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A. 헨릭슨, <훈련으로 되는 제자>, 네비게이토.

우리는 교회 안팎에서 기독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여러 제자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위대한 믿음과 놀라운 능력에 감탄한다. 폴리갑의 순교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 흘리기도 했고, 뮐러의 고아원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보살피심에 감동하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정녕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세대에도 여전히 역사하신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분명 우리 시대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 분이 나에게 역사하실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역사하실 거라 생각하고 있었고, 하나님을 위해 인생을 내던질 사람은 내가 아니어도 많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나님이 택하시는 사람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울, 베드로, 성 어거스틴, 칼뱅, 무디, ……. 나는 나 같은 범인은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들 가운데 맥동하고 있다고 믿었고, 심지어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고 나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렇게 영적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이 다가와 강력히 선포했다. Disciples Are Made - Not Born, 제자들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서 계속 외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처음부터 제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마음이 있는 자는 누구나 훈련받아 제자가 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위안과 도전을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제자가 되기 위해 누구나 궁금해 할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이 책이 시작된다. 책에서는 디모데후서 2장 2절을 인용해 ‘충성된 사람’이라는 답을 내고 충성된 사람의 아홉 가지 특징을 제시하는데, 솔직히 아홉 가지 특징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부담감이 점점 증폭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제자가 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군. 뭐 이렇게 요구사항이 많아?’ 나는 아직 주님을 위해 내 삶을 통째로 내놓을 수 없을 것 같고, 아직 육체를 신뢰하고 있으며, 아직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은데, 이런 내가 과연 제자로 훈련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다음 장으로 이동했다. “주님으로서의 예수님.” ‘주님’으로 번역한 영어 단어는 분명 Lord일 것이다.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 바로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이었다. ‘왜 내가 내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그 분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가?’ 앞 장에서 잔뜩 받은 부담감과 더불어 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이 장에 있었다. 답은 간단했다. 예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알고 계시고, 내가 나 자신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내어드릴 때에만이 바로 그 좋은 것이 나에게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교회에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탓인지 하나님께 선뜻 내 자신을 내어드리기는 어렵다. 어쩌면 좋을까.

이윽고 제자가 되려는 사람이 포기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교회에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대로, 무엇보다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것도 100%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예수님께서 나를 사용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유부단한 나에게, 이렇게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포기하라는 도전이 주어졌다. 부를 때마다 많이 울었던 찬양 한 소절이 떠올랐다.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 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 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내 마음을 두드리던 책은 잠시 방향을 돌려 이사야서를 펴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딱딱한 설교조로 시작된 이야기는 마침내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아끼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어떻게 헌신하셨는지에 이른다. 얼마 전 감동 받으며 읽었던 <신의 열애>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사랑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인간을 사랑하사 몸까지 내어주신 예수님……. 이 책에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이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길은 제자가 되는 길이라는 결론을 낸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제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인가…….

계속해서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다음 장으로 넘기니, 다행히도 괴로움(?)이 잠시 그치고 제자 훈련의 실질적 방법에 대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는 마치 책의 독자가 훈련생(trainee)이 아니라 훈련자(trainer)인 것처럼 서술되어 있어 약간 의아했지만, 훈련자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들을 기억하고 훈련에 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계속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제자를 만드는 작업이 전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가 우물 사건을 본으로 삼아 전도의 원칙을 몇 가지 제시한다. 사실 난 전도에 관해서는 레베카 피펏의 <빛으로 소금으로>에서 제시하는 원칙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네비게이토식 접근법에는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진리에 대한 확신은 좋지만 너무 강압적인 건 아닐까? 물론 책에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 뜻 안에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실제 내가 대학에서 겪어보았던 네비게이토 사람들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이후 그 사람들 중 제자 후보생들을 모으는 작업에 대해 징모(徵募)라는 어려운 단어를 쓰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단순한 징모 뿐 아니라 양육에 대한 몇 가지 원칙도 제시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해야 내가 훈련시키는 사람이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까? 정답은 사람의 감정과 방법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질보다 양을 보기 쉽고, 사람은 사랑을 잊기 쉬우며, 사람은 위에 올라 다스리기 쉽다. 이러한 습성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뜻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훈련시켜야 한다.

이어 네 개 장에 걸쳐 한 명의 그리스도인을 훈련시키는 과정에 대해 상세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된다. 갓 태어난 결신자가 제자 되기를 결심할 때까지 양육하는 과정과 제자 훈련에 필요한 기본적 삶을 잡아주는 과정이 제시되고, 훈련 기간 내내 가져야 하는 확신과 전망, 그리고 훈련 기간 중에 발견되어야 하는 은사와 부르심을 이야기한다. 특히 나에게 필요했던 이야기는 두 번째 장, ‘기본적인 삶의 형성’에서 나왔다. 내가 훈련을 받는 동안 기본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책에서는 수레바퀴 예화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고 기도와 말씀 상고, 증거와 교제로 행동하는 삶을 제시한다. 기도도 하지 않고 증거도 하지 않는 현재의 내 삶을 돌아볼 때, 내가 현재 영적으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우선 이 기본적인 삶을 복구하는 것이 바로 제자가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

마지막 두 장에서는 제자 훈련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 자기와 같은 제자들을 만들어나가야 하고,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이렇게 열매 맺는 삶이야말로 참된 제자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어느 수준 이상 이른 제자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지금은 비록 메마른 나뭇가지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나지만 언젠가는 주님의 제자로서 이렇게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책을 읽어가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특히 초반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선포하는 부분에서는 큰 갈등이 있었다. 솔직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마음이 확정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나는 내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다. 내 삶을 주님 손에 오롯이 얹어드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나의 욕심이 속히 무너져 주님의 제자로서 첫 발을 뗄 수 있길 기도한다.
by 로보스 | 2008/08/01 00:17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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