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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한 건 룸메이트(물리과)가 쓴 어느 글에서였다. 제목 :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내용 : 라는 책은 도모나가 신이치로가 쓴 개념이 상실된 지루한 책인데...는 아니고, (이후 물리학에 대한 자신의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므로 과감하게 생략.) 그러고보니 그 녀석 책꽂이에 이 책이 꽂혀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이 녀석은 이 책에 대해 ① 개념이 상실된 ② 지루한 책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난 이 평가 덕분에 이 책을 절대 읽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도모나가 신이치로가 쓴 <양자역학적 세계상>을 읽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 책에서 도모나가 선생의 친절한 설명에 감명을 받은 나는, 반드시 <물리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어야겠다는 투지에 불타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어라?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은 물리학사 책이었다. 난 제목만 보고 물리학의 각 분야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그런 책인 줄 알았는데 완전 낚였어! 물론 도모나가 선생은 "물리학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으니 대신 그 역사를 보여주마 으하하하"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이건 완전 속은 느낌인데? 도모나가 선생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으로 대표되는 과학혁명 시기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실 이 부분은 읽으면서 저으기 실망했는데, 도모나가 선생의 시각은 소박한 물리학자의 시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내가 과학사 시간에 배운 바로는 과학혁명 시기의 역학 논쟁이 상당히 복잡했고 케플러를 비롯한 지동설파 학자들도 그리 만족할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도모나가 선생은 "물리학은 무조건 발전해오는 길을 걸었다"라는 시각으로 물리학사를 기술하고 있었다. 즉 과거의 구습(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을 한꺼풀 한꺼풀씩 벗어던지는 듯한 묘사랄까. 난 이 시각이 실제 역사를 충실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의 첫부분부터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2부부터 이야기는 열역학 쪽으로 옮겨간다. 아마 내가 볼 때 도모나가가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열역학인 것 같은데,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 치고는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수식이 나온다!" 내가 알기로 과학교양서 쪽에서 "수식이 하나 들어갈 때마다 판매부수가 반으로 준다"라는 속설이 있는데, 그런 걸로 따지면 이 책은 거의 뭐... -_-;; 열역학 제 2법칙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신나게 카르노 기관까지 데려와서 일을 계산하고 효율을 계산한다. 심지어 독자에게 연습문제까지 낸다!!! (참고로 카르노 기관은 일반화학 존내 어려운 킹왕짱 옥스토비 책에서도 심화학습으로나 다룰 정도의 개념이라죠.) 물리에 관심 많은 나로서는 그래도 감사하긴 했는데, 일반 소시민 입장에서는 도리어 헷갈리기만 하고 겉멋만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야기는 3부에 들어서 분자운동론과 결합되면서 극적으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여기서는 뉴턴역학과 확률론을 잘 짬뽕하면 열역학의 정리들을 얻을 수 있다! 라는 놀라운 결론을 얻어낸다. (참고로 요걸 '통계역학'이라고 하지요.) 그러면서 맥스웰과 볼츠만 씨가 등장해서 분포 얘기도 좀 해주고, H-정리 얘기도 좀 해주고, 역시 일반 소시민에게는 많이 어려워 보이는 주제들을 술렁술렁 얘기한다. 그리고 마지막 4부로 넘겼는데, 어라? 갑자기 과학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잠깐잠깐! 선생님, 현대물리는요? ;ㅁ; 전 현대물리 얘기를 듣고 싶어서 이 책을 산 거란 말이에요! 아무리 뒤져봐도 현대물리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전자기학과 광학도 다들 어디론가 사라졌다. 결국 고전역학과 열역학, 통계역학이 이 책의 전부였던 건가. 그런 주제에 <물리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붙이다니! 사실 물리학의 역사를 따라가기 위해서라면 전자기학이나 광학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 책에서 전자기학이나 광학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저 역학과 열역학 뿐이다. 아쉽다. 4부에서는 "과학이란 사회를 위해 이렇게 쓰여야 한다"라는 내용이고, 그리 특별한 내용도 없었으니 넘어가자. 지적할만한 사항은 역시나 소박한 과학자의 시각이라는 것. 또한 도모나가 선생은 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상당히 깊이 있는 관계로 보는 것 같은데, 과학사학자들은 둘의 관계가 19세기 말까지도 그리 깊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을 언급해둔다. 책의 열역학-통계역학 파트에서는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이게 '교양' 레벨인지는 좀 의문이다. 과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에게 이 책을 보여줬을 때 과연 내용을 이해하고 흥미를 가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도 <쿼크로 이루어진 세상>과 비슷한 우를 범하는 것 같다.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 내용들은 다 빠졌다. 현대물리가 들어가야 사람들이 좋아할텐데, 지겨운 열역학이라니... 또한, 상당히 '소박한 과학자'의 시각이라 오해의 소지가 있다. 과학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과학과 기술,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보는 관점 등이. 뒷부분에 '편집자의 말' 비슷한 게 있는데, 도모나가 선생이 노년에 과학 자체를 심도있게 연구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럴 정도였으면 과학학 쪽 내용도 좀 살펴보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문투에 불만이 있었는데, 역시나 알고 보니 번역을 철학 전공자들이 했더군. 내가 심하게 까댄 다른 책들만큼 엉망진창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콕 집을 수 없지만 "과학자스럽게" 번역하지 못했다고나 할까. 근데 궁금한 게, 철학 전공하면 그렇게 할 일이 없나 -_- 왜 다들 자기 전공도 아닌 책들 붙들고 번역한다고 난리야? 그리고 좀 하려면 과학 전공한 사람이랑 같이 하든지 아님 과학자한테 감수라도 받지, 철학자 둘이 붙어서 뭘 하겠다는 건지. 하긴 이건 출판사의 무개념일까나- 사이언스북스 좋은 책 많이 내는 회산데, 좀 실망이다. 결론적으로 실망투성이 책이다. 기대했던 것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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