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쓰 E. 스타노비치, <심리학의 오해>, 혜안.

대학에서 참 좋은 교양과목들을 많이 들었지만, 그 중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과목을 꼽으라면 단연 임종태 교수님의 <과학기술과 역사>와 김정훈 교수님의 <심리학 개론>을 꼽을 수 있겠다. 둘 다 내가 전혀 모르던 분야에 눈을 뜨게 해준 고마운 과목들이다. 과학학 얘기는 그간 많이 했으니, 오늘은 심리학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심리학 개론 첫 시간. 김정훈 교수님께서는 수업에 들어오자마자 '심리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화두를 던지셨다. "여러분은 대개 심리학이라고 하면 프로이트를 떠올리죠? 하지만 프로이트는 주류 심리학자가 아닙니다. 사실 심리학자들은 프로이트에 별 관심이 없어요." 이어 심리학이 얼마나 과학적인지에 대한 설명을 이으셨다. 2004년 여름 내내 나를 매료시켰던 심리학과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들은 흔히 심리학은 문과, 자연과학은 이과라는 식으로 구분하곤 한다. 그리고 심리학에 대해 프로이트, 융 등을 떠올리며 '무의식을 다루는 학문'으로 생각한다. 아니면 '내가 짝사랑하는 그/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를 알아보기 위한 관심법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2004년 여름 내가 배웠던 심리학은 이런 것들과 거리가 멀었다. 이 책 역시 이런 '심리학의 오해'들을 타파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따라서 심리학의 개별적인 연구결과를 소개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심리학의 연구방법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의 논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은 과학이다. (1)
과학은 x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2)
심리학은 x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3)


여기서 기술하고 있는 '과학의 특성'들은 과학철학적으로 말하자면 포퍼의 반증주의(falsificationism)에 기반을 두고 있고, 주로 물리학과 의학에서 사용되는 방법론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보수적인 과학자들은 대개 동의할만한 설명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와중에 사이비과학을 무진장 까대는데, 만약 보수적인 과학자 중에 '물리과학만이 과학이다'라는 극단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불편할 것 같다. 비유하자면 나와 친구들이 폐쇄적 친목 모임을 만들었는데,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아 이 모임 진짜 짱임. 이러이러한 점에서 정말 훌륭함. 너네랑 싸우고 있는 그 놈 진짜 나쁜 놈임." 이러면서 우리 모임에 속한 척 하는 거랄까 ㅋㅋㅋ 사실 나도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면에서 나도 아직 보수적인 걸까?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쉽게 '낚이는' 것들에 대한 설명도 제시된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열거해보겠다. 엄밀한 통계조사를 거쳐서 나온 결과와 친구 한 사람의 발언 중 사람들이 무게를 두는 쪽은 대개 친구 한 사람의 발언이라는 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 중에서 '인상이 강하게 남은' 사건만이 기억되고, 따라서 시간이 흐른 후 남는 기억들은 편향될 수 밖에 없다는 점, 조건부 확률(conditional probability)을 계산할 때 기저확률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 정도? 이 모든 것은 '과학적'인 연구를 진행하는데 필수적인 것들이지만, 사람들은 대개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자신의 심리학'을 만들어나간다. (이 얘기를 하다보니 심개 시간에 배웠던 또다른 예가 떠오른다. 사람들은 p → q가 참이면 ~p → ~q도 참이라고 착각한다. 이걸 가르치시면서 김정훈 교수님께서는 우리의 심리가 그리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하셨다.)

또 하나 흥미로운 주제는 심리학 연구의 '집단성'이다. 이 책 후반부에서는 심리학 연구는 항상 개인의 심리를 설명하기보다는 전반적인 인간 심리를 통계적으로 설명하는 쪽을 택한다는 설명이 등장한다. 따라서 '항상' 성립하는 연구결과는 나오기 힘들고, 대부분의 경우 확률적인 예측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대개 개별적인 시행에서는 확률이 무시된다고 생각한다며 강하게 비판한다. 물론 개별적인 시행이 일어난 후에는 그 사건이 일어났거나 안 일어났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일테니까 더이상 '확률'로 얘기할 수 없겠지만, 시행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확률'이 유효하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 담배 피우면 폐암 발병률이 높아진다지? 에이, 난 아닐걸." 그 사람이 죽고 난 후에는 그 사람이 폐암에 걸렸든지 안 걸렸든지 둘 중 하나겠지만, 사는 동안에는 담배로 인해 폐암 발병률이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안 좋은 사건은 본인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전에 읽은 책이 하나 떠올랐다. (내가 킹왕짱 좋아하는) 굴드는 <풀하우스>에서 자신이 난치병에 걸렸던 사례를 소개하면서, 당시 그 병의 사망률이 80%(맞나?)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굴드는 '나는 살아난 20%에 들을 거야!'라는 희망적인 마음을 갖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고, 결국 병마를 이기고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자, 여기서 "스타노비치 씨, 그럼 과학자 굴드 씨의 태도는 뭔가요?"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 내가 대신 답해보련다. 내가 보기에는 스타노비치나 굴드나 '통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둘은 각 저작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확률이 작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스타노비치의 예에서는 확률이 낮은 쪽이 '안 좋은 사건'인 것이고, 굴드의 예에서는 확률이 낮은 쪽이 '살아나는 사건'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둘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다.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하기 아싸!)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의 어조는 상당히 강경한데, 그 강경한 어조가 '우연'을 다루는 장에 들어가면 더욱 강해진다. 여기서 저자는 '착각상관'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착각상관'이란 두 사건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둘이 '상관'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뭐, 여기까진 좋다. 그런데 저자는 조금 더 심하게 오버한다. 저자는 '주식시장'이 완전히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헉!) 따라서 주가를 예측한다는 것은 착각상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급기야 주가를 예측한다는 사람들을 '원숭이'에 비유하기 시작한다. "올해 주식 시장이 좋아진다"와 "나빠진다"라는 두 개의 버튼이 있다고 해보자. 원숭이들을 불러 놓고 두 버튼을 아무거나 누르게 한다. 그럼 통계적으로 50%의 원숭이는 '좋아진다'를, 50%의 원숭이는 '나빠진다'를 누를 것이다. 다음 해가 되어 다시 누르게 한다. 또 그 다음 해에 다시 누른다. 여기까지 '모든 예측이 들어맞은' 원숭이는 얼마? 그래. 12.5%다. 저자는 '주식시장 변동을 성공적으로 예측한 사람들'이 이런 '운 좋은 원숭이들'에 불과하다고 조롱한다. 헉. 너무 강한 것 아닐까? 읽으면서 식겁했다. 아무리 심리학 킹왕짱을 외치는 책이라지만 이런 소리를 했다가 경제/경영/수학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다굴당하면 어쩌려고.

게다가 나는 저자가 '우연'을 다루는 태도가 매우 편협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상관성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은 전부 서로 독립이다'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렇다면 결정론(숨은 변수 이론 등)을 주장하던 아인슈타인 같은 물리학자들은 전부 멍청이들이게? 역사적으로 과학은 상관성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 사이에서 수많은 상관성들을 찾아왔다. 저자는 변인통제를 설명하면서 종속변인과 독립인 변인은 통제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처음 실험을 설계할 때 '종속변인과 독립'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저자는 "학습능력은 그 사람의 생일과 독립이니까 실험 집단을 만들 때 생일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등의 당연한 예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데, 내 생각에 과학에서 그렇게 확실히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변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심리학으로 들어가면 더욱 심할 것이고. 그런데도 이렇게 강경한 주장을 하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오. 오늘따라 글이 많이 길다. 슬슬 정리해야겠다. 이 책은 심리학의 연구방법론과 그 원리를 설명하는 책으로, '심리학은 자연과학이다'라는 강한 신조를 밑에 깔고 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종종 자연과학 전공자보다 인접학문(공학, 경제학, 철학 등?) 전공자들이 더 과학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에 대한 강한 신뢰감, 거기에 더해 자신의 생각에 대한 굳건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는 책이다. 나는 저자의 과학관에 그리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불편했는데, 아마 과학을 철저히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좀 도움이 될 것 같다. '보수적인 실험심리학자가 보는 심리학'을 소개하기에도 적당해보인다. 주의할 점은 책이 조금 두껍고 어조가 딱딱해서 쉬이 지루해질 수 있다는 점 정도? ㅎㅎ
by 로보스 | 2008/05/22 17:01 | |감상| | 트랙백 | 핑백(3)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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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주상, 이휘소 평전, 럭스미디어. [감상문] 스티븐 존슨, 이머전스, 김영사. 해리 콜린스, 트레버 핀치, 골렘, 새물결. 심리학 키이쓰 E. 스타노비치, 심리학의 오해, 혜안. [감상문] 기호학 움베르트 에코, 기호와 현대 예술, 열린책들. [감상문] 언어학 존 라이언스, 촘스키, 시공사. [감상문] 인류학 한국문화인류학회,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일조각.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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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 '해로운 건물'은 하나쯤 있을테니까. 무슨 소리인가? 어느 지역의 발병률과 그 지역의 특정 건물 사이의 관계가 우유적이라는 얘기 아닌가! 비슷한 예로 &lt;심리학의 오해&gt;에 나오는 좀 더 과격한 예가 있다. 원숭이 1000마리를 모아놓고 두 개의 버튼이 달린 단말기를 하나씩 나눠준다. 버튼에는 [↑]와 [↓]이 표시되어 ... more

Linked at 世界はネオハピ! : 도모노 노.. at 2009/09/02 16:22

... 깊은 감명을 준 과목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임종태 교수님의 &lt;과학기술과 역사&gt;이고 또 하나는 김정훈 교수님의 &lt;심리학 개론&gt;이다. 전에도 썼지만[1], 이 과목에서 나는 '심리학'을 하나의 과학으로 배웠고, '과학적인' 심리학 실험들을 보면서 매력을 느꼈다. 헌데 그 중에 "인간은 비합리적이다."라는 걸 밝힌 ... more

Commented by WizardKing at 2008/05/22 18:01
재미있네요. 나쓰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에도 말씀하신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비행기 사고 위험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나는 절대로 비행기 사고 같은 건 안 겪을 거야~ 전쟁 나도 나는 살겠지~ 하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정작 저는 반대지만)
Commented by kimdan at 2008/05/22 22:15
카이스트를 비록 1학기도 다니지 못했지만(유학을 가게 되어서), 1학기 동안 들었던 김정훈 교수님의 <인지과학 개론>도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목 중에 하나입니다. 정말 좋은 교수님인것 같아요. ㅎㅎ
Commented by Asuka_불의넋 at 2008/05/22 22:16
저도 저런 보수적인 실험심리학, 혹은 진화심리학;을 두둔하는 편인지라, 저런 류의 책들을 보면 꽤나 반가워하는 편입니다. 과학도가 보는 과학과 인문학도가 보는 과학, 그리고 '인문학적 지식이 두터운 사람'이 보는 과학은 상당히 다른 것 같더군요. 역사학과 사회학을 제외한 모든 인문학에 대해서 저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입장으로, 모든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저로서는 꽤나 공감할만한 책이네요. 읽어봐야겠습니다 :)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5/23 13:20
WizardKing님// 그렇군요 ㅎㅎ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저 책에 있던 이야기가 하나 떠오르네요. 실제로 비행기 사고 확률보다 자동차 사고 확률이 더 큼에도, 공항까지 배웅나온 사람이 비행기 타고 가는 친구보고 "조심해라-"고 얘기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죠 ㅎㅎ

kimdan님// 김정훈 교수님 열정적이고 참 좋은 분이죠 :) 학점을 안 준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참 안타깝습니다.

Asuka님// 과격하시네요 ^^; 모든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생물학이라... 그런 자세를 갖고 있던 과학자들이 인문학자들과 대판 싸웠던 걸 생각해보면 조금 우려가 되기도 하고요.
Commented by WizardKing at 2008/05/24 12:28
오쇼 라즈니쉬는, 자기가 기차를 타러 갈 때 자기 할머니가 기차 사고가 날까봐 우려하시는 걸 보고 90% 이상의 사람은 자기 침대에서 죽는데, 그렇다면 침대가 가장 위험한 거 아닌가요? 라고 했다더군요.. (정말 그 통계가 맞는지는 모르지만.)

..근데 '침대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니까 침대가 가장 위험한 건 아니겠죠?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5/26 09:57
WizardKing님// ㅎㅎㅎ 그러게요. 과학도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라즈니쉬는 '인과성'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그런데 뭐 깊이 들어가면 인과성도 '강한 상관성'에 불과하다는 철학자들도 있고 -ㅠ-
Commented by 김삿갓 at 2009/04/15 15:51
생물심리를 전공하는 저에게 심리학은 완전 하드한 자연과학으로 다가오네요...심리학은 소프트사이언스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부분부분은 또 하드사이언스를 지향하고..이게 참 험난한 길이죠..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9/04/15 16:18
김삿갓님// 제가 심리학을 깊이 공부해보지 않아서 잘못된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요새 드는 생각은 그냥 심리학이 말 그대로 과학의 한 분과라는 건데요, 그걸 나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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