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강유원의 고전 강의: 공산당 선언>, 뿌리와이파리.

나는 빨갱이다.

공산주의자임을 공공연히 천명했던 빨갱이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 Einstein)을 존경하고, 대학교 생활 내내 <공산당 선언>과 <왜 사회주의인가>를 책꽂이에 꽂아놓고 사는 빨갱이 룸메이트와 붙어다녔으며, 급기야는 직접 마르크시즘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찾아보고 마침내 <공산당 선언>에까지 손댄, 정말 악질 극성 빨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 80년대를 흠모하는 이명박 씨 날 잡아가두소.

농담은 그만두고, 이리저리 공부를 하다보면 철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에 폭넓게 영향미친 '마르크시즘(Marxism: 난 '맑시즘'이 싫어요)'을 안 마주칠래야 안 마주칠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하루하루 새로운 책들을 읽으면서 마르크시즘에 대한 이해가 다각도로 발전하는 것을 느낀다. 철학에서 바라보는 관점,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관점, 사회학에서 바라보는 관점, ... 당연히 처음 <공산당 선언>을 만났을 때와 지금의 이해도가 달라야겠지.

이 책은 <공산당 선언> 1장을 강의 형식으로 조곤조곤 잘 풀어설명한 책이다. 1장'만' 다루다보니,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라는 유명한 말은 결국 등장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만, 1장만으로도 마르크시즘을 맛보기에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저자가 실제로 강의한 강의 노트 등을 재구성해서 만든 책이 아닐까 싶은데, 얇은 책임에도 마르크스의 사상을 잘 요약해서 담았다. 마르크스 입문서로 적당해 보인다.

뭐, 마르크시즘이야 워낙 유명하니 굳이 책 내용을 일일히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읽으면서 든 생각이나 정리해서 쓰련다. 마르크스는 '계급'을 중심으로 사회를 파악했는데, 공산주의의 전 단계, 자본주의에서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두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부르주아는 프롤레타리아의 '잉여 노동'을 착취해 이윤을 남기고, 프롤레타리아는 이 부르주아에게 착취당하면서 살아간다. 이 착취-피착취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고, 이는 프롤레타리아의 수를 늘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마침내 참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들이 일어나게 되고, 이 '혁명'을 통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자유를 누리는 세상이 도래하게 된다. 지난번 독후감에서는 이 '자유를 누리는 세상'이 실질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면, 오늘은 계급에 대한 마르크스적 이해에 의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마르크스의 시대에는 아마 아니었겠지만, 최근 기업들의 모습을 볼 때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무 자르듯이 명쾌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IT 벤처 기업의 경우 사장이 직접 연구 및 개발이라는 '노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설령 연구 및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관리'라는 '노동'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장이 '부르주아'일 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중간 관리자'의 존재이다. 이들은 실질적인 '노동'을 하는 시간보다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독려하는 시간이 더 많다. 그렇다면 이들은 부르주아인가, 아니면 프롤레타리아인가? (이 책에서는 '부장'도 프롤레타리아의 범주에 넣는데, 엄밀히 말해 잉여노동을 착취당하는 게 아닌데 왜 프롤레타리아로 봐야하는가?)

내 생각은 이렇다. 마르크스의 시대에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구분이 엄격했다. (내지는 엄격해 보였다.) 하지만 자본주의 역시 변하는 법. 이제는 그런 구분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 사원과 대기업 사장을 놓고 보면 어느 정도 '계급차'가 있어보인다. 하지만 그 중간에 수많은 '계급'들이 존재하고, 이들은 단속(斷續)적인 간극 대신 연속적이고 미세한 변화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르크스의 이분법을 도입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 생각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난 세상을 '분류'하고 쪼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지라, 마르크스의 이론 역시 하나의 '설명'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 설명이 꽤나 강력하고 유효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결국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바와 같다. 계급,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한 형태로, 딱딱 끊어져 고착화되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마르크시즘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일 뿐이다.
by 로보스 | 2008/05/27 17:45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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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Wookie at 2008/05/28 01:39
저는 현정사를 들으면서 Marxism보다는 Neo-Marxism이나 해방신학에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요새 ara보시나요? 알바들이 침투했거나 진짜 생각 없는 사람이던가...둘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_-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5/28 09:13
Wookie님// 현정사를 들으셨군요 :D 저는 단순 암기 과목이라는 소문에 겁먹고 -_-; 현정사를 듣지는 않았습니다만, 막상 관심이 생기고 나니 과목이라도 들어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사실 잘 몰라요 ( _ _);;

ara는 학교 다닐 때부터 재미가 없어서 -ㅠ- 잘 안 봤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나보죠?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5/28 09:29
덕분에 오랜만에 ara 구경 좀 했습니다. Infoworld 말씀하신 거죠? 그저 안습일 뿐입니다...
Commented by 와이에이치 at 2008/05/28 09:53
인포월드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죠...
인터넷에서 달리는 어이없는 코멘트들을 다는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사람임을 알려주는 곳이랄까요~
Marxism(... 자꾸 맑시즘이라고 쓰게 되는군요.)도 '이론으로서' 접해보고는 싶은데 자본주의에 관해 빌려온 책조차 아직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ㅠㅠ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5/28 11:11
YH선배님// 그래서 전 아라에 아예 발을 잘 안 들여놓는다죠 ㅋㅋ 선배님 정도면 마르크시즘도 쉽게 공부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Commented by jade1427 at 2008/05/28 15:54
http://armarius.net/
여기, 강유원 씨 홈페이지.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5/28 15:57
jade1427// ㅇㅇ 저자 소개에 있어서 봤음. 왜? 가서 다퉈보라고? ㅎㅎ
Commented by jade1427 at 2008/05/29 11:06
응? 아니 그냥 아주 가끔 들어가는데 그냥 한 번 볼만한 듯 하여 ㅎㅎ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5/29 14:20
jade1427// 응 고마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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