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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못 찾겠는데, 아마 긁적 형님 블로그에서 이 책을 제일 처음 발견했을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긁적 형님께선 이 책이 별로 재미없다고 평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소쉬르 하악하악 비트겐슈타인 하악하악 하는 내가 이렇게 매력적인 제목을 가진 책을 그냥 넘길 수 있겠는가! 뭐 제목에서부터 이미 드러나지만, 소쉬르의 언어학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비교하며 각각의 '언어' 이론을 소개하는 책이다. 입문서라고보기에는 조금 수준이 있어, 그래도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을 접해본 사람이 읽기에 적당해보인다. 기본적으로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활동이 하나의 '규칙'을 따르면서 진행되는 활동이라는데 동의한다. 소쉬르는 이를 '구조'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고, 비트겐슈타인은 그 유명한 '게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이를 표현한다. 이 책 전반부에서는 이 두 개념이 매우 유사한 개념임을 줄기차게 설명하고 있다. 소쉬르가 '구조주의'의 아버지인 걸 생각해보면 비트겐슈타인도 구조주의자였던 걸까? 언어와 '게임'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길래 비트겐슈타인은 '게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일까? 이 책에서는 깊이있게 다루지 않지만 논의를 위해 한 번 살펴보고 넘어가자. 우선 '게임'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고, 이를 일일히 설명할 수 없더라도 플레이어는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예컨대 '공기놀이'를 보자. 초등학교 3학년생들이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곁에 다가가, "이 놀이의 규칙을 나에게 말로 설명해주겠니?"라고 묻는다. 과연 애들이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애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게임을 즐긴다. 내가 한국어 문법을 정연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것은 한 가지 형태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공기놀이'도 게임이라고 부르지만, '체스'도 게임이라 부르고, '마비노기'도 게임이라 부른다. '말뚝박기'도 게임이며 '지뢰찾기'도 게임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는가? 공통점이라면 '즐기는 것' 정도 아니겠는가? 참여 인원수도, 사용하는 도구도, 규칙도 완전히 다른 이 일단의 활동들을 우리는 '게임'이라 부른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 스와힐리어의 규칙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을 몽땅 '언어'라 부른다. 다음으로 게임의 '규칙'은 '구조' 속에서 결정된다. 우리가 체스를 둘 때, 나이트의 모양이 반드시 기사를 닮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훈련소에 갇혀서 체스를 만들어 둬야 하는 상황'이라 하자 -_-;; 이 때 나이트를 기사 모양으로 만들 수 없어서 "나이트"라고 쓴 종이쪼가리를 가지고 그 말로 쓴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게 '구조주의'에서 상당히 중요한 점인데, 하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와 '구분'되기만 하면 그 자체의 모습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언어'에서는 다음과 같이 발현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한국어 화자가 어느 순간 '하늘'이라는 단어를 '꿻쯹'이라고 바꿔 쓰게 되었다고 하자.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까? 전혀 생기지 않는다. 왜? 단어가 생겨먹은 모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단어가 점하고 있는 위치가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전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늘'이 '하늘-땅', '하늘-우주' 등의 관계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에 그대로 '꿻쯹'이 들어갔을 뿐이니까, 화자들의 머리 속에 있는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게임 비유'가 무너지면서, 여기까지 이구동성으로 떠들던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이 이후부터 견해차이를 보이기 시작한다. '게임'이 '언어'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비유지만, '게임'과 '언어' 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게임'은 설사 말로 할 수 없더라도 '정해진 규칙'이 있는 반면, '언어'는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가 내 동생과 '체스'를 두자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체스에 정해진 모든 규칙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 그대로 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언어'는 조금 다르다. 물론 내가 내 동생과 대화할 때 '한국어'로 대화한다는 걸 '즉각' 알 수 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 있는 '한국어 문법'과 내 동생 머리 속에 있는 '한국어 문법'이 같은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만약 다르다면, 우리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가? 소쉬르는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정의의 일치'에서 찾는다. 내 머리 속과 타인의 머리 속에 있는 '단어의 정의'가 같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정의'라는 녀석이 상당히 모호한데, 여기까지가 소쉬르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쉬르는 철학자가 아니니까. 그리고 이게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림과 비슷하다. 내가 '빨강'이라고 말하면 청자의 머리 속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동일한 '빨강'이 떠오를 것이라는. 반면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확인할 수 없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에 반대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판단의 일치'에서 찾는다. '이러이러한 말에 대해 이러이러한 행동을 한다'는 판단을 화자와 청자가 공유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한 예는 건축공와 조수의 예이다. 이쪽에 석판 더미, 통나무 더미, 벽돌 더미가 있고 옆에 조수가 서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건축공이 집을 짓는다. 건축공이 소리를 지른다. "석판!" 조수는 석판 더미로 가서 석판을 하나 집어 건축공에게 던진다. 자, 여기서 건축공과 조수가 설령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더라도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건축공은 "석판!"이라는 단어를 '돌로 된 널찍한 판 하나를 나에게 가져와라.'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조수는 "석판!"이라는 단어를 '이쪽 첫번째 더미에 쌓여있는 물건 중 하나를 건축공에게 던져라.'라는 의미로 이해한다고 하자. 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건축공이 예상한 '행동'과 조수가 보이는 '행동'이 같다면,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게 비트겐슈타인의 해결책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설명은, 왠지 행동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심리학에서 '자극'과 '반응'으로 설명하는 학설 말이지. 결국 소쉬르는 인류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내부 구조'를 인정한 셈이고, 비트겐슈타인은 '그딴 게 어딨냐'인 것 같다. 소쉬르의 저 생각은 이후 촘스키의 '보편 문법'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나 역시 이쪽이 맞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동일하게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선험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학습만으로 그런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면 외국어를 잘 익히는 방법은 열라 두들겨 맞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T_T 읽으면서 꽤나 즐거웠다- 만, 역시나 번역이 좀 짜증난다. game을 '놀이'로 번역한 건 그렇다치고, player가 '놀이꾼', play가 '놀이하다'인 건 좀 심하지 않은가. 자꾸 읽다가 턱턱 걸리더라. 그냥 '게임', '플레이어', '게임하다'로 번역하면 안 되나. 나에게는 이 녀석들이 더 익숙한데 말이다. 뭐 사실 어색한 단어 번역보다는 지나치게 직역 투의 문투가 문제지만. 덕분에 읽는데 조금 오래 걸린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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