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사.

인간 조직이라면 어디나 '다스리는 자'와 '다스려지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옛날 어떤 이상주의자들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꿈꿨지만, 아직 그러한 사회는 어디에도 도래하지 않은 듯 싶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양자 간의 충돌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운하를 뚫겠다는 대통령 후보와 이를 반대하는 국민들, 영어강의 100%를 도입하겠다는 대학 총장과 이를 반대하는 학생들, 통금 시간을 정하겠다는 가장과 이를 반대하는 자식들, ... 어째서 이런 충돌이 일어나는 걸까? 이런 충돌은 불가피한 걸까? 이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는 이러한 사회구조적 문제를 심도있게 고찰한다.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나환자들이 살고 있는 소록도를 그 배경으로 한다. 소록도는 애환의 섬이다. 비극의 섬이다. 그러나 그 비극은- 아이러니하게도 환자들을 위해 다양한 제도와 시설을 약속한 소록도 병원장들로부터 시작한다. 이 섬에서 원장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부임해오는 원장들은 누구나 이 섬을 '환자들의 천국'으로 만들겠노라고 공표한다. 이게 말로 끝난 경우도 있었겠지만, 많은 원장들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노력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주진수 원장은 환자들의 자립의식을 키워주기 위해 벽돌공장을 건설하고, 마을을 건설하고, 도로를 건설한 사람이었다. 더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환자들을 위해 그러한 건설 작업을 시작했다. 어쩌면 초기에는 잠깐 '천국'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세상의 찬사가 쏟아지고 환자들이 그를 위해 동상을 만들어 바쳤을 때, 소록도는 더이상 천국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하나의 지옥이었다. 원장의 눈에 들기 위해 환자들끼리 암투를 벌이고 심지어 살해 사건까지 일어난다. 환자들을 위해 만든 공원에 손님들이 출입하면서 더이상 환자들은 출입할 수 없었고, 환자들을 위해 만든 도로에 환자의 탈출을 막기 위한 순찰대가 돌기 시작했다. 끝내 섬은 파탄나고 남은 것은 의심과 상처 뿐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사업이 어찌나 추악한 노역으로 변질되었는가!

조 원장은 주 원장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는 명예욕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렇다'고 단정한다. 그는 자신이 환자들을 위해서만 모든 사업을 벌일 것을 굳게 다짐하며 그의 사업을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 원장처럼 생각한다. '통치'가 무너지는 것은 다스리는 자 자신의 명예욕과 재리욕 때문이라고. 하지만, 글쓴이는 이상욱 보건과장의 입을 빌려 말한다. '통치'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이는 '다스리는 자'가 '다스려지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사실이라고. 당연한 말이지만, 원장은 환자가 아니다. 그는 정상인이고, 의사다. 그는 죽었다 깨어나도 환자의 심정을 100%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그가 만들어낸 정책들이 과연 '환자들의 천국'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재미있는 것은, '다스리는 자'가 '다스려지는 자'의 마음을 알려면 '다스려지는 자'가 되어야 하고, '다스려지는 자'가 되는 순간 '다스리는 자'의 권위는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를 알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면 숲 전체 조망을 볼 수 없게 되는 이치랄까. 혹은 위치와 운동량이 엮여 있는 불확정성과 비슷하달까. 조 원장은 '다스리는 자'가 '다스려지는 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이상주의자로 나온다. 그리고 황 장로와 이 과장은 그 이상을 깨기 위해 등장한 반작용이고. 하지만 내가 볼 때 이청준 선생은 결국 이상주의자이다. 이청준 선생은 황 장로의 입을 빌려 인간들 간의 사랑과 믿음을 통해 '다스리는 자'와 '다스려지는 자'가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랑장' 고린도전서 13장이 떠오른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여기서는 '통치'의 개념에 한정하여 이야기를 진행했지만, 이는 모든 형태의 '인간관계'에서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논란은 '인간관계'에서 출발한다. 남자는 절대 여자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개신교도는 절대 불교도의 마음을 알 수 없고, 한나라당원은 절대 민주당원의 마음을 알 수 없겠지. 그러기에 섣불리 내 입장에서 단정지으면 안 되는 것이고, 공감은 안 될지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은 보여야 하는 것일게다. 만약 이청준 선생이 옳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결국 사랑과 믿음을 통해 '완성'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곧 '우리들의 천국'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한 천국은 바로 그러한 형태의 천국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by 로보스 | 2007/10/25 12:03 | |감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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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가는 불꽃세대, SFC출판부. 김준곤 외, 청년, 그 희망의 이름, 순출판사. 문학 김언수, 캐비닛, 문학동네. [감상문]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문학과지성사. [감상문] 에쿠니 가오리, 도쿄 타워, 소담출판사.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문이당. 철학 카를 뢰비트, 헤겔에서 니체로, 민음사.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아카넷. ... more

Commented at 2007/10/25 19: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7/10/25 20:20
비공개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게?
Commented by 이르 at 2007/10/26 01:12
저는 여기에서 '미래의 행복의 대여' 라는 개념이 사무치게 다가왔어요. 정작 내 삶과 인생 자체도 이와 같은 건 아닐지... 를 돌아보았달까요;
Commented by 로보스 at 2007/10/26 08:52
이르님// 반갑습니다 ^^ 저도 그 표현 보면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어쩌면, 미래의 행복을 끌어다 쓰면서 사는 게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일지도 몰라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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