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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랜만에 완소 이론물리 책을 잡았다. 물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과학 이론 쪽에 늘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이런 책들이 큰 즐거움이다. (Y모씨가 들으면 너도 nerd야! 라고 외칠 듯...) 어디서 이 책을 추천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다. 이 블로그에 오는 분들 정도면 다들 상식으로 가지고 계시겠지만 ㅋㅋ 20세기 물리학에는 두 개의 커다란 기둥이 세워졌다. 하나가 상대성이론이요, 또 하나가 양자역학이다. 상대성이론은 질량이 크거나 속력이 빠른 물체에 대해 적용되는 이론이고, 양자역학은 크기가 작은 물체에 대해 적용되는 이론이다. 각각은 세상을 훌륭하게 설명해냈고, 현재는 이 두 이론 모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좋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남아있다. '크기가 작으면서 질량이 큰 물체'에 대해서는 어떤 이론을 적용해야 할까? 양자 중력(quantum gravity) 이론은 바로 이런 물체에 대한 이론이다. 좁은 공간 안에 엄청난 질량이 낑겨있는 블랙홀이라든지, 빅뱅 근처의 우주를 묘사하기 위해서는 이 이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양자 중력을 다룰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으로 블랙홀 열역학, 고리 양자 중력, 끈 이론을 제시한다. 끈 이론을 제외한 이야기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는데, 블랙홀 열역학은 읽다보니 호킹이 관심 갖고 있는 '바로 그' 주제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이론이 결국은 한 가지 이론으로 통합되어 진정한 '양자 중력' 이론을 이룰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몇 가지 흥미로운 개념들이 등장한다. 우선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구조주의'가 있다. (사실 '구조주의'라는 말 자체는 나오지 않지만.)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동떨어진 각 입자가 아니라, 각 입자의 '관계'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면서 인상적인 비유를 든다. "단어를 모두 빼버린 문장에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입자를 모두 빼버린 우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흔히 시공간이 떡하니 놓여있고 그 위에 입자가 굴러다닌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런 관점이 그릇된 관점이라고 지적한다. 시공간이라는 것은 결국 입자들의 관계로부터 나온다는 말일까나. 이 관점과 예시가 너무도 '구조주의 철학'과 닮아서 큰 인상을 받았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간의 양자화' 개념이다. 이 책에 따르면, 플랑크 길이는 공간의 양자적 단위다. 즉 플랑크 단위보다 작은 길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자화된 공간은 일종의 격자(lattice)를 형성하게 되고, 이 격자 위에서 '끈'이나 '고리'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이야기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스킵. 다만 이미 19세기에 볼츠만은 엔트로피를 통계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기 위해 공간의 양자화를 도입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넘어가자. 물론 당시 볼츠만이 가정했던 공간의 크기는 플랑크 길이에 비해 무지막지하게 크지만, 당시 거부되었던 가설이 1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홀로그래피 원리'도 상당히 흥미롭다. 우리가 우주의 특정 존재를 관측할 때, 그 존재 자체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주의 특정 공간에 스크린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고, 그 뒤의 별들은 전부 그 스크린에 맺힌 '상'이라고 생각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아닌가. 이게 왜 인상적이냐 하면, 결국 이 얘기는 인식론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과연 '사물 그 자체'인가? 이론물리학의 선봉장인 우주론에서조차 '아닐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부분 아니겠는가! 끝으로, 저자는 '신비주의자'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인류 원리를 도입하지 않고도 우주의 '조정된' 상수값을 설명할 방법을 모색한다. 저자가 도입한 방법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진화론이다! 아 진짜 이 부분 읽으면서 안구에 폭포수가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ㅠ_ㅠ 진짜 미친듯...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아 진짜 천재의 벽은 높고도 높구나 ㅠ_ㅠ 우주에 생기는 수많은 블랙홀들은 '아기 우주'를 만들 수 있는 씨앗이 된다. 저자는 이 점에 착안해 '블랙홀을 많이 만들 수 있는 우주'가 '자손을 많이 낳을 수 있고', 결국 '우주 간의 생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블랙홀을 많이 만들 수 있는 요소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우주의 '상수값'들로 결정된다. '어미 우주'로부터 만들어지는 '아기 우주'는 어미 우주의 상수값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수값을 갖게 되므로, 카우프먼이 이야기하는 '점진적 변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다만 이 가설의 한 가지 문제점이라면 '적자 생존'이 되는 '선택압'이 존재하느냐는 점 같은데, 일단 난 진화론을 우주론에 갖다붙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하고 말테다. 이렇게 감동의 쓰나미 속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나 같이 물리학에 무지한 자도 이렇게 감동했는데, 물리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얼마나 놀라실까. 이 책은 <엘러건트 유니버스>처럼 그리 두껍지도 않고, <시간의 역사>처럼 뭥미스럽지도 않다. 내용이 그리 쉬운 편은 아니지만, 현재 이론물리학의 첨단 이슈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살짝 구경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넘어가면서 읽어도 되니까 말이다. (내가 그랬다 -_-;) @ 이 책을 보고 나니 사이언스북스의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가 급땡긴다 ㅠ 위대하신 앳킨스 옹이 쓰신 책도 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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