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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뭐랄까, 지적 자극이 상당히 강한 책이랄까. '진화'라는 생물학의 핵심 주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한편, 수학, 논리학, 이론전산학, 물리학, 화학, 경제학, 사회학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M.D.를 받은 후 이론생물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저자의 경력만큼이나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의 핵심 단어는 '혼돈의 가장자리'다. 저자는 '혼돈의 가장자리'를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도대체 '혼돈의 가장자리'가 뭘까? 약간 복잡한 얘기지만 한 번 시작해보자. 자, 공간상에서 어떤 입자의 거동을 추적한다고 치자. 이 입자는 특정한 비선형 미분방정식을 따라 운동한다. 그럼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입자가 빙빙 돌다가 어느 특정한 점으로 콕 떨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블랙홀 주위를 빙빙 돌다 블랙홀로 떨어지는 돌멩이를 머릿속에 그리면 되겠다. 이 경우 특정 시점 이후로는 입자가 계속 한 점에만 머물게 된다. 극도의 '질서' 상태이다. 한편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처럼, 특정한 주기를 가지고 입자가 특정한 궤도를 그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매 주기마다 입자는 같은 위치에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입자가 같은 위치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바로 '주기'라고 봐도 될 것이다. 입자가 같은 위치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면 '주기' 또한 점점 늘어나는 셈. 그럼 여기서 한 가지 극단적인 상황을 생각해보자. 입자가 한 번 갔던 위치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면? 주기가 무한대인 상태가 되겠지? 이런 상태를 가리켜 비선형동역학에서는 '혼돈(카오스 chaos)'이라 한다. (엄밀한 부분에 있어서는 일부 틀린 사실이 있을수도. 나중에 비선형동역학 들으면 수정하겠음 -_-;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 참조.) 문제는, 이 질서 상태와 혼돈 상태라는 양 극한의 사이값들을 조사해보면 질서 상태에서 혼돈 상태로 서서히 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얼음이 섭씨 0도에서 확 물로 변해버리듯, 질서 상태가 혼돈 상태로 '상전이'되어버린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쟁 상황에서 '적합도'가 가장 높은 상태는 바로 이 상전이점 근처에 위치한 상태라고 주장한다. 이게 바로 '혼돈의 가장자리'라는 단어의 의미이다. 혼돈 상태가 질서 상태로 변하는 가장자리, 그곳이 바로 세상을 움직이는 장소라는 것. 이 논증을 바탕으로 저자는 우리가 진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화는 변이와 자연선택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다. 진화가 있기 위해서는 '혼돈의 가장자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 무슨 소리일까? 변이 한 개에 대해 환경이 변하는 정도를 추적해보면 이것 역시 하나의 상 도표(phase diagram)로 그릴 수 있다. 극도의 질서 상태에서는 변이 한 개가 환경을 전혀 바꾸지 못하고, 극도의 혼돈 상태에서는 변이 한 개가 환경을 완전히 갈아엎는다. 어느 쪽이든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살아남기는 힘들 것 같다. 전자는 변이가 아무런 소용이 없고 후자는 변이가 일어나면 생존율이 대부분 왕창 떨어지겠지. 그렇다면 가장 안정한 상태는 어디일까? 역시 질서 상태와 혼돈 상태의 '상전이 경계면' 근처가 된다. 따라서 '혼돈의 가장자리'에 생태계가 위치한다는 가정이 변이/자연선택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근거들을 바탕으로 경제계와 사회계 역시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발전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인간의 역사 역시 돌이켜보면 변이와 자연선택의 구조로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변이-자연선택이라는 건 정말 기초 가설 중의 기초 가설이다. 이걸 부정하는 소위 창조과학이라는 학문, 아니 말장난은 그저 쓰레기라고 생각.) 이 역시 가장 적합성이 높은 상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저자가 자신의 논제를 증명하는 방법으로는 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드는데, 그리 어려운 시뮬레이션들이 아니다. 모델링 몇 번 해본 사람들이라면 그냥 발로 짜도 짤 수 있을 법한 시뮬레이션들. 역자도 역자 후기에서 시뮬레이션을 몇 개 돌려볼 것을 권하고 있다. 이렇게 나같은 캐양민도 할 수 있는 쉬운 시뮬레이션들로부터 저런 어마어마한 주장을 끌어낸 걸 보면 카우프만은 정말 킹왕짱인 것 같다. (비록 나는 하나 해보고 캐발렸지만;) 덕분에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극도의 지적 흥분을 느꼈고 -- 아, 이 느낌을 어떻게 글로 풀어 쓰리 -- 오랜만에 '과학이 주는 감동'을 받은 것 같다. 도킨스도 그렇고 굴드도 그렇고, 생물학자들이 참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이들과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이 감사하다. @ 덧붙여 이 책을 읽고나면 러플린의 '창발성'과 프리고진/카우프만의 '창발성'이 어떻게 다른지 감을 좀 잡을 수 있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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