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제이 굴드, <판다의 엄지>, 세종서적.

우와아아아아아앙!!! 나 아무래도 굴드빠 된 듯 ㅠ_ㅠ 진짜 굴드님 완전 사랑해요♡ -- 굴드님의 대표작 <판다의 엄지>를 읽고 난 소감을 한 줄로 줄이자면 이렇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저자를 지시할 때 '굴드님'이라는 표현을 쓰고 존칭을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판다의 엄지>는 바로 이 굴드님의 대표작으로, 흔히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진화론 교양서로 많이 권하는 책이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처럼 한 가지 주제를 붙들고 열심히 두들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 책 자체가 굴드님이 기고하신 글들을 모아 만든 책이고, 이 글들 각각이 진화론을 설파하기 위한 글들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글들은 현대 과학 내지는 현대 생물학을, 더 좁게는 현대 고생물학을 소개하기 위한 글들이고, 정말 다양한 주제들이 소개된다. 물론 현대생물학이 진화론을 기반에 두고 있고, 굴드님은 도킨스에 맞서 싸우는 단속평형설 진영의 선봉장이시기 때문에 진화론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진화론 입문서'라는 시각은 약간 삐딱한 것 같다는 게 내 느낌이다. 그냥 생물학 교양서라고 말하는 쪽이 더 낫지 않으려나.

<풀하우스><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굴드님은 참 넓고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알라딘의 저자 소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굴드는 전형적인 68세대로, 그의 사상에는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게 깔려있다. 70년대 중반 케임브리지 보스턴을 중심으로 급진적인 성향의 과학자들이 모여 결성한 전국조직 '민중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people)'에 참여했으며, 작고할 때까지 진보적인 생물학자들의 비영리단체인 '책임 있는 유전학을 위한 회의(Council for Responsible Genetics)'의 자문위원직을 유지했다.

그는 과학 자체를 사회로부터 분리된 객관적이고 균일한 것으로 보지 않았고,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과학을 가장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했다.
(출처: 알라딘 저자 소개)

여기서 68세대라는 건 60년대에 탄생한 진보적인 세대를 의미하는 거고,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과학을 이해했다'는 표현은 과학사회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의미로 보인다.

아하. 내가 굴드님의 글에서 편안함과 친숙함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도킨스나 와인버그는 '보수적인' 과학자다. 그들은 과학 그 자체가 진리라고 믿으며, 과학을 통해 가치를 판단한다. 하지만 굴드님은 과학이 사회에 의해서 영향받는 존재라고 인식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굴드님께 과학은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굴드님은 진화적 관점에서도 '우연'의 요소를 강조하시기 때문에 더욱 과학을 덧없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 이 입장은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저작에 더 분명하게 나타나므로 그 책을 참조하시길.

워낙 책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책 내용을 소개하는 건 힘들 것 같고, 다만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하나 짚어보려고 한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도킨스는 자신의 책 <이기적 유전자> 끝 부분에서 인류의 '문화'를 밈(meme)이라는, '유전자스러운' 존재로 설명한다. 반면 굴드님께서는 이 책에서 인류의 문화를 '라마르크적 진화'의 한 예로 보고 계신다. 요것 참 흥미롭다.

라마르크는 19세기에 활동한 진화학자로, 생물이 살아가면서 특정 기관을 발달시키면 그 특성이 그대로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용불용설'을 주장한 사람이다. 이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의해 부정되었고, 20세기 들어 유전자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현재는 완전 폐기된 학설이다. 굴드님께서는 라마르크적 진화가 가능하려면 세포의 변화나 기관의 변화가 다시 세포 내 염색체를 바꿔놓는 기작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게 발견된 적이 없으므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 말씀하신다. 종종 역전사(reverse transcription)나 바이러스 감염(viral infection) 등에 의한 DNA의 변화를 라마르크적 진화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과정에서 세포의 변화나 기관의 변화가 유전자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문화는 어떻게 '라마르크적 진화'인가? 여러 문화가 동시에 발전한다. 그 중 '유용한' 문화는 그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들에 의해 계속 스스로를 진화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저서 <총, 균, 쇠>에서 강조한 '총 문화'를 살펴보자. 처음 총이 등장했을 때에 비해 지금의 총 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총의 변화가 바로 그 총의 전달능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윈적 진화 관점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총이 등장하고 그들이 이리저리 싸우면서 승률이 높은 총이 살아남아야 하는데, 실제로 총의 전파과정에서는 그리 치열하게 싸우지 않더라도 훌륭한 총이 있으면 바로 그 녀석을 베껴가게 된다. 개체 수준의 변화가 유전적 능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예이다. (아 쓰면서 나도 헷갈리네 -_-;; 내가 맞게 이해한 건가.)

하긴, 문화에 대해서는 카우프만도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혼돈과 질서 경계에 위치한 계(system)로 이해했다. 어쨌든 문화라는 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진화'라고 볼 수 있으니까 진화론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는 것 같다.

정리한다. 이 책 <판다의 엄지>는 진화론을 기반에 둔 생물학 교양서로, 굴드님의 풍부하고도 친절한 설명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이다. 생물학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이 권장도서가 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지금 절판되어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지만 -_-;;
by 로보스 | 2008/04/14 09:40 | |감상|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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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앍 굴드님 ㅠㅠ 진짜 굴드님 책은 보면 볼수록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이 책은 &lt;판다의 엄지&gt;처럼 에세이를 모아 만든 책인데, 아 진짜 글 하나하나가 주옥 같다 ㅠㅠ 에세이집이다보니 통일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글 하나하나의 완결성이 ... more

Commented by Asuka_불의넋 at 2008/04/14 18:00
아무래도 (전공상...) '정통적인' 생물학에 더 경도되어 있는 저로서는 굴드의 관점이 불편하긴 합니다만, 굴드 역시 나름대로 스스로의 의견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있죠. (순전히 개인적이고 종교적인 이유로) 과학과 신비주의를 다른 영역(실제적 영역과 심리적 영역..일까요)으로 분류하는 굴드식의 사고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4/14 20:09
Asuka님// 과학과 신비주의를 다른 영역으로 분류하는 사고는 이미 초천재 비트겐슈타인이 시도한 바 있죠. 저는 저 둘의 싸움이 너무 지긋지긋한 터라, 차라리 둘을 분리해서 상호존중해주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철학의 문제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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