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외,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평사리.

신학자들에 의한 기독교 비판서. 한국 교회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는 세태를 가슴 아파하는 한 명의 신자로서, 혹시나 이 책에서는 좋은 얘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구입했다. 전에 류상태 씨의 책을 보고 실망을 많이 한지라 선뜻 손에 잡지 못했지만, 결국 이번 1월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염려와는 달리, 이 책은 꽤나 괜찮은 책이었다.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와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의 역사를 꼼꼼히 되짚어가면서 개신교의 현 위치를 서술하는데, 읽으면서 고개가 절로 끄덕이더라. 한국 교회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특히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새로 배우게 되었다. 세 명의 저자가 각각 한 장씩 맡아 글을 썼고 마지막 장에서는 이 저자들이 모여 한국교회의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토론한다.

이 책에서는 한국 교회의 극단적인 보수주의/복음주의가 일제침략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한국 교회에 처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은 대개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교단 소속이었고, 그러다보니 계명을 엄격히 지키는 것을 강조하곤 했다. 문제는 일제의 박해가 시작되면서, 계명을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많은 수의 성도들이 일단 살아남기 위해 일제의 회유에 '타협'했고, (예컨대 신사 참배) 엄격한 교회법을 어긴 데에 대한 가책을 느끼면서 살아야했다. 결국 해방이 된 후, 살아남은 성도들은 '회개하는 심정으로' 더욱 엄격하게 교회법을 집행하기 시작했고, 이는 한국 교회의 보수화를 가속시켰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일제 시대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광복 후 눈이 뒤집혀서 '빨갱이'들을 잡아죽이곤 했던 걸 생각해보면 교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고보니, 교회는 정치적일까, 비정치적일까? 혹은 정치적이어야 할까, 비정치적이어야 할까? 요즘 교회는 정치에 많이 관여하고 있다. 오죽하면 대통령의 인맥으로 '교회 인맥'이 손꼽힐까. 사람들은 말한다. 90년대까지 교회는 정치와 분리되어 있었고 그것이 '옳은 교회'라고.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정치와 교회가 분리되어 있다고 믿게 하는 것' 역시 하나의 정치적 술책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보수 교회는 항상 기득권 층의 편에 서있었고, 80년대까지는 교회가 사회 문제에 대해 잠잠한 것이 기득권에게 유리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민주 세력'이 정권에 나타나기 시작하고 기득권 층이 피해를 입을 것 같으니까 교회가 떠들어대기 시작했고, 이것이 단적으로 나타난 예가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 보수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보인 '개정사학법 반대 삭발식'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을 기리는 크리스마스가 무례한 자들에 의해 더렵혀졌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인 이유다.

이 책에서는 성장한 교회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1970년대까지 성장한 교회들과 80년대 이후에 성장한 교회들로. 뭐 어느 쪽이나 복음주의 교회라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이 책에서 주로 공격하는 쪽은 전자이다. 한국 교회의 나쁜 습성은 전부 지니고 있고 보수적 정치색을 극명히 드러내는 교회들이라고 여긴다. 반면 80년대 이후에 성장한 교회들은 '최소한 겉으로는'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고 비교적 온건하고 합리적인 신앙 생활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교회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욕을 하고 있지만, 난 차마 그 정도까지는 못 쓰겠다. 어쨌든 이 분류법 자체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 책은 비기독교인들보다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없는 안티들이야 어느 책을 읽든 어차피 "뭐 개독 병신들 ㅉㅉ" 하고 말 거니까 굳이 이런 수준 있는 책을 읽을 필요는 없지만, 교회가 왜 이 모양인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이성적으로' 원인을 찾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보라.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교회와 목사님, 단체가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일들을 벌였다는 사실을 배웠고, 덕분에 약간 더 성숙한 것 같다. 저자들이 삐딱하기 때문에 글투가 마음에 안 들 수 있다는 사실 염두에 두시고. (앞의 두 저자는 아예 '하느님'이라고 표기하더군. 어원을 따지면 저 말이 맞으니까. 하지만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용어를 자신의 고집 때문에 고쳐쓰는 건 좀 별로였다.)
by 로보스 | 2008/03/05 20:11 | |감상| | 트랙백 | 핑백(3)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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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키. [감상문]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EBS 지식채널ⓔ, 지식 e - 시즌 2, 북하우스. [감상문] 비평 김진호 외,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평사리. [감상문] 임지현,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소나무. 이상성, 추락하는 한국교회, 인물과사상사. 김영식, 과학, 인문학 그리고 대학, 생각의나무. * 최종 업데이트 : 2008. 3. 5. ... more

Linked at 世界はネオハピ! : 김인수, .. at 2008/03/10 09:44

... 리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 목사님의 일생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좋았지만 한편으로 20세기 초반 개신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마침 &lt;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gt;를 읽은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두 책의 이야기를 비교해볼 수 있었다. 과연 20세기 초반 개신교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교회법 ... more

Linked at 世界はネオハピ! : 나는 왜 .. at 2008/09/16 19:42

... 도 다르기에, 나는 이 모든 문제들이 개신교의 문제보다는 한국 개신교도들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그렇게 된 원인까지 분석할 생각은 없고,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6]과 같은 책을 일독하시길 권한다. 정리한다. 나는 어릴적부터 개신교 신앙을 지켜왔다. 이는 지금까지의 내 경험들과 내 신앙이 충돌한 적 없고, 내 신앙관 속에서 내 ... more

Commented by 긁적 at 2008/03/05 20:30
마지막 문단이 참 마음에 와닿든군요. (..........)
Commented at 2008/03/05 20: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3/05 21: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3/05 21:37
와우 이 폭발적인 반응 :$

긁적님// 허허 -ㅂ- 마지막 문단 어디가 마음에 와닿으시나요;;;
비공개1님// ^^; 좋은 책이라 하시지만,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당연한' 이야기를 실어놓은 책일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그렇고 나중에 어디선가 볼 일이 있을지도? :$
비공개2님// 와아... 고맙습니다 (_ _) 언제 한 번 진짜로 만나서 +_+ 길게 얘기해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Commented by Asuka_불의넋 at 2008/03/05 23:07
개인적으로 기독교의 독선적인 교리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자연에 간섭하기를 택하는' 신이 존재한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만,(자연에 간섭하지 않기를 "택하는" 신이라면 전혀 문제없다고 봅니다) 뭘 믿는지야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없다면 자기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일반적인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군요.

지극히 비종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종교는 하나의 유사한 신념 체계 모음(...말이 좀 어색합니다만)을 신봉하는 사회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회집단이 집단 밖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그 집단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에 달려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기독교를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유의미하다고 봅니다.

아, 물론 종교적 신념 체계가 '사실'이나 '논리' 여부와 무관하며 전혀 다른 분야라는 점을 인정하는 종교일 경우에 말이죠. :)
(신약은 대충밖에 못 읽어 봤습니다만, '원래 종교는 비논리적'임을 의미하는 구절이 있었던가요? 기억이 안 나네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8/03/06 08:58
Asuka님// '세상의 모든 체계는 전부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제 생각과는 살짝 다른 생각이신 것 같군요 ^^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개역개정, 고전 2:13)" 정도가 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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