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용지] 천지창조.
2005년 9월에 쓴 글. 나의 신앙관에 대해 잘 말해주는 글이라 생각한다.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을 들은 내가 기독교 창조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잘 나타내주는 글.

--

천지창조 - 송정미 5집 '임재'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기쁘셨네
그 최초의 일주일 동안
그런 일이 있었네

첫날엔 빛과 어두움
둘째날에는 하늘
셋째날은 땅과 바다와
푸른 채소와 나무
넷째날은 해와 달과 별
다섯째날 물고기와 새
여섯째날 동물과 사람
오 사람을 만드셨네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복을 베푸셨네
온 땅 가득히 번성하여라
모든 것을 다스리라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기쁘셨네
일곱째날 되어 쉬셨네
그 날을 복주셨네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복을 베푸셨네
온 땅 가득히 번성하여라
모든 것을 다스리라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기쁘셨네
그 최초의 일주일 동안
그런 일이 있었네

천지를 지으셨네
천지가 지어졌네

--

다윈의 진화론 이후,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인류는 한낱 코아세르베이트에서, 아니 사실은 더 간단한 무기 분자들로부터 진화된 하나의 '진화기계'로 격하되었다. 이런 진화론이 인본주의 철학에 미친 영향은 가히 가공할 만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노 같은 극단적 생물철학자는 심지어 인간의 모든 도덕, 윤리, 풍습을 폐지하고 철저히 경쟁과 적자 생존을 통하여 인류가 번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극단적 주장이 아니더라도, 진화론 이후 철학의 근거가 성경을 떠나 인간의 이성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그 외에도 진화론은 진화사회학, 우생학 등 인문학,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행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윈의 진화론은 어떤 의미인가? 무조건 배척해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과학'으로 받아들여 진리로 믿어야 하는가? 대한민국 기독교계는 보수적 신학이 득세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진화론에 대해 무조건적인 배척을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 진화론을 인정하는 사람은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매도해버리고, 교회에서 조직적으로 반(反)진화론을 가르친다. 허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이 있다. 진화가 아니면 무조건 창조인가. 그리고 진화이면 무조건 창조가 아닌가. 만약 창조라는 걸 그들이 증명했다 해도, 그 창조주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까. 라엘리안들이 말하듯 외계인이 우리를 창조했을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실 일반 신앙인들은 그렇게 믿어버려도 별 문제가 없다. 진화론은 전부 뻥이고, 진화론의 약점들이 창조를 대변해준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과학, 특히 생물학을 전공하는 그리스도인들이다.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생화학 등 가장 기초적인 과목에서 진화론은 '매우 설득력 있는 가설'로 등장하고 있고 진화론을 가정한 채 생물학 이론들을 전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옛날 중세 시대 머튼 칼리지에서 그랬듯, 신학도 진리고 과학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할까.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정통 카톨릭 신학이 충돌하자, 철학자들은 두 학문이 전부 진리라는 '이중 진리론'을 펼쳤다. 그럼 우리도 이런 방향을 택해야 할까?

중학교 때는 참 순진했다. 일반적인 신앙인들처럼 진화론은 무조건 그른 것이고 창조과학자들이 옳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중학교 3학년 때 홈페이지를 만들었는데 참 부지런하게 창조과학 자료들을 모으곤 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과학고를 오고 카이스트를 와서 그 때보다 깊은 단계의 생물학을 배우고 나니, 진화론이 '과학적 뻥'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말았다. 진화론은 인간 이성 안의 최대한 논리적인 가설인 것이다. 진화론을 도입하면 수많은 현상들이 설명된다. 이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치는 과학자들이 이런 매력적 이론을 버릴 리가 없다. 그들이 무신론자라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진화론이 자신 이성이 만족하는 그런 이론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다. 천지창조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첫걸음이다. 어떤 목사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창세기 1장 1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을 믿는 순간, 성경 전체가 믿어진다고. 이런 중요한 믿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진화론과 창조론은 상호배타적인 이론이 아니다. 사실, 창조론은 이론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창조론은 그냥 '믿음'이다. 성경대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사실, 과정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실제로 흙으로 지으셨든, 말씀으로 지으셨든, 아니면 진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게 하셨든,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다"는 것이다. 창조과학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이것이다.

내가 보기에 창조과학자들은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힌 '과학자'들에 불과하다. 신앙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신앙인이라면, '나를 지으신 주를 찬양'하기만 하면 족하다. 그걸 과학적으로 밝힌다? 밝히는 것도 불가능할 뿐더러, 그걸 밝혀서 뭘 어쩌려 그러는가? 그걸 밝히면 세계 인구가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올까? 아니면, 진화론자들이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올까? 우리의 믿음은, 그저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다'는 점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슨 과정으로 만드셨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쓰여있지도 않다. 그리고 '서사시'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 창세기 1장을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증명하려 하는 것도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주: NIV에서 창세기 1장부터 2장 초반까지는 '시'처럼 들여쓰기 처리가 되어있다.)

창조과학을 믿지 않으면 신앙인이 아니라고? 이렇게 창조과학에 비판적인 내가, 문두에 인용한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왜일까.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 위대하심을 노래하는 것은 왜일까. 그 분은, 우리의 지식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분을 어떻게 느끼는가? 그 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오는가?
by 로보스 | 2006/03/30 15:21 | * 네이버 블로그 ('05-'06) | 트랙백 | 핑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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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교의 본질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보는데, 신이 '진화'라는 과정을 거쳐 세상을 창조하면 왜 안 된다는 것인가? (창조론에 관한 내 입장을 좀 더 분명히 기술해놓은 글로 [5]를 참조하시길. 비기독교도들보다는 기독교도들을 겨냥한 글임을 염두에 두시길.) 또 하나, 전도와 선교는 어떠한가? 이는 과연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라고 할 수 ... more

Linked at 世界はネオハピ! : 강건일, .. at 2009/03/12 10:04

... 자들만 반대하면 되는 거 아닌가?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이 기독교를 까는 건 아니지 않은가?) @ 성경적 창조론에 관한 내 신념은 이 글에 요약되어 있다. 옛날에 쓴 글이지만 생각은 그 때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소개한다.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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