 잡았다. (그리고 한 달 후에야 독후감을 쓴다 -_-;)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세대'의 틀로 세상을 설명한다는 것이었다. 흔히 자유주의는 개인 층위에서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저자는 경제적 자유주의가 많은 경우 '세대 간' 경쟁을 초래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저자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세대는 현재의 20대, 즉 '88만원 세대'와 현재의 10대, 즉 '배틀 로열[sic] 세대'이다. 어디 세대를 무 자르듯이 쉽게 툭툭 자를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넘어가자.

우리나라의 20대는 유독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 10대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았으니 -- 뭐 마찬가지로 암담하기는 하다만 -- 일단 논외로 치자.) 토익 점수가 아무리 높고 석박사 학위가 있어도 취업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이전 세대는 그런 취업난을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우리나라처럼 극심한 취업난은 없다. 왜 하필 이 시대에, 우리나라 20대만 이런 취업난을 겪는 걸까?

바로 '세대 간' 경쟁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장년 세대가 부를 독식하는 경향이 크다. 이 장년 세대와 경쟁해야 하는 20대가 얻을 수 있는 부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럼 왜 유독 이 시대에만 그런 걸까? 이 시대에 기업의 '인력 관리 체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까지는 한 번 기업에 들어가면 거의 정년까지 보장이 되었고, 연차가 얼마나 찼느냐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었다. 이러던 기업 문화가 IMF를 겪으면서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재미있는 것은 정년보장 시대에 입사한 장년 세대는 이미 회사 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혀놨기 때문에 유리한 반면 갓 입사한 20대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다는 것이다. 20대가 합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장년 세대가 자신들의 부를 일부 내놓아야 할텐데 '환경의 변화'로 그것이 쉽지 않아졌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다양한 예를 제시하면서 이 이론을 설파한다.

그럼 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처럼 연공서열제를 채택했던 일본의 경우, 90년대 불황을 맞으면서 일부 '경쟁 체제'를 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경쟁 체제를 택한 회사보다 연공서열제를 택한 회사가 더 오래 살아남았고, 그 결과 20대에게도 '기다리면 대우 받는' 환경이 유지될 수 있었다. 니트족이니 뭐니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보다는 사정이 나은 셈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에는 애초에 '경쟁 체제'를 도입했지만, 그에 따른 사회보장적 지원 또한 도입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끝없는 경쟁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는 않았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설명은 20대의 보수화와 관련된 설명이었다. 386 세대가 진보 세력을 지지했던 것과는 달리, 최근 대선과 총선에서 보여지듯 현 20대는 보수 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저자는 콩고물 이론(내가 붙인 이름이다 -_-;)으로 이를 설명한다. 현 60대에 해당하는 전후(戰後) 세대와 50대에 해당하는 산업화 세대는 보수적인 경향을 띤다. 그리고 40대에서 30대 후반에 해당하는 386 세대는 진보적인 경향을 띤다. 20대의 입장에서 볼 때, 산업화 세대는 자신들의 부모 세대다. 부모는 자식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존재이므로 부모로부터 '콩고물'을 얻어먹기 위해서는 부모의 정치적 성향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386 세대는 끽해야 삼촌 뻘 되는 세대다. 그들로부터 무슨 콩고물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이 설명은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자식의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부모의 지원이 달라진다는 것도 현실과 괴리되어 있는 '모델'일 뿐인 것 같고, '지원을 받기 위해' 정치적 스탠스를 결정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100% 옳은 설명은 아니라고 본다. 차라리 나에게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더 와닿는다. 현 20대는 대부분 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거의 겪어보지 못했고, 김영삼 정권 때도 연령상 그리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즉 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될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다음이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의 모든 실책이 민주화 정권에 있다는 나이브한 생각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보수 정권을 지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저자의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프랑스 68 항쟁을 예로 들어 자신의 대안을 설명한다. 프랑스 68 항쟁의 주역은 '고등학생'들이었다고 한다. 물론 일반 시민들도 참여하고 대학생들도 참여했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전달했던 건 고등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학 입시로 인한 자신들의 고통을 '짱돌'과 '바리케이트'로 표현했고, 결국 그 주장이 받아들여져 프랑스는 거의 모든 대학을 평준화하게 된다.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의 10대는 어떠한가? 그들이 '짱돌'과 '바리케이트'를 들고 나올 수 있겠는가? 형태는 약간 다르지만, 10대와 마찬가지로 세대 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살고 있는 우리의 20대는 어떠한가? 사회를 변혁하지 않고는 현재와 같은 불합리한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매우 감명 깊게 읽은 책이지만, 어쩌면 나는 현재처럼 무한 경쟁체제로 들어가는 것을 선호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학벌'이라는 강력한 출발조건에서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옳은 길일까? 그렇다고 내가 '짱돌'과 '바리케이트'를 가지고 나가자니 용기가 없고... 그저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by 로보스 | 2008/08/12 15:17 | |감상| | 트랙백 | 핑백(2)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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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기대했던 내가 바보 같은 거였을까? 물론 중간중간 흥미로운 시각들도 있었지만, &lt;나쁜 사마리아인들&gt;이나 &lt;88만원 세대&gt; 수준으로 새로운 관점은 없었다. 솔직히 이 점은 살짝 실망이었다. 뭐 책에 대한 기대야 사람마다 다 다른 법이니, 내가 너무 과한 기대를 가진 거라고 ... more

Commented by WizardKing at 2008/08/12 23:17
저도 학벌 덕을 좀 봐서 무난한 중산층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인데..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68 혁명 같은 일이 터지면 지지할 생각은 있군요. ㅎㅎㅎ

아무튼 전 보수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정치의 모든 실책이 민주화 정권에 있다는 나이브한 생각" 때문이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많은 생각을 가지고 지지층을 선택했을 리가 없고요.

요즘 들어 많이 개선된 측면은 있습니다만,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도 보수당의 집권에 일조했다고 봅니다. 북한이라고 하는 군국주의적 가짜 공산국가의 존재 때문에, 그 특수성 때문에, 공산당이 뭐하는 사람들인지 설명하기도 참 난감한 게 이 나라니까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8/13 09:46
WizardKing님// '여론'이라는 게 무섭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일종의 '유행'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어쩌면, 이 나라 국민들은 MB 5년을 시달리고도 다시 보수당에게 표를 던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암습해옵니다.
Commented by WizardKing at 2008/08/13 23:22
...현실이 유감스럽게도 진보 정당에서 후보자를 내는 일이 생긴다면 해 볼만한 불평이네요. ㅠㅠ............... 하아...
Commented by Wookie at 2008/08/13 23:33
요새 들어서 진짜 한국이란 나라에 기대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경쟁은 중요하지만 서로의 살을 깎아 먹는 무한 경쟁은 좋지 않지요 -_-;
뭐 기득권 분들은 경쟁에서 논외니 상관 없으시겠지만요 ㅋㅋㅋㅋㅋ

저희 학교가 학벌은 괜찮은 편 아닌가요? 친척중에서 자꾸 저보고 니 학벌 가지고 나와봤자 아무 것도 못한다 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헷갈립니다 -_-;;
Commented by Asuka_불의넋 at 2008/08/14 01:05
저도 학벌에 시달리고 있는 입장인 데다가 소위 '돈 되는' 쪽의 전공을 할 생각도 없어서 친척들 볼 때마다 약간씩 난감하더군요. 고급품 지르는 취미는 별로 없어서 식사만 대충 때우면 88만원으로 못 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에휴, 돌 들고 바리케이트를 치는 전략보다는 '사람을 발라주려는' 욕구를 자극해서 결국 학벌에 목매달게 만드는 사회 풍조도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8/14 08:54
WizardKing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Wookie님// 갈수록 경쟁을 부추기고 찬양하는 목소리만 들리니 이것 참 답답합니다. 장하준 교수가 지적했듯이 사욕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그걸 '진리'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답답하고요. 휴우.

아무리 지방공대라지만 국내에서 취업하기에는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 저희 과 선배들을 봐도 그렇고요. 최소한, 88만원으로 살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친척 분께선 눈이 매우 높으신가 보군요.

Asuka님// 그렇네요. 프랑스의 경우 파업이나 데모에 대해 상당히 관대하다는데, 우리나라는 4.19, 5.18, 6월 항쟁 등을 전부 겪어봤으면서 아직도 시위에 부정적이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전 촛불시위 '증오'하는 사람들 보면 공포가 몰려온답니다 ;ㅁ;
Commented by WizardKing at 2008/08/14 18:32
집회를 질병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분들은... 사실 고통을 못 느끼는 몸처럼 위험한 것도 없을 텐데요. 이럴 때 싸우지 않으면 정말 나중에 뭔 일이 날지...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8/14 19:52
WizardKing님// 휴우. 하지만 다들 목소리만 높지 실천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더 서글프네요. 이런 전대미문의 독재 정권 앞에서도 침묵이 덕이라니...
Commented by Asuka_불의넋 at 2008/08/15 02:39
정작 귀찮아서 촛불집회 한 번밖에 안 나가 본 저로서는 할 말이 아닙니다만, 사실 나라 걱정 나름대로는 하고 사는 사람으로서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평생 88만원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진화생물학/생태학 전공 희망자로서 더욱 뭔가 해야 하지 싶기...는 합니다만, 당장 할 일들이 급하니 그것도 못 하겠군요. 학생들을 '바쁘게' 만드는 게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음모론마저 떠오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8/16 00:51
Asuka님// 하긴, 바쁜 학생들이 짱돌을 들고 나서기는 힘들겠죠. 그 '바쁨'을 떨쳐내고 분연히 일어나야 할텐데요.
Commented by dd at 2008/08/22 02:47
책도 열심히 읽으셨는데 마지막에는 다시 세대내경쟁으로 돌아가시는 실수를 보이시는군요. 나는 5%안에 들어있으니까 나머지는 88만원 세대로 남아있는 것이 더 유리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자가 거듭거듭*100 말했다시피, 한 세대의 불행은 결국 사회 전체를 벼랑으로 몰고가는 길임을 잊으셨군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8/22 08:45
dd님// 일침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독후감 어디에서 그런 생각을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마지막 문단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설사 이대로 남아있는 것이 나에게 유리하다 할지라도 옳지 않은 일이므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서 투쟁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하다.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저는 솔직하게 제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그걸 그렇게 삐딱하게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 비판하시는 분들은 꼭 익명으로 하시더군요. 아쉽습니다. 제가 뭐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쫓아가서 깽판 부릴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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