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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면 '민족'의 이름이 곳곳에 휘날리는 걸 알 수 있다. '민족 정론지' <조선일보>에서부터 <한겨레>까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부터 시작해 "조선민족제일주의"까지, 북과 남이 이데올로기를 넘어 '민족'의 이름 앞에서 하나가 된 느낌이다. 그런데, 과연 이 '민족'이 그렇게도 소중한 것인가? 고심하는 나에게 이 책의 제목,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민족주의를 마구 까대고 욕하는 비평류의 책이 아니다. 알라딘에 보니 역사비평으로 분류되어 있던데 사실 책에서 역사비평이 차지하는 부분도 그리 많지 않다. 도리어 이 책은 전문사학자의 연구결과를 모아놓은 책에 가깝다. 처음 제목만 봤을 때는 진중권 씨의 정치비평처럼 시원하게(?) 민족주의의 허구성을 마구 파헤쳐 줄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이 빗나간 셈이다. 그렇다 해서 이 책에 실망한 건 아니다. 이 책에서 속시원한 욕지거리 대신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편협한 욕지거리 뭉치 대신 내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지식들을 얻은 게 더 다행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저자가 쓴 여러 논문들을 합쳐놓은 형태이다. 그러다보니 글과 글 사이의 유기적 관계가 많이 드러나지 않는 어려움이 있었다. 저자의 분류를 따르자면 이 책은 크게 네 덩어리로 쪼개진다. 민족주의 전반에 대한 이야기,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 이야기, 동유럽 국가의 민족 운동사, 그리고 '에필로그'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저자의 에세이 모음.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왠지 세번째 덩어리가 이 책의 정점이 아닌가 싶다. 동유럽 국가의 민족 운동사를 이해하기 위해 앞의 두 덩어리가 필요한 거니까. 우선 우리는 왜 '근대'에 와서야 민족주의가 대두하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사회 표면으로 부상한 시기를 프랑스 대혁명 시기로 보고 있는데, 그 전의 계급제 사회에서는 하위 계급과 상위 계급의 민족적 동질감보다 계급적 이질감이 더 커서 '민족의 이름으로 하나 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자국 평민들보다 타국 귀족들과 더 가까웠고, 평민들은 자국이든 타국이든 자신들에게 더 관대한 귀족들을 더 좋아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대혁명 시기에 제 3계급들이 혁명을 주도하면서 농민을 비롯한 평민 계급을 포섭하기 위해 '민족'의 이름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평민들은 그 캐치프라이즈에 설득되었고, 계급제 사회가 무너지면서 이 민족주의는 급속히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 이 책에서는 줄창 '맑스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내가 알기로 우리 학교 이 모 교수님도 이 표현을 쓰신다고 알고 있는데, 왜 이 표현을 그리들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Marx의 발음에 '맑스'가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볼 때 이건 '어륀쥐'만큼 어이없는 표현이다. 일단 우리말로 '맑스'라고 쓰면 자음 끝소리 규칙에 의해 /막스/라고 읽어야 한다. 그럼 Max인가 Marx인가? 아, 뭐 백 보 양보해서 ㄺ 발음을 한다 치자. 그렇다 해도 '맑스'는 2음절이고 Marx는 1음절이다. '스'는 어쩔건데? '마ᇌ'라고 쓸까? '마르크스'가 '맑스'보다 낫다는 건 아니다. 다만 표준 표기가 '마르크스'이고 대부분의 국민이 Marx를 '마르크스'로 알고 있으면 존중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자 그런 관계로 나는 마르크스주의라 쓰겠다. -_- 이제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엥겔스, 마르크스, 로자 룩셈부르크 등 유명한 이론가들은 과연 민족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흥미롭게도,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민족주의를 거부하다가 어느 시점 이후로 받아들인다. 룩셈부르크는 계속 민족주의를 거부했고. 왜 그랬을까?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마르크스 이론을 약간 알아야 한다. 마르크스 이론에 따르면, 농업 기반의 봉건주의 사회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자본주의 사회로 전이된다. (가장 쉬운 설명으로는 기술 발달로 인해 자본 집약적 산업이 토지 집약적 산업보다 훨씬 고수익을 내게 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겠다.) 그러면서 귀족-평민 계급제가 사라지고 자본가-노동자 계급제가 등장하게 된다. 여기서 자본가는 노동자의 '잉여 노동'을 착취해 수익을 남기게 되고, '잉여 노동'이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공장을 확장한다. 노동자들은 점점 모이게 되고, 그들이 '현실에 대해 눈을 뜨면' 더이상 잉여 노동 착취를 용납할 수 없게 된다. 그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키게 되고 자본주의 사회는 공산주의 사회로 전이된다. (분명 틀린 부분이 엄청 많을텐데 찾아보기 귀찮다 -,.- 대충 이렇다더라 정도로만 알아두자;;;) 초기 엥겔스-마르크스, 그리고 룩셈부르크가 민족주의를 반대한 이유는 간단하다. 민족주의는 '민족'이라는 경계 안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를 하나로 묶는다. 자본가를 적으로 돌려야 하는 노동자들이 자본가와 한 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늦어지게 된다. 그러니 민족주의는 나쁜 아이다. 그렇다면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회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민족주의의 한 가지 측면을 알았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스탈린 논쟁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전세계 '해방'은 두 가지 방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 각국의 노동자가 자기 나라의 자본가들을 내쫓아버리고 '해방'된 다음에 각국을 하나의 프롤레타리아 연맹으로 통합하는 방법과, 노동자들이 나라를 따지지 않고 하나로 연대해 동시에 전세계의 자본가들을 내쫓아버리는 방법이 있다.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첫번째 방법을 이용하는데 민족주의가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단 민족주의를 통해 한 나라의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은 후 그 힘으로 자본가들을 쫓아낸다. 괜찮지 않은가? 자, 이제 동유럽의 민족운동사를 살펴볼 차례가 되었다. 동유럽의 민족운동은 매우 혼란스럽게 전개되었다고 하는데, 위에서 이야기한 모든 요소가 다 섞여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초반에는 어땠나 살펴보자. 동유럽은 산업이 그리 발달하지 못해 부르주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초반의 민족운동은 유행을 받아들인(?) 귀족들에 의해 진행되었고, 이들의 민족운동은 계급적 이질감이 가득한 평민들의 공감을 사기 힘들었다. 이들은 종종 민족운동을 진행하는 자국 귀족들보다 세금을 덜 받는(!) 이웃나라 귀족 편에 붙기도 했다고 하니까. 그러다가 마르크스주의가 전유럽을 휩쓸고, 러시아가 공산화되어 버린다. (뭐 다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러시아가 공산화된 건 꽤 '깨는' 일이었다. 러시아도 산업이 별로 발달하지 못해 자본주의가 나타나지 못했으니까. 봉건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바로 전이된 케이스랄까.) 동유럽 국가들에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슬슬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이들은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진영으로 갈라져 치열하게 싸운다. 민족주의는 악이라는 쪽과 민족주의는 선이라는 쪽이다. 이들의 치열한 싸움이 3장 전체에 걸쳐 잘 묘사되고 있다. (룩셈부르크 자신이 폴란드 사람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 논쟁에 뛰어들었다가 배패했다고 함 T_T) 이와 같이, 이 책에서는 저자의 주장을 강하게 표출한다기보다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 양쪽에 다 무지했던 내가 이 정도 글을 썼다는 걸 보면 이 책이 춈 짱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책을 읽고 내가 이해한대로 정리해두었으니 혹 관심이 가시는 분은 책을 찾아보시길. 내 이해가 완전 틀려먹었을 수도 있으니 orz 아 참, 책 곳곳에 숨어있는 저자의 뽀대나는 사진도 이 책의 매력 포인트. ㅋㅋㅋ @ 하아하아... 주여 제가 이 긴 글을 썼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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