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현인 이야기'의 두번째 책, <진리의 현관 플라톤>이다. 지난번 <대화의 철학 소크라테스>를 끝내고 잠시 다른 책들을 좀 뒤적이다가 다시 이 책을 잡았다.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 책. 내용도 번역도 훌륭훌륭. 앞의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저술을 전혀 남기지 않았고 플라톤은 자신의 저술 속에서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그의 입으로 자신의 이론을 말하게 했기 때문에 둘의 철학을 명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세 가지 정도의 학설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소크라테스는 사실 별로 한 게 없고 플라톤의 저작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전부 플라톤의 투영이라는 학설. 또 하나는 사실 소크라테스가 킹왕짱이라 플라톤의 저작은 소크라테스의 말을 전부 옮겨적은 '역사적 저작'일 뿐이라는 학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기 저작들은 소크라테스의, 후기 저작들은 플라톤의 이야기라는 학설. 마르틴은 스스로 마지막 학설을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이 학설의 문제점으로 전기와 후기를 명확히 나누기 힘들다는 점을 들었다. 어쨌든 나도 이데아는 플라톤이 창안했다고 믿고 있으니까 세번째 학설을 택하도록 하겠다. 이 책에는 플라톤의 생애, 플라톤과 그리스 문화, 플라톤의 철학, 이렇게 세 가지 큰 글꼭지가 존재한다. 그 중 가장 긴 길이가 할애되어 있는 부분은 의외로 플라톤의 생애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도 플라톤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의 제자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생이었으며 기하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정도 외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에 이런 자세한 서술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사실 생애 편이 길다고 해서 철학 책답지 못한 건 아니다. 이 책에서는 플라톤의 생애를 연대별로 쭉 따라가면서 그의 철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추적하고 있으니까. 플라톤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다가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만나 그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에는 당분간 해외를 떠돌면서 다른 학자들을 만난다.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이 대부분 수학자들, 특히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이었고, 이 만남은 플라톤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첫번째 여행에서 그는 시라쿠사이의 지배층과 만나게 되는데, 이는 이후 플라톤이 자신의 정치 철학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로 시라쿠사이를 택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방랑을 마친 플라톤은 아테네로 돌아와 '아카데미아'를 세웠고, 거기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책을 집필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다. -라는 게 책의 내용이다. 책을 요약하는 건 별로 내 취향이 아닌데 -_-;; 그냥 해보고 싶었어... 미안 T_T 다음으로 이어지는 '그리스 문화와 플라톤의 관계' 꼭지에서는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진다. 바로 플라톤이 이성적으로는 그리스 문화를 거부하면서도 감성적으로는 그리스 문화에 심취해 있었다는 점이다. 플라톤은 스스로 시와 노래를 지을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국가>에서는 이런 예술 활동이 철저하게 국가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엄격하게 주장한다. (pp. 151-181) 또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는 모순과 비합리성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신을 찬양한다. (pp.182-193) 이를 가리켜 이 책에서는 로고스(logos)와 미토스(mythos)의 결합이라고 일컫는다. 이는 마치 그런 것 아닐까? 사랑해선 안 될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 +_+ 나도 해봐서 아는데... 이거 미칠 지경이야 진짜. 말로는 계속 그녀를 부정하면서도 마음은 그녀에게 향해 있지. 플라톤도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다음 글꼭지, '철학'으로 넘어가니 놀라운 사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라톤은 이데아 이론이 불완전함을 알고 있었다! 제자들이 이데아 이론의 약점들을 공격할 때마다, "허허 그러게? 나도 모르겠어. 그래도 이데아 이론이 맞다고!" 이렇게 대응을 하더군 -_-;; 이 책에서는 플라톤 저작들을 분석하여 이데아의 개념이 어떻게 변천해 가는지 설명하고 있다. 일전에도 잠깐 썼지만, 결국은 이데아라는 것도 워낙 애매한 개념이라 후배 철학자들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해석'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각자의 개념에 맞도록, 플라톤의 저작과 모순만 안 일으킨다면 적당히 해석해서 쓸 수 있는 것 아닐까? 마르틴은 책 말미에 도달해 플라톤 철학이 결국은 '학문론'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서의 기술이 목표로 삼는 것은 학문, 순수 이론, 그리고 반성에 대한 플라톤의 사유, 즉 한마디로 말해서 플라톤의 학문 이론(Wissenschaftslehre)을 플라톤 철학의 본질적인 것으로 보려는 것이다. (pp. 236-237) 마르틴은 플라톤이야말로 학문이 무엇인지 처음 고민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초기의 소크라테스적 대화들을 되돌아보면, 주제에서 커다란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용기란 무엇인가', '경건함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통해 행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이런 것들이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고 또 적용되어야 하는가가 그의 관심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플라톤은 '학문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이론적 성격을 지니는 이런 물음, 이렇게 이론적으로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p. 241) 난 플라톤이 철인 통치를 주장하고 어쩌고 했다길래 '정치론'이 그 철학의 핵심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 물론 마르틴의 학설이 100% 맞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보는 관점도 있다는 거지. 역시 이야기는 두루두루 들어봐야 좋아. 흥미롭다. 플라톤이라는 인물은 소크라테스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신비로운 인물인 줄 알았는데, 그의 철학에 대해 조금씩 공부해보니 그 역시 상당히 신비로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고스와 미토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데아'라는 개념을 창안했으며,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다 실패한 사람.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면 플라톤의 저작들을 슬슬 읽어봐야겠다. 재미있을 것 같아. 자, 이제는 마지막, 아리스토텔레스를 향해 간다!
|
Calendar
메모장
카테고리
|소개||일기| |감상| |과학| |잡념| * 홈페이지 ('02-'03) * 네이버 블로그 ('05-'06) 최근 등록된 덧글
YH 선배님// 흐흐 노렸..by 로보스 at 10:28 련!// 크크 감사- by 로보스 at 10:28 오오.. 멋져요. 뒤가 dix.. by 와이에이치 at 11/30 오.. 있어보임+ㅁ+ .. by 련! at 11/30 비밀글// 오오 +_+ 많이.. by 로보스 at 11/30 미리내님// 아흐 기대하.. by 로보스 at 11/30 미리내님// 아 그렇군요 ;ㅅ.. by 로보스 at 11/30 ㄷㄷㄷㄷㄷ 무서워요 ;ㅅ; .. by 미리내 at 11/30 아직 한RSS에는 예전 걸.. by 미리내 at 11/30 유키누나// ㅇㅇ 누나는 짱임 by 로보스 at 11/30 난 블로그 명은 불어에 .. by Yuki37 at 11/30 꼬깔님// "로보스 가라사.. by 로보스 at 11/30 비밀글님// 그냥 보이는대.. by 로보스 at 11/30 줄리아님// 감사감사 :D by 로보스 at 11/30 유크님// 잇힝 감사해요 :$ by 로보스 at 11/30 멋진데요? :) 로보스 가.. by 꼬깔 at 11/30 오오 멋있어요*-_-* by julia at 11/30 오오 뭔가 산뜻해요! by yu_k at 11/30 versilov님// 후후 감사.. by 로보스 at 11/30 ㅋㅋ 현학쟁이 by versilov at 11/30 최근 등록된 트랙백
2007 - Gerhard Ertlby 한글 Scheme으로 루저 인증.. by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루져 테스트 [asp.net] by 緣 루저코드 - 파스칼 버전 by Divine Power 루저코드 - C# by 평범과 순수한 はるかぜ.. 이글루 파인더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